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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7장 1-24절
창세기 7-8장에 기록된 노아 시대에 임한 홍수는 신화인가, 아니면 사실인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저는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기초로 해서 답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노아가 만든 방주의 모형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이 방주는 어떤 큰 파도에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정도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까를 의심합니다. 창세기 2장 6절을 보면,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슬은 바람이 없어야 형성되는 데 바람은 기압 차에서 생깁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왔다.’는 말씀은 지구상에 온도차이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게 합니다. 노아 이전 사람들은 약 구백여 살씩 살았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는 아브라함이 175세, 모세가 120세 정도를 살았습니다. 온도 차이가 별로 없는 아열대 기후와 방사선의 제거로 인하여 사람들이 오래 살았을 것이 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런데, 궁창 위의 물(창 1:7) 층이 홍수로 인하여 사라짐으로써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남극에서 화석이 된 활엽수 숲이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시베리아 극지에서 22.5m이상 되는 버드나무와 과일 나무들이 화석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공룡의 화석들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계산으로는 40일간 비가 내려가지고는 세계의 가장 높은 산을 엎을 수 없었다는 추측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창세기 7장 15절의 말씀과 같이 “하늘의 창이 열리기 전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고 했습니다. 즉 지하수가 터지고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분출해서 지각의 심한 변동이 일어나고 융기와 돌출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바다 물이 육지를 뒤덮고 엄청난 화산재가 대기에 솟구치면서 하늘 위의 물들을 쏟아 내기게 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퇴적암 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대규모의 침전물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며 많은 화석이 형성되었습니다. 고산지대에서 물고기의 화석이 나오는 경우나 텍사스에서 조개 화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각 민족마다 홍수의 설화가 전해 오고 있기도 합니다.

노아 때에 임한 홍수의 크기는 어떠했을까요?
그것은 전 세계에 걸친 홍수였습니다. 만일 홍수가 유프라테스 강 지역에 국한 된 것이라면 노아의 방주가 남쪽으로 흘러가서 페르샤 만으로 흘러 갔어야 하는데, 북쪽의 높은 산 아라랏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바다물의 육지 침범의 증거는 염호인 카스피 해, 몽고의 고비 사막에 있는 내지 바다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을 보면, 바람이 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늘의 물이 사라짐으로 오늘 날의 대기권이 형성되고 극지와 적도의 온도차가 생겨 빙하가 형성되며 온도의 차이는 기압의 변화를 일으켜서 자연히 바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8장 22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은 노아의 홍수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사건을 과학적, 역사적인 면으로만 바라보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신앙적 의미와 교훈들을 찾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로.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 21절 이하에 셈의 후손들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드셀라는 라멕을 낳고 라멕은 노아를 낳았습니다. “라멕은 백 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라는 말은 안식(rest), 위로(comfort)라는 뜻의 말입니다.

노아는 할아버지 므두셀라를 통하여 증조할아버지 에녹의 행적을 귀담아 들었을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데려 가셨습니다. 믿음으로 산 조상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자라났습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노아’라고 이름을 지은 것을 보아서도 그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어떠하였는가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의 담백한 순종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의 배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아무 불평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한 몇 달 걸리는 일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약 120여 년이 걸리는 대 공사였습니다. 그가 지은 배는 노도 없고 돛대도 없는 것이었습니다(창 7:16). 또한 엄청난 양식을 저장하는 일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짐승과 새들을 배에 들어가도록 하는 일도 그대로 했습니다. 창세기 6장 마지막 절과 7장 5,9,16절에도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한대로 그대로 순종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보훈 가운데 마태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딛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딛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1장 22,23절에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시면서 2장 14절에서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다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장 26절을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순종은 그 영혼 깊은 곳에 있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순종이 약하거나 없다는 것은, 믿음의 확신이 부족하거나 병들었거나 아니면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에 순종한 것은 그 시대의 풍조를 넘어선 큰 믿음의 결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들의 순종은 어떠합니까?
“나는 말구유, 지금은 말구유, 그것은 말구유”라는 변명을 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런 확신에 서서 순종의 손과 발과 가슴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 시대에 임한 심판은 어떠했을까요?

