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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는 자냐? 헤치는 자냐?
누가복음 11:14-26
 
제가 미국애 와서 매우 인상 깊게 본 것은 역사가 있는 교회에 가면,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 그리고 월남전에 참전해서 전사한 분들의 이름과 계급, 출생일과 전사한 날자가 적힌 금속판을 달아 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쿠퍼티노 시청 뒤에 있는 메모리얼 팍에 가 보았더니, 거기에도 전사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는 돌들이 성조기를 중심으로 해서 둥그렇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전 미국에서 지키는 메모리얼 데이입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한 분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는 물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군인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그런데 기억하실 것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니라,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전쟁보다 더 치열한 싸움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각 마을로 보내시면서 “양을 이리 떼에 보내는 것”과 같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싸움에 부름받은 군이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어두움의 영을 멸하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가르치셨고, 간단없이 악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40일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들이나 미친 사람들을 고치실 때에도 사탄은 예수님께 저항했습니다. 악한 사탄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자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도 미혹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일 수 없게 된 사람까지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갖은 비난돠 오해와 박해를 받으시면서도 병든자, 귀신 들린 자, 버림 받은 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억눌린 자들과 버림 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이 악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주님을 본 받으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시간과 관심을 쏟고, 섬겨주는 것 부터 싸움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을 싫어삽니다. 즉 자기가 지배하는 영들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냥 너나 잘 믿다가 천당가면 된다는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자신을 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원래 구약에서는 ‘바알세붑’이엇는데, 그 귀신은 불레셋 사람의 신으로서 ‘거주의 신’ 즉 ‘지역을 관할하는 신’ ‘또는 높은 곳의 주’라는 뜻인데, 예수님 당시에는 그 신을 비하해서 ‘더러운 귀신’이가는 ‘바알세불’로 불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냉소적이고 경멸하는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면, 인자가 천군과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태도는 경멸하는 태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경멸하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23절 말씀을 통항여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으리 말끔과 책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잘 믿느자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이중성을 질책했습니다.”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직책하셨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합니다, 그들의 삶은  실제로는 자기 본위의 이기적,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우리들이 정말로, 주님의 말씀을 존중합니까? 왕의 왕 주의 주님으로 믿고 온전히 순종하고자 합니까?  아니면, 나름대고 믿고, 내 기분대로 예수님에 대하여 반응합니까? 구약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드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너희가 입으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말입니다. 이런 행동은 주님을 경멸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어 쫓으심”으서써,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서 영적 싸움을 싸우는 일꾼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주님을 모르는 각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님의 충만한 함으로써,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우리들이 누리는 구원의 기쁨을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열매 맺고 사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래야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군사로 부름 받으신 여러분!
기억하십히오. 22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악한 사탄보다 “더 힘센 분”이십니다. 사탄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노략한 것들을 나누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저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다 같이 23절 말씀을 읽으시겠습니다.
매우 의미 심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기억하실 것은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듣기에 부담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의 말씀처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저주도하고, 찬송도 할 수 없다.”는 말씀과 일맥 상통합니다.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뱉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오늘 날에는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필요하면 세상적인 삶의 가차관과 인생관과 물질관에 발을 들여놓고, 필요하면 하나님께 오는 양다리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홰개해야 합니다!
영적 도덕적 세계에서 중립적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나락들이 있지만, 영적으로는 두 나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아니면 사탄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길이 많지만 영적으로는 두 길 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휴전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그리스도 편이나, 아니면 사탄 편이냐를 선택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은 주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 주님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모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헤치지도 않아, 그냥 지내는 거야.”라고 어떤 신자가 생각하고 산다면 실제로는 어떤 편에 선 사람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미 헤치는 쪽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실상은 주님 반대편에 서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실제로 어디에 서 있습니까?
모으는 자입니까? 헤치는 자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공동체를 모으는 편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헤치는 편에 서 있습니까? 모으는 련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고민도 안 되십니까? 그렇다면 어느 편에 서신 것입니까?
 
구약 성경의 사사기를 보면, 도보라와바락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대적 시스라와 싸울 용사를 모집하고 나가서 승리한 후에 드보라가 승전가를 지었습니다. 사사기 5장 23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모아 민족을 보호하고, 하나님이 주신 땅을 보존하기 위하여 싸우러 나갈 때에, 메로스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적군에 가담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여 함께 힘을 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하닌 말씀대로 그들은 결국 “헤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깊이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역사적인 산 교훈입니다.
 
성도 여러분!
머리로는 나는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겠다. 주님 편에 서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한다.”는 말은 예수님과 함께 행동을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원문에는 행동을 같이한다는 의미인 ‘메타’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택하신 모든 알곡들의 영적 추수를 위하여 일꾼들을 세우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과 우리들을 세우신 목적을 잊고 살면, 실제적으로 모으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은 헤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두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대 계명’과 ‘대 사명’입니다. 이것이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수표에, 수첩의 시간 배정에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시인 버질의 안내를 받아 지옥 구경을 하게 됩니디ㅏ. 내려가다 보니까 조그마한 문이 하나 있는에 그 문 어귀에 “이 문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소망을 버리라.”늘 글이 서 있었습니다. 안내자의 뒤를 계속 따라가 보니첫 방에 많은 사람들이슬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원망과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테가 안내자 버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때에 안내자가 대답하기를 “이 사람들은 전에 세상에 살 때에, 소위 중립자들인데, 하나님을 배반해서 나쁜 일을 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세상에 살 때 꼭 자기만 위해서 산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무론 천국이 이런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고, 지옥에 오게 되었는데, 지옥에서까디도 이런 사람들은 멸시를 받아 이렇게 첫 방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문학 작품 가운데 있는 한 소절이지만 우리들에게 경고하는 바가 큽니다.
 
성도 여러분!
부디 마음을 여시고 들어 주십시오.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본 교회의 임시 목사로 있으면서,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담임하실 목사님을 모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아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 편에 선 분드이 많기를 기대했고,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들이, 속한  속한 구역들이 더 나아가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힘을 모아서 잃은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부르신 부르심의 임무를 중성스럽게 따르는 주님의 정병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2 사역자를 세우기 위하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221 모으는 자냐? 헤치는 자냐? 누가복음 11:14-26
22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219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린도전서 3장 5-9절
218 역경에도, 순경에도 사무엘하 19:31-40
1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 참고: 창세기 3:14-24
2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참고: 로마서 8:29-30
3 새 해, 새 결심 참고: 여호수아 3:1-6
4 제일은 사랑 참고: 고린도 전서 13:13
5 무덤을 넘어서 참고: 에베소서 4:7-10
6 십자가의 도 참고: 고린도 전서 1:18-25
8 주지말 분노, 품지말 분노 참고: 에베소서 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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