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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참고: 마태복음 2:1-12
일반적으로 동방박사들은 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예수님께로 가져왔기 때문에 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세 명인지, 네 명인지,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오늘묵상하는 말씀에서 숫자를 논하지 않겠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추측을 합니다. 그러나 성서 저자가 그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는 이상 이 문제도 논하지 않겠습니다.

1999년, 지난 천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성탄절 예배에 우리는 한 아기로 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은 “저희가 그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는 10,11절 말씀일 것입니다.

그들이 왜 먼 나라로부터 유대나라까지 왔을까요?
그들이 고생하고 수고한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오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까? 하늘에 나타난 “그의 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아기로 오실 때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도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천국에도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에게 홀연히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했습니다.

우리들이 익숙한 성탄절 카드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물을 드리고 있고, 양 치던 목자들이 지팡이를 들고 소나 양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구유 주위에 서 있는 그림이 연상됩니다. 그러나 사실 양을 치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방문한 것과 동방에서 온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것과는 약 한달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여자가 아이를 낳은 후 33일간의 정결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의 방문후에 천사들의 말을 듣고 급히 이집트로 도피하기 위해서는 한달 이상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한 성서의 약속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약 8백여 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는 이사야서 7:14절에서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주적 사건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사건이며, 동시에 성서에 예언된 인류 구원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한 아기로 이 땅에 나셨을 때 그 시대에 가장 전문적인 세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천문학자였던 동방의 박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나라에 살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헤롯 대왕이 나옵니다. 그는 사실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두매 사람입니다. 즉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성공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리고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과 전통, 그리고 종교 예식에 대한 전문가들입니다.

헤롯 대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성서 안에서 확인해 보고자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즉 성서학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는 성서를 자신의 경쟁자를 확인해서 죽이고자 하는 일의 확인서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을 예수님이 나신 사실의 비밀 염탐군들로 이용하는 지략도 있었습니다. 성서도 찾아보게 하고, 자문도 구했지만 주님을 경배한 다는 것은 거짓말이요, 실제로는 주님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2장 16절을 보면, 헤롯이 화가나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2살 이내의 사내아이를 다 죽였습니다.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예수님이 어디에 나시겠는가를 물을 때 숨쉴 틈도 없이 미가서 5장 2절에 예언된 말씀을 대답할 만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적으로 성서의 약속들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셨다고 하는데, 어디에 나신다는 사실을 아는데, 동방 박사들이 한 별을 보고 왔다고 하는 데도 그들은 주님을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지식적인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한 아기로 나신다는 말을 실제적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퍼 맨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스라엘을 지상 찬국으로 만들 것을 기대했습니다.

헤롯왕과 본문에 나타나는 저명한 종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헤롯은 성경 말씀을 자신이 필요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했습니다. 정치적인 적대자를 찾아내는 데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의도에서 성경을 사용하고 성경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편, 성경 말씀을 연구해도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찾고, 경배하는 수고를 시도도 해 보지 않는 머리 속에서의 신앙, 성서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으로 끝나는 신앙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한갖 참고 자료일 뿐이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자신들의 메시야를 그리며 헤메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탄절을 맞은 우리들이 한번 살펴봅시다. 나는 헤롯과 같은 사람은 아닌지, 또는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성경에 친숙하고, 종교적인 면에는 많이 익숙해 있으나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지식과 형식 속에서 사는 사람은 아닌지 말입니다.

이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살펴봅시다.
그들은 유대에 있던 사람들보다는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본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성서적인 지식도 예루살렘에 있던 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아기로 나신 주님을 만났고 경배했고, 예물을 드린 후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고국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1. 그들은 목표를 분명히 정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천문학자들로서 하늘의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별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별을 따라나섰습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하늘의 새 별을 발견한 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별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아가 이 땅에 나셨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 왕께 경배하기 위하여 결심하고,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순례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목적은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기어코 만나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결단이 (Commitment)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의 궁극적이 목적은 메시아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전체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진리이신 주님을 만나 뵙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성탄절에 나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신앙의 목표인가를 확인해 봅시다.

