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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OOO.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OOO.

 
꼭 25 년 전 12월 중순에 공군 사관학교를 마치고 군에 복무하면서 의학을 공부하던 아들과 동부에서 공부하던 딸이 예고도 없이 남 가주에서 사역하던 우리 부부를 방문했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방문한 이유는 우리 부부의 결혼 25 주년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었다. 바쁜 학업에 쫓길 터인데 시간을 내서 먼 거리까지 와서 축하를 해주는 자녀들 때문에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을 가졌다.
그 때에 우리 부부에게 아들과 딸이 준 선물을 결혼 반지였다. 물론 우리 부부가 결혼 할 때에 금으로 만든 반지를 교환했었다. 그런데 결혼 직후에 우리들이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긴급 구호 모금을 하게 되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미국 선교 단체가 운영하는 결핵 요양원 운영이 매우 어렵게 되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기도하는 가운데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우리 부부가 합의해서 우리들의 결혼반지를 빼서 후원금에 보탰다.
아이들이 자라서 중학교 시절에 “왜 아빠와 엄마는 결혼 혼반지가 없어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 반지를 팔아 결핵 환자들을 후원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다 큰 아들과 딸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그 반지를 사서 우리 부부에게 선물해 줄 때의 고마워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결혼 어느새 결혼 50 주년을 넘겼다.
 
대 다수의 기혼자들이 경험하는 일들을 우리 부부도 겪어왔다. 무엇보다도 건강의 문제가 우리 부부에게는 심각했다. 결혼 후 8년 후에 아내가 매일 아파서 힘들어 할 때에, 약국에 가서 진통제만 사다가 먹었다. 추운 12월에 배를 움켜쥐고 뒹구는 아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갔지만 돈이 없어서 입원을 못하게 되어 병원 로비에서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말씀을 가르쳐 주었던 자매님의 어머님이 의사인 것을 알고 전화를 거니 근무하신 병원에서 응급차를 보내 주셔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으나 내가 신학교를 다니던 때라 치료비를 낼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정을 전해 들으신 분이 치료비를 대납해 주셨다. 지금도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 이후 몇 년 지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도 10년마다 집사람의 간 부근에 있는 관에 돌이 생겨서 큰 고통을 겪었다. 바로 지난해 COVID-19 이 시작될 때에 네 번째로 똑 같은 상황이 일어나서 응급실에 갔지만, 환자들이 넘쳐서 대기실에서 11 시간동안 아픔을 참고 견딘 끝에 진료가 시작되어 10 일을 입원하면서 치료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얼마 후부터 또 다른 응급 상황으로 인하여 2 번이나 더 응급실을 가야했고 여러 가지 검사와 시술을 해야 했다.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났는지 꿈만 같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병원 입원과 보호자 출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다.

나도 남 가주 풀러톤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에, 북 가주에서 개척한 젊은 선교회를 함께 돌보기 위하여 오가면서 사역하느라고 무리를 한 결과인지는 몰라도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지 못하고 감기 약만 사먹으면서 버티다가 큰일을 당했다. 그 당시에 의료 보험이 없어서 의사의 진단을 받기 위하여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던 중에 아주 중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아는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의사 선생님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았다. 아는 전도사님이 운전을 해 주셔서 도움으로 사무실에 갔더니, 놀라시면서 목사님! 응급한 상황입니다. 제가 신장 전문의입니다.” 하시면서 즉석에서 치료를 시작 하셨다. 15일 정도를 통원 치료를 하라고 하시면서 치료하여 주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치료가 된 후에 사실, 목회를 접으셔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
   금년 5월부터 11월까지 담당 의사의 권유로 정밀 검사를 하는 가운데 암으로 추정되는 3 곳이 있어서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검사와 촬영 및 조직 검사를 했다. 검사를 위하여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의 부작용 때문에 잠을 잘 잘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니 참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한 가지는 10월 19일에, 다른 한 가지는 11월 5일에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11월 12일에 암이 아닌 것으로 판정 났다. 그리고 연약한 신체 부분을 강화해 주기 위한 처방을 받아서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한꺼번에 나타난 건강의 이상 신호를 받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었다.
살면서 때로는 경제적인 문제, 사역을 하면서 당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에 결혼 50 주년을 맞게 된 것이 아닌가.
 
결혼 50 주년이 되니 아들이 49 살이 되었고, 딸이 47 살이 되었다. 자녀들이 중년의 나이지만 머지않아 장년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들은 손자가 셋이고 손녀가 하나를 두었다. 그리고 딸은 손녀만 셋이다. 우리가 결혼했던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지금 맏손자는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한 번도 못 생각한 귀여운 손자손녀가 일곱이나 된 것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아들 부부와 딸 부부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단란하게 살아감에 더 할 나위 없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다. 아들 삼열가 일곱 살에, 딸 한나는 5 살에 미국으로 왔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서 우리 부부가 결혼 50 주년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 꿈만 같다.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이 금혼식을 맞이하실 때에 존경하며 부러워 때가 기억난다. 어느덧 우리 부부가 금혼식을 지나게 되었다니 꿈만 같다.

우리 부부가 맞이할 금혼식을 어떻게 의미 있게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는 분들에게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가족중심으로 지내고, 우리들이 자축하는 경비를 쓰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는데 얼마라도 쓰자는 데에 서로 이의가 없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변종인 오미크론 때문에 자녀들의 식구와 함께 모이는 계획까지도 접어야 했다. 아들은 오하이오 주에 사는데 일곱 식구가 비행기를 타고 오기가 쉽지 않았다. 딸네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있어서 어느 식당에 가서 모이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금혼식 가족 축하 모임은 취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도 감사한 것이 있다. 맏 외손녀딸인 나오미와 동생 이바가 우리를 축하해 주기위하여 케익과 피자를 손수 구워서 우리 부부가 사는 아파트로 가져왔다. 약 한 달 전에 운전하기 시작한 나오미가 친히 운전을 하고 와서 전달해 주면서 금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두 외손녀딸들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금혼식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결혼 50 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부부에게 건강을 주셨고, 위기와 실망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로 살아 온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언제 주님의 부름을 받게 될지는 모르나 그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직감한다. 글의 제목처럼 우리 부부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금혼식을 맞았다. 그리고 금혼식을 한 분들에게서는 한 번도 못 본 금혼식을 보냈다. 주여! 지금까지 동행하시며 인도하신 그 손길을 계속 의지하며 힘차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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