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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1985.3.17)
본문 / 창세기 1:1-5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옛날에도 무신론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무신론 집단인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크게 구분하면, 피부 색깔에 따라서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으로 나눌 소 있고, 종교적으로 나누어 본다면, 신교, 구교, 회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 체제로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로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나눈다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그의 일생은 너무나 큰 차이를 만듭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그의 일생이 겸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진리를 삶에 이루기 위하여 사고하고 행동하고 생활 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진리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아 잘못된 점들이 발견되면 고치려고 힘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무신론자들은 힘과 권력과 지기 이익과 쾌락을 위하여 살며 육체적 만족과 풍요를 위하여 삶을 살아 결과적으로 허무하게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의 97%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75%가 교회나 회당에 연결되어 있고, 평균 1개월에 한 번 이상을 출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70년대에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이 나와서 신학계에 크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죽었다.”는 말은 소련의 우주인 유기 가가린 만이 아니라, 유신론의 기초 위에 세워진 미국이나 자유진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유추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1장 20-21절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결과 과학이 발전하고 문화가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광대 무변한 우주의 질서를 보십시오. 작게는 태양계를 보면 지구를 위시해서 여러 별들이 다 다르지만 일정한 계획과 운행의 법칙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산물일까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회중시계를 주웠습니다. 가만히 보니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분주히 돕니다. 분침과 시침이 돕니다. 그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분명히 “이 물건을 누가 만들었을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계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고안을 하여 만든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만든 목적도 분명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해서 시계를 만든 것입니다.

C.S. 루이스라는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는 “우주가 우연이라면, 우유병을 쏫아서 런던의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것처럼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양심이 있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하늘에는 별, 그리고 내 마음에 있는 도덕적 법칙 이 두가지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이 양심의 명령에 순종할 것에 대하여 매우 강조했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사람이 날 때에 선천적으로 음악이나 기하학의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도덕적 의식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에 대한 개념은 인류 역사에 계속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양심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거울입니다. 양심이 인간에게 있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말해 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는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입니다.
영리한 개나 고양이나 원숭이가 예배당을 짓고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에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미개하다고 할찌라도, 신전을 짖고, 영혼 불변에 대한 의식을 가지며, 예배를 드린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는 종교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절대자를 믿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본능에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있기 때문에 물욕이 있습니다. 지식의 대상이 있기 때문에 지식욕이 있고 권력이 있기 때문에 권력욕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종교 본능이 있는 데, 이것에는 대당이 없을 수 있을까요?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교부 어거스틴은 “사람들의 마에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에는 영적 기갈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그 영혼이 공허합니다. 고독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우연한 존재요, 무의미한 원자의 한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풀라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실론자는 영적 환자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만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나누고 좀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범신론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 속에는 다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물건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범신론자들은 물건까지도 예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원론자들이 있습니다.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고 이 세계는 이들 신의 결전장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럴듯하지만, 여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정된 삶, 쾌락, 성공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한 과정이나 얻은 후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습니다. 선한 것은 선한 신에게 속했다면, 악한 방법은 악한 신에게 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 아님으로 선과 악에 대한 판가름은 인간의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한 인간이 선신과 악신을 구분하고 믿는다는 것은 설명이 안됩니다.

유일신론자들이 있습니다.
즉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회교, 기독교가 여기에 속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악한 천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악령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존재들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악한 천사는 하나님이 창조 하신 천사가 타락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 지혜, 영광을 얻고자 하는 악한 천사는 이 세상을 점령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허무와 좌절과 혼돈의 세계로 몰아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천사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세상을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신, 구약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저 먼 하늘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가정, 교회,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에 관심이 있으시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뽑으시고, 예언자들을 보내 주시고 마지막에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 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게신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고, 회개하여 돌아 오는 것이 구원의 기초입니다.

사람들이 급할 때는 “아이구, 하나님! 도와 주세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어려운 일 도와주는 정도로 그 이름을 부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되 머리로만 믿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믿지만 심장과 손과 발과 눈과 귀가 하나님으로부터 멉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입으로만 “여, 주여!”라고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사십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삽니까?

로마서 1장 21절을 읽으실 때에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이 세상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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