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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참고: 로마서 8장 26-30
고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 현대신학을 가르치시던 김 이태 교수님이라는 분이 건강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참으로 귀하신 인격자이셨고 학문에도 탁월하셨기 때문에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 오셨습니다. 가족은 물론 우리들도 탄식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짐 엘리엇과 같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1950년 중반에 아우기 인디언들에게 처참히 살해 당하게 하시는가?

우리 주위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잘 믿어 본을 보이는 사람이 아까운 나이에 병으로 고생하다가 숨을 거두는 것을 봅니다. 죄 없는 어린 아이가 알지도 못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심히 탄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데,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여 “ 왜 나에게” 라고 하시며 탄식하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종종 우리들의 이성과 성경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들을 만납니다. (예화/자동차 레인, 양말 7켤레를 세탁기에 넣음)

달라스 신학교 총장이신 챨스 스윈돌 목사님도 하나님의 뜻에 담긴 신비한 비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다가 당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봉착하면, 그것을 설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말라. 만약 설명을 하려 한다면, 당신은 인간의 지혜를 사용할 것이며, 단지 일을 복잡하게만 할 뿐이다. 오히려 “나는 모른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괜찮다. 하나님은 아시니까.” 그는 이러한 일을 우리들이 만날 때 인간적으로 생각하기를 그치고, 성서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지라고 권면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적 시각과 사고 방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8장은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죄와 싸워 ‘성화’의 과정을 가는 성도들에게 주신 교훈의 말씀입니다.
읽으신 말씀 조금 앞을 보면 ‘탄식’이라는 단어가 8장 22,23에 나옵니다. “피조물이 이제까지 탄식하며 고통 한다.”고 22절에 말씀합니다.

가을 단풍으로 병풍을 친 것 같이 산천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약육강식의 싸움이 있습니다. 먹히고 먹는 가운데 많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데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3절에는 성령을 첫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 까지도 우리의 몸이 해방되는 날을 신음하면서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한 구원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올 때 까지 여전히 우리 몸을 인하여 제한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정죄에서는 벗어났지만 완전히 죄의 세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죄악 된 옛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받습니다. 사탄의 공격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연약함과 무능함에 빠지게 됩니다. 몸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피곤을 느끼며, 때로는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변하여 새 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된 우리들에게도 탄식이 있습니다.

이럴 때 본문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26,27).

성도 여러분!
외국에 와서 살면서 사실 탄식하며 살 때가 없지 않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를 하려해도 말이 나오지 않을 때는 없습니까?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헛말을 하는 것 같은 때는 없습니까? 닥친 일을 해결할 길이 없어 손 놓고 앉아있을 수 밖에 없을 때는 없습니까?
그러나 26절을 보십시오!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때로는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이해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실을 바로 파악할 능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환경을 허락하셨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하여 종종 하나님께 잘못된 기도를 드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모세도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신명기 3:23-26).

사도 바울도 자신이 갖고 있는 육신의 가시 즉 질병의 치유를 위해서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고후 12:1-10).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가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을 겸손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실로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도와 준다’는 단어는 ‘두 사람이 짐을 함께 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보혜사 이십니다. 우리를 돕는 분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 그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25절 말씀처럼 기다릴 수 있게도 해 주시고 순종하게도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이 또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신지 아십니까?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주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분연히 일어서서 의심 없이 계속 성화되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 대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워 낙심 되고 탄식이 끊이지 않을 때 기억할 것이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2.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8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통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선하신 분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을 당할 때에도 그 환경이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유익이 되게 하여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사단은 우리를 유혹해서 그들을 낙심하게 하려고 힘씁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32: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들에 피는 풀도 가장 좋은 것으로 입혀 주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이유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고 계십니다(마10:31).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철저히 확신하고 신뢰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만날 때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약 1:2).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모든 환경을 동원해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평안과 풍요를 주십니다. 주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언제나 좋은 일만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과 역경의 기회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항상 좋은 일만 주시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들이 언제나 평안하면 교만해 지고 나태해 지기 쉽습니다. 성도들이 영적 잠에 빠지지 않고 깨어 각성할 수 있도록 시련과 환난을 허용하십니다. 언제나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우리들의 건강이 어떻게 됩니까?
성도 여러분!
욥의 경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 순간 재산, 자녀, 물질, 명예 그리고 건강마저 모두 잃었습니다. 욥은 왜 자기에게 이러한 시련이 찾아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저주했습니까? 아닙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여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그는 고백했습니다. 고난의 터널을 다 지난 후 그는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내가 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숙해 진 후 하나님은 이전 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한 경직 목사님이 드신 예화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있었던 이야기)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즉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이것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들이 주님의 형상을 본받게 되기 원하십니다(29).

29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구원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 살 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고,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영광의 부활을 덧입어 영원한 천국을 상속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은 곧 ‘소명’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우리를 파송 하셨습니다. 주님의 파송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지상 명령,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형상을 본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성화’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화’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 하는 성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경험한 성도들은 자연히 ‘전도’나 ‘선교’에 열정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성화’의 길을 가는 성도들의 마지막은 ‘영화’입니다. Glorify입니다. 30절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영화’ 즉 Glorify가 이미 일어난 과거형으로 기록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Denny라는 성경 학자는 ‘성경 가운데 가장 담대한 귀절’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은 안계십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에,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은 안계십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은 안계십니까?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시는 과정이십니다. 우리들이 깎이는 아픔이 있지만 결국은 주님의 모습을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구원 받아 의롭다고 인정함 받고, 성화된 삶을 살다가 어느날 영원한 천국 ‘영화의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영원히 살 것입니다. 탄식도,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그곳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질문들이 해답을 얻을 그날 이 오고 있습니다. 이것 을 믿으십니까?
이렇게 믿음으로 살다가 영광의 천국에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소망이 있으면 어떤 시련도 이겨 나가지 않겠습니까?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장 4절 말씀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75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참고: 로마서 8장 26-30
176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77 하나님이 주시는 복 아래 사는 방법 참고: 마태 복음5:1-6
178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 마태복음 5장 7-16절
179 새해, 새 결심 여호수아 3:1-6
180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강해 1) 스바냐 3:17
18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신경 2) 요한복음 3장 16절
18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사도신경 2-2). 베드로 전서 2:24
183 성령을 믿사오며(사도신경 3) 로마서 8:5-9
184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사도신경 5) 마태복음 16:18 골로새 1:18
185 성도가 서로 교통함을 믿습니다(사도신경 6) 사도행전 2:42-47
186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7) 에베소서 2:8-9, 로마서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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