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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현대에 정신적 질환이 많습니다. 특히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메이요 크리닉 연구팀은 최근 우울증 증상을 치료하는 볍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체 활동을 왕성히 하라.
          *     잘 먹어라(특히 콩과 야채를 많이 먹어라.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라. 참치같이 찬 물에서 나는 생선을 먹어라.
          *     스트레스를 조절하라(휴식이 필요하면, 하루가 됐건 일주일이 됐건 여행을 떠나라.
          *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를 잘 유지하라(사람들에게 주는 습관을 들이며 인간 관계를 깰 수 있는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관계를 피하라.
          *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하루 8시간 정도를 자라)
  •  
    그러나 이상의 제안이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따를 만한 생활 환경과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이 심화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의 것들이 우울 증세의 근본을 해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신경 쇠약에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알려진 탁월한 연구팀의 제안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온갖 웃음을 자아낼 제인들이 아닐가합니다. 3년간 따라 다녔던 주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레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정서적 불안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이 갖고 있는 주님에 대한 죄책감이 얼마나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요?
  • 그들에게는 죽음의 덫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조금 전에 읽으신 말씀 가운데 21절 말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모두 문을 닫아 거는 것”이 그들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잇는 최상의 방법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공포감, 방향을 상실한 절망감, 주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처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때에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셨던 주님은 부활 하신 후에도 한결같으셨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이 변화되기 위하여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처한 외부적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냥 머물고 있는 그들에게는 체포와 고문과 죽음의 공포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내적 마음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주님이 죽으심으로 인하여, 그들이 걸었던 모든 기대들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부활에 대한 불신,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짖누루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과 불신을 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슬픔으로 가득찬 그들에게 참 기쁨을, 불신에 찬 그들에게 참 확신을, 불안에 떠는 그들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마음은 우리들의 지성, 감정, 의지를 포함안 총체적 인격이 담긴 곳입니다. 모든 동기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평안’으로 가득치고 넘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처난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처한 이민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온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도 산산히 부서져 버린지가 오래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제자들처럼, 믿기는 믿어도 연약한 상태에 있어도, 절망할지라도, 비록 낙심과 불안 가운데 있어도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원하셔서 지금도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즉 어떤 상활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는 역사적 사실이 나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주님은 과거 이천 여년 전에 부활하신 분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계셔서 나의 삶의 중심에 오셔서 ‘참 평안’을 주심을 경험하고, 기뻐하는 신자가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마음의 번민과 절망과 한숨 가운데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의 굳게 닫힌 마음, 어두운 마음을 뚫고 우리 중싱에 오셔서 희망과 용기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더 나아가서 우리들이 변화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변화일까요?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게 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목적하신 바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멸망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위에서 일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낙심하여 모여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던 간에, 환경이 어떻하던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 눈을 떠서 사명을 보고, 그것을 목표로하여 전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천하 만만이 듣고, 깨달아 회개함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8장 19절 말씀을 잘 아시지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시각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목적으로 하여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의 변화를 명하셨습니다.
 
부활 주일을 지키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에게 귀한 사명을 명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서은 우리들의 삶의 긍극적인 목표와 관점이 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 의미와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 주님이 우리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음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잠시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대사와 편지와 향기로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을 모르시는 분들, 아직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신 분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신 분들은 복음을 전하시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활주일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대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가 되려면, 인간적인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숨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예루살렘과 온 유댇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가 전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수 있읍니까? 어떻게 성령님으로 충만한 신자가 됩니까?
  • 먼저 숨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부터 돌이키셔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무시로 기도함으로써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 성령 충만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구한 바를 주심을 확신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에야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심으로 인하여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변화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이웃과의 관계가 성숙하게 변화 되기를 워하셨습니다.
 
함께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용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상처를 주고 살아 온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무시와 경멸등 쓰디쓴 경험들이 되살아 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시하면 무시해 버릴 수 있지만, 아내에게 무시를 당하면 무시무시하다.’ 이 말은 일생 함께 하는 부부간에서 갈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들 간에도 갈등과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사도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잘못하면 몇 번이냐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용서가 습관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를 보면, 어떤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가 탕감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1달란트는 그 당시 노동자의 약 15년간의 임금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빛을 탕감받은 종이 나가다가. 일백 데나리온. 즉 노동자의 100일 정도의 임금이 되는 돈을 안 갚았다고 멱살을 잡고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진 빚은 일만 달란트 정도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준 아픔과 상처를 일백 데니리온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에 그것 보다도 더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두려워하는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오셔서 우리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들의 삶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대사와 편지와 향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귀한 직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용서는 상대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느날 부활하신 주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들의 전 존재가 부활하신 주님의 형상처럼 변화할 것입니다. 썩어질 육체가 썩지 아니할 형상으로 변할 것입니다. 눈물도 고통고 아픔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사는 그날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2 사역자를 세우기 위하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221 모으는 자냐? 헤치는 자냐? 누가복음 11:14-26
22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219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린도전서 3장 5-9절
218 역경에도, 순경에도 사무엘하 19:31-40
1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 참고: 창세기 3:14-24
2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참고: 로마서 8:29-30
3 새 해, 새 결심 참고: 여호수아 3:1-6
4 제일은 사랑 참고: 고린도 전서 13:13
5 무덤을 넘어서 참고: 에베소서 4:7-10
6 십자가의 도 참고: 고린도 전서 1:18-25
8 주지말 분노, 품지말 분노 참고: 에베소서 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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