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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도, 순경에도
사무엘하 19:31-40
(산호세 에버그린 교회에서)
 
I. 들어가는 말
  •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 하시기를 바랍니다.
  • 일생을 돌아 보시면, 많은 역경을 지나오셨을 것입니다. 전쟁, 질병, 좌절, 인간 관계의 갈등, 가난, 비난, 멸시 때로는 실패 …..
  • 그러나 순경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좋은 가정 배경에서 출생, 공부하는 기회, 취직, 사역지 결정, 결혼, 자녀의 출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 다윗 왕의 일생에도 순경이 있었습니다. 목동에서 기름부음을 받아서 왕이 된 것입니다. 골리앗을 죽인 사건, 사울 왕이 죽은 후 온 이스라엘 지파의 추앙을 받아서 왕이 된 것,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함락한 일들, 수 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일등 수 많은 일들이 그의 일생을 기름지게 했습니다.
  • 그러나 다윗 왕의 일생에도 쓰라린 역경이 있었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사울 왕이 그를 죽이기 위해서 창을 던지기도 하고 자객을 집으로 보내서 죽이려고 하기도 하고, 추격함으로 인하여 이곳 저곳을 배회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밧세바의 일로 인하여 죄를 지은 일로 인하여 눈물로 회개해야 하는 힘든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처절하고 비참한 역경은 그의 아들 압살롭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맨발로 감란 산을 오르면서 울며 울며 떠났던 날일 것입니다.
  • 우리들의 일생에서 순경을 지낼 때 만난 사람들 보다는 역경가운데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셨던 분들에 대하여 가슴 깊이 감사한 마음이 오래 간직됩니다.
 
