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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상 20:30-42 |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정성스럽게 차려준 저녁상을 받았습니다. 음식을 먹어보니 맛이 없었습니다. 하는 "말이 당신은 음식도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교육하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한 후에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다가 나와 보니 말끔히 치운 식탁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내가 음식도 못하고 자식도 잘 교육하지 못하는 여자이니까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서 산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라는 글이었습니다.
일생을 함께 살기로 굳게 다짐한 부부일지라도 그 만남을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인생을 값지게 살기 위해서는 3가지의 중요한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저는 이상의 것들 위에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어떤 종교와의 만남입니다. 신앙의 대상을 잘못 만나서 일생을 잘못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편, 우리들이 만남을 가질 때 범하기 쉬운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만남을 통하여 받기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만남을 매력에 근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남을 값지게 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추구하는 만남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만남이 단명합니다. 서로에게 값을 매깁니다. 조그만 일에도 오해를 합니다.
철학자 마틴 부버가 말한 인간의 만남의 관계가 ‘나와 그것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로 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남이 값지려면 서로 끝없는 노력과 오해의 계속적인 극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부부간의 만남, 부자간의 만남, 동료 그리고 성도들의 만남이 값지기를 소원합니다.
사실 성공적인 인생 뒤에는 인상 깊은 만남이 있고, 실패한 인생 뒤에는 후회스러운 만남이 있습니다. 가치 있는 삶 속에는 탁월한 만남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삶의 무의미 속에서 괴로워하던 인생이 놀라운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의 새 지평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상 인생이란 그 자체가 만남의 연속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곧 우리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축복된 만남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의 값진 만남을 위하여 이곳에 와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 교회를 설립하셨고, 이 교회 안에서 제가 성도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은 저의 일생에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누리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넓혀 가는 일에 힘을 모으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값진 만남을 주셨습니다.
제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 넣어서 제가 늘 볼 수 있도록 보관된 편지가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목사님과의 만남이 우연인것을 생각했는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세월이 갈 수록 깊이 느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미 봉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들의 만남을 값지게 가질 수 있는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다윗은 베들레헴의 목동이었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거인 장군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사울이 고통을 받을 때 수금을 타서 위로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의 용맹은 소문이 났고, 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습니다.
사울 왕은 이런 일들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자기 딸을 주어 사위를 삼았어도 시기심이 불타올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을 직접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겠지요.
다윗과 사울 왕과의 만남은 문자 그대로 불행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아들이인 요나단과 다윗과의 관계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요 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값진 만남을 갖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그들은 상호간에 지극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심이란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위하여 나의 마음의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바른 인간 관계는 사랑 안에서 맺어지게 되는 데 사랑, 우정 또는 진정한 인간과의 만남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관심은 관계를 형성합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의 마음에 상대방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를 만나고 아낀다는 것은 ---를 내 마음의 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의 마음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진정한 만남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과 요나단과의 관계를 살펴보십시다.
- 34절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이 아버지로부터 위험을 당하지 않도록 위험을 감내했습니다. 다윗의 신변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생명 을 찾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만큼 관심을 가졌습니다.
- 아버지가 정말로 다윗을 죽이려 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서 위험을 감내했습니다.
- 서로 헤어질 때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면서 서로 끌어 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아주 서럽게 울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문지 그대로 형제 지간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미래의 안전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후손들도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낼 것을 맹세했습니다. 왕권을 넘어선 진정한 우정과 관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만남은 자신의 권력, 이익, 입장을 넘어선 상대편의 유익을
위하여 내려놓는 겸허함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들은 상호간에 지극한 돌봄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만남, 사랑의 관계는 자연히 ‘돌봄’이 있습니다.
돌봄이란 무엇입니까?
돌아보는 것이 돌보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돌봄이란 나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필요만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돌봄이란 상대방을 향한 책임을 말합니다.
영어의 어원에서 볼 때 책임은 응답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Responsibility = Response+ability입니다. ‘책임이란 곧 상대방이나 상황에 필요에 대해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상황의 필요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핑계대지 않고 스스로 응답할 수 있는 내적 능력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과 요나단은 어떻게 서로 돌보았습니까?
- 사물엘상 18장 3,4절을 보면 요나단을 다윗을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20장 17절에도 다윗을 제 몸처럼 아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3절 말씀을 보면,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고 돌보는 것을 사울 왕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가 다윗을 살해하면 자기의 왕권이 계승될 것이 분명하지만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해치고자 한다면 그것을 즉시 알려 주고자 했습니다.
- 그래서, 화살을 쏘아 아버지의 의중을 알려 주기로 했습니다. 화살을 멀리 쏜 것으로 종에게 말하면 빨리 도망가라는 것으로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진정한 만남은 우정과 사랑을 만듭니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은 “많은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쉰들러스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오스카 쉰들러라는 독일인 사업가는 유대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약 4천명의 유대인을 구했습니다. 전재산을 팔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 감사해서 유대인들이 금 이빨을 뽑아서 쉰들러에게 반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쉰들러는 자신의 한 일에 아직도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이 넥타이 핀을 팔았었더라면 ----. 내가 이 자동차를 팔았었더라면…이라고 말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 간의 만남이, 부부의 만남이, 부자간의 만남이 값지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관심 즉 마음에서 시작에서 손과 발과 눈으로 직접 돌보는 수고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일 있지요? “세상의 많은 사랑은 혀끝에 있지만, 진짜 사랑은 손끝에 있다.”고
사도 요한 선생님은 “너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상호간에 지극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존중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만날 때 관심과 돌봄은 있지만 존중의 요소가 빠지면 그것은 사랑스런 만남이 아니라 소유이거나 지배가 됩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상대방에게 관심을 쏟고 돌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것은 좋은 만남이 아니라 지배입니다.
존중이란 무엇입니까?
존중이란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거나 높여서 받아주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하려면 우리는 상대방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배려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대해서 하나님 노릇하기를 그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상대방을 용납하며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하게 됩니다.
만남을 통하여 상대방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비켜 서주며 물러서기를 배울 때 진정한 존중이 있는 것입니다. 만남 가운데서 자신을 내어 주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억지로 소유하지 않는 것이 존중하는 마음의 참된 모습니다
어떨 때 진정으로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할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무엘 상 20장을 보면,
- 3절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 12절을 보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증인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23절에도 “우리가 약속한 말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길이길이 자네와 나 사이에 증인이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왜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이 그렇게 값진 것일까요? 그것은
-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 안에서 만났습니다.
-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 안에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친숙함은 소흘함을 낳기 쉽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격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고, 또 존중해주는 관계가 계속 될 때 값진 만남, 잊지 못할 만남을 갖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부부간의 만남은 어떠합니까?
부자간의 만남은 어떠합니까?
성도 상호간의 만남은 어떠합니까?
값진 만남을 위해서 내가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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