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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참고: 고린도 전서 1:18-25
지난 몇 달간 저 자신은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새로 이민 온 것 가습니다. 얼마전 캘리포니아를 다녀왔는데 고향에 갔다 온 것 같습니다.
본 교회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하실은 누수가 되어서 들어설 수 없는 물댄 동산이었는데, 다녀오니 물 뺀 동산이 되었습니다. 이 동산에 복음의 나무들이 심겨지고, 자라나 열매 맺을 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k 장로님께서 ‘풍요로운 삶’ 수료식 때 강단으로 뛰어 나가시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K 장로님께서 예배의 기도나 사회를 보시기 위해서 강단으로 향하실 때에는 항상 거룩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개척하신 교회 중에서 가장 큰 변화가 요구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이 개척을 하셨고, 떠나신지, 약 4년 정도인데 이렇게 많은 문제를 가진 교회가 되었을까요? 모이면 다투고, 세상에서는 비난 받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조롱 거리가 되었을까요?
그 대답은, 바로 조금 전에 봉독하신 본문과 같이 ‘십자가의 도’를 바로 못 깨달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25을 교독하시겠습니다.

이 저녁에 우리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교훈 해 주신 십자가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묵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지 못할 신자,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 라는 말을 원어적으로 보면, ‘십자가의 말씀’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RSV 성경은 “The Word of Cross” 공동번역에서는 ‘십자가의 이치’라고 번역했습니다. NIV에는 ”Message of the Cross’라고 번역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진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죄의 대속 하심과,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복음서를 연구해 보면, 약 반 이상이 예수님의 생애에 마지막 며칠을 기록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중요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생과 영벌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벌하실 수 밖에 없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들이 받아야 할 죄를 벌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이 멸망할 수 밖에 없지만, 우리들을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 요한 복음 3장 16절에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이 십자가의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신 것입니다. 이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구원의 보증이 되셨다는 복음을 듣고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18절 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말씀을 받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한가지는 멸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원 얻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뜻을 좀더 살려서 번역하면, 멸망하는 중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구원을 얻는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구원 얻는 중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누구입니까?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구원에는 과거에 지은 죄로부터의 구원, 현재의 구원, 미래의 완전한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과거 시제도 있고, ‘구원을 얻는다’는 현재 시제도 있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미래의 시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이 과정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고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이 죽음의 병인 죄를 치료해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건져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위태한 자리에 있다가 안전한 자리로 옮겨 짐을 의미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사는 길은 누가 건져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죄의 바다에 빠져서 살길이 없는데 주님께서 우리 손을 잡으셔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을 듣고도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비가 옵니다. 산 나무들은 더 잘 자라고 푸르러 집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비로 말미암아 썩어갑니다.
멸망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죽으셔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사건을 미련하게 봅니다. 세상의 지혜로 십자가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알 수 없다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성령의 인도 하심으로만 죄를 온전이 알고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을 로마로부터 구원해 내고 기적을 나타내는 수퍼맨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당시에 지혜로움 사람들임을 자처하던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메시야가 가장 천한 죄인이 죽는 사형 틀인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는가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이 인류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 얻을 자가 없다.” 고 했습니다.

아담 이후로 인간은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도 변질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내가 이해 할 수 없으면 믿을 수 없다고… .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비행기 공학을 다 배워서 안 후에 비행기를 탑니까? 아닙니다. 믿고 탑니다.구원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루시고,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까?
십자가의 말씀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된다고 18절과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건인 복음을 받아들이고 죄를 회개하면, 죄와 세상과 옛 본성을 이기는 능력을 받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의 의롭게 되는 능력을 받습니다.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하는 능력이 십자가의 말씀에 있습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있던 사람이 해방을 받아 자유를 누리는 능력을 받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진리이신 십자가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불안을 떠나서 참 평안을 얻는 능력을 받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능력을 십자가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약속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습니까?
본문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어떤 깨달음이 있으셨습니까?
이 ‘십자가의 말씀’ 즉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들이 구원 받는다고 성경이 말씀하시는데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분은 없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어떤 죄를 지으셨든지 주님은 주님께로 나오는 자를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사단은 우리들의 귀에 속삭입니다. 네가 지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을 보면, 강도도, 창녀도, 남의 돈을 등쳐먹은 세리들도 다 용서하셔서 천국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들의 죄기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흰 눈같이 되게 하겠다고 약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니님이십니다.

또한 나는 그런대로 죄 지은 것이 없다고 자만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성경은 엄히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오늘 이 밤에 주님께 나오십시오.

이미 주님을 영접해서 새 사람 되신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일까요? 아닙니다!!
2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 선생님처럼,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십자가의 도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전할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영생을 얻고 그들은 영벌을 받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에스겔서를 보면, 만일 우리들이 이 구원의 도리를 악인에게 전하지 않아서 그들이 구원 받지 못하면 그 피 값을 우리에게 물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응답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25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십자가의 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 여러분!
구원이 완성될 때 까지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을 살아 성화되어가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는 날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날의 교회들이 개인 전도의 열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산 교회 성도여러분! 새 영혼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감격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언젠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주님은 그날 우리들의 삶에서 맺은 열매들을 보실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분부하신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너희는 천하 만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기억하시지요?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음을 전하세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니까? 구원 받은 확신이 있으십니까?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서로 다툴 수 있을까요? 비 도덕적인, 사회에서도 지탄 받을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시지 안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안으면 마음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마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소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2 사역자를 세우기 위하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221 모으는 자냐? 헤치는 자냐? 누가복음 11:14-26
22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219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린도전서 3장 5-9절
218 역경에도, 순경에도 사무엘하 19:31-40
1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 참고: 창세기 3:14-24
2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참고: 로마서 8:29-30
3 새 해, 새 결심 참고: 여호수아 3:1-6
4 제일은 사랑 참고: 고린도 전서 13:13
5 무덤을 넘어서 참고: 에베소서 4:7-10
6 십자가의 도 참고: 고린도 전서 1:18-25
8 주지말 분노, 품지말 분노 참고: 에베소서 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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