둘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심히 준엄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2장 5절 말씀을 보면, 앞으로 있을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시면서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기록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말씀을 전파할 때, 노아가 땀을 흘리며 방주를 만들 때, 사람들은 새 파란 하늘을 가리키면서 빈정거렸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실 노아처럼 산다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의롭게 살고, 양심대로 살고, 선하게 살면서 복음을 전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산다면, 언젠가 주님의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고 산다면, 우리들의 일가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예수 믿더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었구먼.” “이 미친놈아 세상이 멀쩡한데 무슨 심판이 있냐?” “야! 너 정신 좀 차리고 실속을 챙겨라”는 말을 수 없이 들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문제는 이런 말을 듣고 살 만큼 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들도 세상을 볼 때 “세상이 말세야!’라고 합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던지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이 가능한가를 반문합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으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심판 전에 경고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는 물론, 바로 왕에게도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에도 예언자들을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죄에서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어김이 없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가 어떻게 임했습니까? 그 날이 도둑같이 임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3,4절을 공동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이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비아냥 거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좀 더 내려가서 8절부터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 년같이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왜 기다리십니까? 아무도 회개하여 멸망하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10절 이하를 보면 “그러나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시오.”

무서운 홍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악을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선인을 악인과 함께 벌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창세기 8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과 육축들을 권념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서 18장 4절을 보면 죄 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못된 행실을 하던 자도 제 잘못을 다 버리고 돌아오면 살 것이다. 모든 지은 죄를 다 잊어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보면 “그가 못된 행실을 한 자라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겠느냐.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도 그 가던 길에서 발길을 돌려 살게 되는 것이 어찌 내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인간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속죄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고백하여 용서함을 받아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심판은 준엄했습니다.
노아는 심판의 홍수 물결 위에 떠 다니는 배 안에 있었습니다.
구원의 방주 안에 있었지만 노아가 당면한 일이 있었습니다.

셋째로, 노아에게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배로 먼 거리를 여행해 보신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월남전 파병이 되었는데 배로 약 1주일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 때문에 한껏 부푼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망망 대해로 나가니 이내 지루하고 답답해서 육기가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약 1년 10일을 방주에 있어야 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날은 노아가 600세 된던해 2월 17일었습니다. 그날부터 40여 일간 땅 밑의 큰 물줄기가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렸습니다. 40일간 밤낮으로 폭우가 쏫아졌습니다. 온통 땅은 물에 잠겼습니다. 150일 동안 온 땅 위에 물이 넘쳤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외부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 되든지 노아는 오직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인내해야 했습니다.

8장 1,2절을 보면, 어느덧 바람이 불고 비가 그치게 되었습니다. 땅에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지 150일 되던 날인 7월 17일에 배가 아라랏 산에 닿았습니다. 지금의 그 산은 터키와 소련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최고봉은 해발 5160m나 된다고 합니다. 물을 10월이 되어서야 계속 줄어들어서 산 봉우리들이 들어나기 시작했습니다.

601세가 된 1월 1일에 배의 뚜껑을 열고 나와보니 지면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막 뛰어 나갔을까요? 아닙니다! 8절 14절을 보십시오. 2월 27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배에서 나오너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종하는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나의 생각과 뜻과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울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1장 23,24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 인내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때, 내 시간과 계획과는 매우 다른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노아는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것도, 나가는 것도 그렇게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땅에 발을 딛었습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무엇입니까? 8장 20절부터 보면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그 제사는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있는 제사를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21.22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합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면 찬양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분명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노아 때와 같은 물 심판이 아닙니다. 불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준엄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하늘로 옮기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죄 용서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주님을 영접하여 새 사람, 새 하나님의 백성이 되십시오.

주님을 믿기는 믿는데 자행 자지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길에 있지만 험한 풍랑에 힘들어 하시는 분은 않계십니까?
뛰어 내리지 마십시오. 인내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11 노아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7장 1-24절
212 새 세계, 새 가정 창세기 9장 1-10:32
213 바벨탑의 비극 창세기 11:1-9
214 새 생활, 새 법칙(III) / 빛의 열매를맺으라. 에베소서 5:3-9
215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16 새 생활, 새 법칙 (2) 에베소서 4:25-5:2
217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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