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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호산나 (엘림장로교회040509)
참고: 마태복음 21:1-11
종려 주일과 창립 24주년을 맞이하신 엘림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885년 4월 5일 고국의 인천항에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부부 선교사가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후 100년이 지난 1985년 4월 7일 부활 주일에 East San Jose에 있는 Alum Rock Covenant Church에서 산호세 한인 성서교회가 개척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워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바로 살아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가 지금의 엘림 장로교회입니다. .

교회 개척기에 잊지 못할 많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매년 ‘감사와 찬양의 밤’을 통하여 우리들의 주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을 주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뜻깊은 모임들을 가졌었습니다. 그때 윤 미혜 집사님과 윤 정희 집사님이 반주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은 다 결혼하셔서 2 아이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그 때는 고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윤 권사님이 찬양대 대장으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 때 찬양대원으로는 안 현신, 윤 진노 집사님이 현재 본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90년 봄에 가진 ‘증인들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 주일부터 뮤지칼이 시작됩니다. 윤 진노 집사님과 모든 출연진들과 함께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이 자손이여!’라는 찬양을 유대인 복장을 입고 힘차게 부르면서 들어오던 모습이 눈에 생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면 꼭 지켜야 할 절기들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절기인 유월절은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유대인의 집을 뛰어 넘어 장자가 죽지 않고 구원 받고 애급의 노예생활로 부터 떠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는 바로 유월절이었습니다. 주전 586년 남 왕국 유대가 바벨론에 망한 이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유월절이 되면 많은 해외 유대인들도 순례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과 함께 절기를 지키러 올라가는 무리들도 있었고, 이미 예루살렘에 도착해 있었던 군중들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2,13 절을 보면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뜻 깊은 종려 주일과 창립 기념 주일에 다음 몇 가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21장 1,2절을 보면,

첫째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대한 순종과 헌신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두 제자를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와 그 곁에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동쪽에 있는 감란산 자락에 약 1 마일 정도 떨어진 벳바게라는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가지러 간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에서 약 2 마일 떨어진 마을입니다.
베다니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나사로를 살리신 곳입니다. 어느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베다니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나귀를 가지러 간 제자들 잘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태가 기록한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전적 순종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이런 저런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권위, 주님의 전능하심을 여러번 경험했던 제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베다니로 달려가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귀와 그 그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주님의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믿음과 순종을 키우시기 위해서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에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뜻깊은 날에 내가 삶에서 주님이 명하시는 것을 순종하면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데, 이리저리 미루고, 주님께 말대답 하는 것이 있으면 돌이켜야 하겠습다. “주님 저의 불순종과 드리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주님의 역사에 필요하신 것이 나에게 있으면 아깝지 않게 주님이 사용하시도록 드리는 넉넉한 마음이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드릴 때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립 24년이 되기까지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많은 성도님들이 있으셨습니다. 본 교회 창립 멤버이신 윤 장로님 내외분의 많은 수고를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윤 동우 권사님이 타고 다니시는 승용차의 번호판에는 영문으로 GAMSA (감사)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88년 경에 구입하신 것입니다. 그 차를 구입하실 때, 타 지역에서 교회 행사를 위해서 교회에 손님들이 오시면 모시기 위해서 장만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나귀의 주인처럼, 주님을 위하여 승용차를 주님의 역사에 사용하셨습니다.

종려주일은 ‘호산나’즉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구호만을 되뇌이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 중심에서 나오는 고백으로서 온전한 순종과 헌신과 함께 ‘호산나’를 소리쳐야 하는 날입니다.