(저의 예) 6.25 사변,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변 초기에 돌아가시고, 힘든 피난 생활을 끝내고 집에 왔지만 화재로 전소해서 있을 곳이 없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 집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어머님이 새벽에 일하러 나가셨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셨는데, 형제들이 나가서 놀다가 해가 지면 불도 때지 못하는 추운 남의 집으로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신 형 반의 담임 선생님이 가끔 해가져서 아이들이 다 집으로 들어간 후에 저희들이 있는 집을 조용히 방문해 주셨습니다. 따뜻한 밥과 반찬을 가지시고…. .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밥을 먹으면서 울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저는 선생님의 성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명범 선생님입니다.
  • 다윗의 일생의 위기에 도움의 손길을 준 분들이 여러분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그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사무엘은 그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멘토였습니다. 나단은 그의 죄를 책망해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한 분입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은 배고픈 그에게 떡 상에서 물려 나온 떡과 골리앗을 죽인 칼을 준 분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급히 떠날 때에, 레위 인들과 함께 법궤를 옮겨온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잊을 수 없는 분들이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그의 일생에 가장 힘들 때에 도움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바르실래라는 노인입니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인계할 때에도 바르실래와의 약속 이행에 대한 말을 할 만큼 다윗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의 생애에 바르실래를 잊지 못할 귀한 분으로 간직하도록 했을까요? 그의 학식과 지위, 명예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II. 중심 되는 말
1. 바르실래는 할 수 있는 한 정성과 힘을 다해서 다윗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9장 32절을 보면, 그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된” 사람입니다.
  • 그는 큰 부자였습니다.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했습니다.
  • 마하나임은 야곱이 고향을 돌아 올 때에 하나님의 군대가 지나가는 곳을 본 그곳입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왕으로 있을 때에 도읍으로 한 곳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오십 마일 떨어진 요단강 동부 므낫세 지파와 갓 지파의 경계선인 얍복강 북쪽에 있는 요새지였습니다. 다윗은 감람 산을 맨발로 울며 울며 올라갔고 고되고 허기지고, 목마른 도망의 길을, 따르는 군인들과 백성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서 건조한 땅 요단 동편의 레위인의 성 마하나임으로 치달아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왕도 거의 거지꼴이 된 듯합니다.
  • 예루살렘에는 왕과 관계된 사람으로는 후궁 열 명만 남기고 전원이 피난 길에 올랐고, 요압 휘하의 예루살렘에 있던 군인들과 불레셋 사람으로써 귀화하여 다윗과 동고 동락했던 잇대의 부하 육백 명도 함께 했습니다. 사무엘 하 18장 1절 이하를 보면 다윗은 길르앗에 진을 친 이스라엘 전역에서 모집된 수 많은 압살롬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웠습니다. 군인들을 세 떼로 나누어서, 삼분의 일은 요압에세, 삼분의 일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그리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가드사람 잇대에게 맡겨서 싸움터로 내 보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 드리는 것은, 바르실래가 “다윗이 마하나님에 있을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했다.”는 말씀을 통해서 바르실래가 얼마나 많은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했을 것을 상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이 각 지파에서 군인들을 모집하는 동안의 기간과 이동 기간을 생각해 본다면 며칠 정도를  도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분만이 다윗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7장 27-29절을 보면, 또 다른 분들이 있습니다.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도왔습니다. “그들이 침대와 이부자리와 대야와 질그릇도 가지고 오고,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씨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굶주리고 지치고 목말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꿀과 버터와 양고기와 치즈도 가져다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르실래는 긍휼한 마음을 가진 노인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다윗을 위하여 지원하고자 한 사람입니다. 그의 선행은 어떤 대가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 왕에 대한 존경과 사랑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의 상황을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압살롬의 군대를 다윗의 군대가 이길 것이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열세였습니다. 다윗이 전투에 지면, 그를 돕던 사람들은 자연히 불이익을 당할 것입니다. 처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그런 이해 관계가 무서워서 도움의 손길을 거둔 분이 아니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참으로 용기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선을 행할 기회가 있을 때에 손을 폈습니다. 펴되 아낌 없이 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0장 24절에서 성도들에게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고 그들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3장 17-18 절에서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르실래는 그의 재물과 정성과 시간을 드려서 위기에 처한 다윗 왕과 그의 일행을 도왔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일생을 드려 주님을 섬기신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바르실래 처럼 우리들의 재물로 위기에 처한 분들을 돕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서 최후의 심판의 장면에서 우리 주님은 양편에 선 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하시면서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은퇴하신 어르신네들이 할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의 길에서 힘들어 하는 후배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장로님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혹시 물질은 없으실는지 모르지만, 수 십 년의 목회 경험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후배 목사님을 격려하는 일, 찾아가셔서 함께 기도해 주시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일, 생일을 기억하시고 한 장의 정성 어린 카드를 보내시는 일, 너무
나 힘들어 기가 죽어 집에서 나오지 않는 후배를 데리고 나와 따끈한 밥을 사주시면서 격려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꾼들을 강하게 세우시는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는 섬기시던 교회의 교인 중에 세상으로 간 분들과 연락하셔서 주님께 재 헌신 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권면하실 수 있으실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하실 것으로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르실래와 같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제 장신대 학장을 지내신 박창환 목사님께 안부 전화를 올렸습니다. 올해 만 여든 여덟이십니다. 지난 3년간 니카라과에서 선교사로써 신학교 학생들
을 통역을 세우셔서 강의하시고 오셨습니다. 3월 14일에 소련으로 가시는데, 전에 사역하셨던, 신학교의 일로 가신다고 하십니다. 박창환 목사님이 가지
신 돈은 없으실지 모르지만, 가지고 계신 경험과 학식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 하고자 동분 서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시편 71편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만난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2. 바르실래는 다윗이 순경에 처했을 때에도 다윗을 격려하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제가 성경 지도를 찾아서 그 분이 사는 로글림이라는 곳을 찾았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길르앗 동쪽 지방이라는 것만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머물던 마하나님보다는 더 내륙 쪽인 것 은 분명합니다. 얼마의 거리인지는 모르나 바르실래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곡식과 꿀과 치즈와 침대와 그릇들과 밀가루와 밀과 보리, 볶은 곡식과 콩 등등을 마하나임을 날랐습니다. 정말로 충성스런 분이었습니다.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아름다움은 다윗이 역경에서 순경으로 전환했을 때에도 따뜻한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다윗은 전송하기 위하여 노구를 이끌고 요단 강까지 왔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잘 대접해 드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제안에 대하여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선한 일을 하되, 어떤 부귀 영화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의 대답에서 볼 수 있습니다.
36절 말씀을 보면 “이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려는 것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 하십니까? 부디 이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노구를 이끌고 왕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하여, 요단 강을 건너가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온 이분의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얼마나 훈훈합니까?
그 분이 다윗 왕과 그의 식솔들과 군인들을 돕기 위해서 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많은 거금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기가 죽은 후에 가지고 가지도 못할 물질은 물론 시간과 정성을 드려 다윗을 위기에서 도왔고 잘 됨을 축하했습니다. 다윗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바르실레의 아름다운 헌신은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 분을 통하여 “오리를 가라고 하면, 십 리까지 동행하라.”고 하신 예수님이 말씀을 삶에 실천한 분이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왼 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한 분”이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귀한 분임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배우고 싶은 어른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저도 팔십 세가 되었을 때에 이런 성품과 덕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캔 브렌차드가 쓴 책가운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은퇴하신 어른이시지만, 후배 목사님들, 신앙의 경주장에서 뛰는 성도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하는 것도 매우 귀한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에버그린’ 교회에서 정성 드려 모으신 헌금을 어려운 교회와 단체를 격려하시는 일에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도움을 통해서 격려하는 것도 중요한 줄로 압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나라를 건강하게 일구어 나가는 일꾼들이나 성도들이 더 잘 해 나가도록 박수를 보내고 격려의 말을 하는 것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교회 설립 예배라든지, 창립 기념 주일이라든지, 후배 목사님의 교회나 사회 단체에 대하여 정말로 축하 할 일이 생기면 참석하셔서 박수를 쳐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것도 매우 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래 전에 여러분이 아시는 김용준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에, 고국이 독립한 후에 미국에 온 유학생 2호이셨던 권 희상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L.A에서 뵙고는 약 10여 년 만에 뵈었습니다. 첫 말씀이 ‘이 목사, 얼굴에서 목사의 모습이 보이네.” 미국 심리학회 회원이시도 하셨던 목사님이 주신 덕담에 제가 힘이 나더라구요.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자, 그러면 바르실래가 많은 물질을 쓰고 시간을 드려서 끝까지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러면, 그의 가문은 망했을까요?
 
