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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비극(1) (1987.6.28)
창세기 3:1-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6)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 알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본문을 살펴 보면
* 첫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가?
* 타락한 인간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 죄 지은 인간의 말로는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부분만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내용 가운데 첫 부분을 오늘 아침에 묵상하겠습니다.

사탄은 뱀을 이용해서 하와에게 접근해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속삭였습니다. 유다서 6절을 보면 “ 또 천사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기가 사는 곳을 버렸을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탄은 아담 이전에 이미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본래적 사명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던 영적 피조물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는 사탄을 “거짓말 장이, 살인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공중에 권세 잡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성서 전체적으로 보면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의 길을 것도록 유혹하는 간교한 영적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9절과 20장 2절을 보면 “그 큰 용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여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이라고 말쓸하셨습니다.

이 사탄이 어느 날 에덴 동산에 나타났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영장인 인간을 타락시켜 죄의 종이요, 사탄의 종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누구에게 접근했습니까?
돕는 배필이요, 감성이 강간 하와에게 접근했습니다. 아담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떤 질문을 했습니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습니다. 이것은 반문식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믄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명령을 떠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실과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묘한 질문과 함께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까 봐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라고.

그러면, 하와는 이 교묘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하와는 이 문제에 대해서
•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았습니다.
• 남편인 아담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 사탄의 말을 듣고, 행동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자기가 볼 때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함직도 한 선악과에 손을 뻣쳤고 이윽고 먹게 되었습니다. 아담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그냥 받아 먹었습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보면, 사탄이 인간을 유혹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의심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과 사명을 잊어 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하나님을 떠나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면, 그들이 유혹에 넘어간 결과는 어떠합니까?
• 7절말씀을 보면, 그들은 수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벌거벗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4편 1,2절을 보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빛난 옷을 입히셨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 9장 2-3절을 보면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분들이 입은 옷이 무엇어었습니까? 더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새하얗게 빛나는 옷이 아니었습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흰 세마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무시한 후에, 그들은 벌거 벗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이 거치자 수치, 어두움 그리고 육체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입히신 영광의 옷이 벗겨지고 육체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8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했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했습니다. 숨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도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죄지은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죄 지은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입니다. 그들이 죄를 짖기 전에는 동신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는 그들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 되었습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부끄러운 모슴으로 하나님을 만나뵐 수가 없었습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본 것은 수치심이었습니다, 교제의 단절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 그 자체가 죽음입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를 유혹하려고 다닙니다. 사탄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도록 부추깁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왜곡되어 알도록 인도합니다. 우리 의지와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여기도록 부추깁니다. 죄와 타협하고 묵인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도록 만듭니다. 이단들이 그렇게 합니다. 과학과 경험주의가 그렇게 부추깁니다. 인본주의가 그렇습니다. 윤리적 방임주의가 그렇게 합니다.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는 삶을 간단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 계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를 간단없이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5장 17절에는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 그리고 시간을 바로 사용하는 분별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때가 악합니다. 가장 선한 것을 선택하고 매진하는 삶의 선한 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악은 모양이라고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을 시험치 말고, 반대로 마귀를 대적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혹시 마귀의 궤계에 말려든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의 명령과 사랑에 대하여 저항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낯을 피하고싶은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온전히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성숙한 신자가 되십시오.

요한 1서 3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와 주님을 덧 입을 때에 사탄의 능력을 이기는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실낙원의 비극이 복락원의 기쁨으로 변화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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