둘째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왜 예수님이 나귀를 타셨을까요?
다윗 자손이시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백마를 타시면 안 되시는 것일까요? 구약 성경 스가랴 9장 9장에는 메시야가 오실 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히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힘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새끼니라.” 본문 5절은 바로 스가랴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심을 삶의 최 우선순위로 하셨습니다.
동시에 약속된 ‘메시야’이심도 스스로 증거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심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겸손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누가복음 19장 41절에서 주님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그 도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왜 우셨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긴다는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대적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비참하게 망할 것을 보시고 우셨습니다(누가 19:42-44)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처럼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뤄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함을 배워야 하겠습다.
이렇게 되려면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믿음의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앞과 뒤에 서서 나무가지를 흔들며 왕으로서 모시기 위해 그들의 겉 옷을 깔면서‘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환호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이 함성을 듣고 종려가지를 꺽어 흔들면서 나왔지만,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왜요? 그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로마로 부터의 해방과 편안히 부귀 영화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이것과 무관해 질 때 군중들이 어떻게 돌변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무작정 구호나 형식을 따르며, 혹은 내 꿈, 이상 명예를 이루는 것이 신앙 행위의 동기가 된다면, 마음 중심에서 ‘호산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읽지는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21장 12-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은 예수님이 성전 동 북쪽에 위치한 로마 군병들의 집결지인 안토니오 망대로 가셔서 말씀 한마디로 그들을 다 없애시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아주 다르게 예루살렘 입성 즉시 성전으로 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 짐승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13 절에서 “너희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성전에 올라 올 때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돈으로 가져와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삿습니다. 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성전에서 쓰는 돈으로 바꾸어 드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주화에는 로마 황제의 모습이 조각 되어 있었으므로 성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들을 사용해서 제사장 그릅인 사두개인들이 대목을 잡아서 폭리를 취했습니다. 환율대로 바꿔주지 않았습니다. 폭리를 취했습니다. 제물로 쓸 동물의 값에 5배 10배를 받아도 할 수 없이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내어 쫏으셨습니다.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주님은 주님께 나오는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 즉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성전에 들어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영접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인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보다는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누구도 눈길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분은 다 주님의 성전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고린도 전서 3장 16절을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성전이 어떻습니까? 주님이 보시고 정결하게 하실 것은 없습니까? 거짓, 시기, 질투, 불신앙, 교만등의 쓰레기는 없습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이런것들을 다 쓸어 버리시고사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잃은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까?. 실제로 기도하고, 그런 사람들을 대접하고 의도적으로 만납니까?

우리 교회도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적 유익과 편의를 위해서 사용되는 곳입니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고 할 때, 정말로 정직하게 합니까? 나의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습니까? 엘림 장로교회를 보실 때, 예수님이 정결하게 하실 것과 이루시고자 하시는 열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생각만 하십니까?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교회로써 주님이 보시는 영육이 회복되고, 연약한 자가 건강해지고,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통해 회복되고, 예수님을 만나서 새 사람 되는 데 쓰임 받는 교회입니까?

엘림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나는 주님께 순종합니까?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온전히 드립니까?
안 그렇시다면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중심에 ‘호산나’라고 외치는 신앙일까요?

나는 주님의 겸손을 배웁니까? 주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에 최대의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주님을 대적하여서 예수님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한 사람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나의 마음 중심에서 ‘호산나’를 부르게 할 수 있는 삶일까요?

마지막으로,
나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며 사는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임입니까? 엘림 장로교회가 주님을 만나서 치유 되어야만 하는 분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습니까? 어떤 일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중심에 ‘호산나’를 외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63 중심에 호산나 (엘림장로교회040509) 참고: 마태복음 21:1-11
16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참고: 요한복음 14:1-14
165 어둔 세상, 밝은 행실 참고: 로마서 13:11-14
166 준비 하시고 사십니까? 참고: 마태복음 25:31-46
167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참고: 히브리서 12:14-29
168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참고: 마태복음 6장 5-15절
169 목적 있는 섬김인가? 참고: 창세기 24장 10-14
170 나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 참고: 디모데 후서 4:9-18
171 이제부터는 참고: 에베소서 4:14-16
172 어떻게 살까? 참고: 전도서 11:1-8
173 베뢰아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참고: 사도행전 17:10-15
174 건강한 신앙공동체의 길 참고: 빌립보서 4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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