3. 바르실래의 가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주에 본 교회에 오셔 설교하신 조효훈 목사님이 후손에게 남겨주고 싶으신 성경말씀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는 시편 37편 25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바르실래의 후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에 그의 아들 김함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외의 구약 성경에서 세 절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37절 말씀을 보면, 바르실래는 그의 아들이 다윗 왕을 따라가서 섬길 수 있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그의 아들을 잘 대해 주시기를 부탁했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 왕과 이별하고 집으로 갔지만, 그의 아들 김함은 왕을 따라갔습니다. 다윗 왕을 모신 바르실래의 삶과 인격을 보고 배운 김함은 아버지 대신 충성스러운 부하로서 다윗을 잘 섬겼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 상 2장 7절을 보면 다윗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기면서 중요한 것들을 말할 때에,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에 대하여 분명하게 부탁했습니다. “길르앗 사람 바실래의 아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서, 네 상에서 함께 먹는 식구가 되게 하여라. 그들은 내가 네 형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나를 영접해 주었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레마야 41장 17절을 보면, ‘게롯김함’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다윗이나 혹은 솔로몬이 김함의 식솔들을 위하여 땅을 하사했을 것이고, 그곳에 애급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묶고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김함의 여관’이라는 지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설명을 읽었습니다. 베들레헴 근처입니다. 그의 후손도 땅을 차지하고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터전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2장 61절 말씀을 보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한 사람의 명단 가운데서 바르실래에 대하여 나옵니다. “제사장의 자손 가운데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도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 바르실래는, 길르앗 지방 사람인 바르실래 집안으로 장가들어서, 장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르실래는 딸을 제사장에게 출가시켰습니다. 그의 사위가 왜 장인의 이름을 자기의 성으로 받았는지는 설명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르실래가 사위에게 매우 존경 받는 어른이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다윗을 도운 바르실래는 제사장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제사장 가문에 연결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III. 맺는 말
 
3.1 운동 이후 고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한 투사들이 많습니다. 독립협회제2대 회장이셨고, 105인 사건의 주역 중의 한 분이 윤치호 선생님이십니다.
그분의 동생이 서울 안동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아버님이셨습니다. 1925년 한 청년이 소개장을 가지고 윤치호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왜 찾아 왔는지 말씀을 드리고 소개장을 드렸습니다. 글을 읽어 보신 윤치호 선생님이 선뜻 그 당시의 돈 백 원을 그 청년에게 주셨습니다. 청년 “열심히
공부하여 귀한 일꾼이 되어 돌아오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윤치호 선생님의 연세는 만 60세이셨습니다.

그 당시 한 사람의 생활비가 약 265원 정도일 때입니다. 그러므로 백 원은작은 돈이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꼭 갚겠습니다.”라고 청년이 머리를 조아
리며 말씀 드렸습니다. 그 때에, “청년, 갚을 것 없네, 자네가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게.” 윤치호 선생님이 주신 백 원과 본인이 모으신 돈으로
그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뱃삯이 배원 할 때입니다. 윤치호 선생님이 후원하신 돈을 뱃삯으로 하여 미국으로 유학 오신 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한경직 목사님이십니다!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 소개장을 가져온 한 청년의 어려움을 도운 그 분이 비록 나중에는 친일파로 분류가 되었더라도, 조국롸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셨던 한경직 목사님을 세운 분이 되셨습니다.
 
바르실래는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써 노구를 이끌고 역경에 처한 다윗을 성심껏, 위험 부담까지 가지면서 최선을 다하여 도왔습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가진 기회 물질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성심을 다해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르실래는 나이가 만은 노인으로써,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경에 처한 다윗을 축하했습니다.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는 그가 베푼 모든 것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물질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준” 긍휼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순경을 만난 다윗 왕을 진심으로 축하는 격려자였습니다.
 
바르실래는 그의 아들이 다윗을 섬기는 기회를 달라고 다윗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들이 성군 다윗을 통하여 훈련 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아들을 떠나 보내는 아버지의 꿈은 왕을 보필하는 큰 그릇의 사람, 많은 경륜을 자식을 다윗에게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김함은 왕으로부터 유업을 받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르실래의 가문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과 연결되어 그의 이름이 보전되었습니다.
시편 92편 12-14절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이런 은혜가 ‘에버그린’ 교회 위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2 사역자를 세우기 위하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221 모으는 자냐? 헤치는 자냐? 누가복음 11:14-26
22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219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린도전서 3장 5-9절
218 역경에도, 순경에도 사무엘하 19:31-40
1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 참고: 창세기 3:14-24
2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참고: 로마서 8:29-30
3 새 해, 새 결심 참고: 여호수아 3:1-6
4 제일은 사랑 참고: 고린도 전서 13:13
5 무덤을 넘어서 참고: 에베소서 4:7-10
6 십자가의 도 참고: 고린도 전서 1:18-25
8 주지말 분노, 품지말 분노 참고: 에베소서 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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