2. 그들은 인내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바벨론의 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최소한 800 키로미터 이상을 여행해야 했습니다. 긴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행에 그들이 필요한 것은 인내였습니다. 그런데 인내는 확신이 있을 때,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에야 따라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별이 가는 방향을 자세히 분별해서 가야했고, 여행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고,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별이 가는 대로, 가는 만큼 가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여정에는 확고한 믿음,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와 인내, 확실한 분별력을 가지고 진리의 별, 새벽 별 되시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날마다, 날마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동방 박사들에게배울 것은 바로 이런 믿음에 입각한 인내와 용기가 이여야 하겠습니다.

3. 그들은 모르는 것은 물어서 배웠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따르던 별을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천문학의 전문가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유대인들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말한 베들레헴으로 방향을 잡고 갈 때에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에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보면, 잠시 방향이 불분명해지고 혼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동방박사들처럼, 기록된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배워서, 그 말씀을 지침으로 삼아서 방향을 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고 발걸음을 뗄 때 주님은 우리들의 길을 분명히 인도 해 주십니다.

4. 그들은 왕께 드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했습니다. 다 값진 예물입니다. 정성어린 예물들입니다. 경배하고 전달하기 위하여 고이 간직한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름이나 높은 분이나, 왕을 만날 때 특별한 예물을 준비합니다

20세기의 성자라고 일컽는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의 전기를 보면, 그는 어린 시절에 동방 박사들이 가지고 온 예물을 어디에 썼을까 하고 매우 궁금해했다고 합니다.

황금은 예나 지금이나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이 갑자기 고향을 떠나서 애굽이라는 물 설고, 낮 설은 땅에서 여러 해 동안 정착하는 데 얼마나 황금이 유용하게 사용되었을까요? 유향과 몰약은 값진 약재입니다. 한의학을 하신 분의 말을 들으니 유향은 특히 산모가 가질 수 있는 병들을 치료하는 데 좋은 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에게 꼭 필요한 약입니다. 몰약은 넘어지거나 얻어맞아서 생기는 상처나, 산후 혈액 문제로 생기는 변비를 제거하고, 위를 건강하게 하며, 타박상이 생긴데 새살이 잘 나오게 하는 약재라고 합니다. 환경과 기후가 다른 지방으로 이민 가시는 예수님의 가정에 건강 상비약과 생활 지참금을 동방의 박사들을 통해서 예비해 주셨습니다.

금년 성탄절에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주님께 드리시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사랑과 감사의 헌신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뜻 깊은 금세기의 마지막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이 자리에 아직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신 분은 않게십니까?
주님을 만나서 경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이끄시는 왕, 여러분이 경배하실 왕으로 모셔들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십니까?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신앙 여정에서 힘들어도 인내하십니까?
신앙 생활을 대충, 적당히, 막무가내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배우면서 확신하고 가십니까?
주님을 날마다 말씀 안에서 만나 뵙고,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정성어린 사랑과 시간과 재능을 예물로 드리시지 않겠습니까?

인간에게는 바른 경배의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주님이시고, 일이 주님을 믿고 기쁨 가운데서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한 후에 감동과 기쁨을 가지고 자기의 삶의 자리에 가서 자기가 만난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 나가서 임마누엘이신 주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을 전하는 성탄절이 되도록 합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0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 참고: 에베소서 1:1-14
104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참고: 에베소서 1:10-14
105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1) 참고: 에베소서 1:1-14
106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 (2) 참고: 에베소서 1장 1-14
107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참고: 마태복음 2:1-12
108 마치려는 결심 참고: 사도행전 20:17-27
109 그리스도인의 영적 복(1) 참고: 에베소서 1:4-13
110 그리스도인의 영적 복(2) 참고: 에베소서 1:7-14
111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1) 참고: 에베소서 1:15-23
112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2) 참고: 에베소서 1:15-23
113 사도 바울의 감사 기도(3) 참고: 에베소서 1:18-23
114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4) 참고: 에베소서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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