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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8-)
요한복음 11:23-27
며칠 전 인터넷 신문을 보니 에집트에서 연구하는 고적 답사팀이 실제로는 오래전에 바로왕의 왕능인 피라믿에서 발견된 배를 복원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배를 일컬어 ‘태양선’이라고 합니다. 왜 피라믿 안에 배가 있을까요? 옛날 애급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배를 타고 저 먼 곳으로 간다고 해서 큰 배를 만들어 무덤안에 넣었습니다.

제가 청년시절 때에‘몬도가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에 각 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장사 지내는 풍습들이 소개 된 장면이 있었습니다. 동양 어느 나라에서는 관에 돈을 많이 넣어서 장례를 치루는 풍속이 기억납니다. 아마도 죽은 영혼이 먼 곳으로 갈 때 여비로 사용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옛날에 헬라 사람들은 시체를 묻기 전에 입에 돈을 한입 가득히 넣어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어떤 강을 건너서 딴 세계로가는 데 배삯으로 쓰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동양에서는 죽은 후 황천에 간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종교에서든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죽은 후에 어느 곳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물론 무신론자들 가운데는 죽으면 그만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지난 세기의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였던 버트란드 럿셀 같은 사람은 “나는 죽으면 썩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내 자아의 어떤 부분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약 1세기 전에 태어난 전도자 디 엘 무디는 “여러분, 어느날 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지 마십시오. 저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오늘 묵상할 말씀은 사도 신경 가운데 마지막 부분입니다. “몸이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공자에게 어떤 제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살면 되는데,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때 공자는 “얘야, 내가 살아서 일도 다 모른는데 어떻게 죽은 후를 알겠느냐?” 정말 성현다운 솔직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이 잘 아시는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아픈 나사로를 고쳐주시기 바래서 예수님의 도움을 청했는데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죽은지 나흘이 지나
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 눈물 짓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룻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들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와 성도들의 장례를 치룬 후 하관을 하고 돌아옵니다. 그 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실 줄 압니다. 정말 사람
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인가. 이 냉혹한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신조의 마지막 부분은 이 심각한 인생의 당면 문제, 즉 누구나 당면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죽음 후에 대한 것은 인간이 추축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죽음 이후에 대한 분명한 답이 됩니다.

1. 성경은 인생이 다시 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이사야서 26장 19절에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들의 시체는 일어나리라.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으리로다.”

다니엘 12장 2절에는 “땅에 티끌 가운데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 무궁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부활이 가능할까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흙에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28,29절에서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말입니다.

죽은 자가 살 것에 대한 것을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실제로 보여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누가 복음 7장 1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나인성이라는 곳으로 가시는데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 슬피 울며 시체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만나셨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 앞에 가셔서 “울지 말라.”고 하시고 관에 손을 대시면서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청년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마태복음 9장 18절 이하를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12살난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가셔서 그 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죽은 소녀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오늘 읽으신 본문 요한복음 11장 27절 이하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이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을 열게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너라.”부르시자 “죽은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만이 죽은 자를 살린 것이 아닙니다.
구약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하던 베드로도 사도행전 9장에서 성도들을 위하여 많은 선행을 한 도르가가는 여인을 죽음에서 살려준 사건이 기록되어있고, 사도 바울은 선교 여행 중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졸면서 듣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드로아의 청년 유두고를 살려준 사건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상의 예에서 생명을 다시 얻은 분들이 다시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은 능력을 역사 가운데서도 실제로 보여 주셨습니다.

3.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본 제자들과 무리들에 대하여 10회 정도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든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모든 신약 성경 저자들이 한 목소리로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고린도 전서 15장 51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너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은자들이 다시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낮은 몸을 자기 영왕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는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습처럼 영광된 몸을 입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몸이 다시 산다고 하는 신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 영혼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전 존재, 전 인격을 다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도 만드셨듯이 인간의 영혼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전체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 풀라톤은 ‘영혼은 불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에서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국에서는 광우병에 염려로 촛불 시위가 많이 있었습니다. 초에 불이 붙어서 타면 초가 점점 작아집니다. 분명히 초가 없어졌지만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불이 탈때 탄산까스로 변했을 뿐입니다.

무덤에 뭍이면 육체가 썩어집니다. 그래서 흙의 일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은 후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흩어진 원소들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흰 옷을 입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 이하를 보면 “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다시 살 부활의 몸은 다시 죽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슬픔과 눈물과 고통을 겪지 않는 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까지 다시 살리실 주님이신데 귀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영적인 존재, 즉 영혼을 소유한 존재인 우리의 영혼을 버리실까요?

그렇실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옆에 있는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힙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품으로 갑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때, 마지막 날에 주님이 천사장의 나파소리와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의 재림을 하실 때, 이 육체까지 부활해서 몸과 영혼이 합한 전 인격이 구원 받아 온전히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어 영원 무궁토록 주님과 함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4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주의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서 좆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죄와 사망의 어두운 권세를 완전히 부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시어 재 창조된 우주에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 복음 5장 24절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닌 사명에서 생명으로 옮겼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은 얻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만날 그 과정을 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날엔가는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영혼이 갈 곳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 그곳에 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르게 깨끗하게 밝게 삽시다. 그래서 세상에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삽시다. 이미 시작된 천국 시민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죄 용서함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영원한 멸망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무시해서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 받도록 오늘도 문을 열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천국 백성이 되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이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을 기뻐할 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계신 분들도, 영생의 부활로 일어나도록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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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8-) 요한복음 11:23-27
188 값진 만남을 위하여 사무엘 상 20:30-42
189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1:38-44
190 일어나라!빛을 발하라! (2) 이사야 6:1-12
191 전능하신 하나님 (1985.3.17) 본문 / 창세기 1:1-5
192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1985.3.31) 창세기 1:1-18
193 창조주 하나님 (1987.6.7) 창세기 1:1-25
194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2) 창세기 2:1-24
195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1) 창세기 1:26-2:5
196 실낙원의 비극(1) (1987.6.28) 창세기 3:1-9
197 실낙원의 비극(2) 네가 어디 있느나? 1987.7.5 창세기 3:9-24
198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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