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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고: 갈라디아서 2:1-10
기독교 저술가이며 마케팅 전문가인 조지 바나가 10여년 전에 쓴 전도에 대한 책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교회 성장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가지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주일날 개신교 교회에 빠지지않고 출석하는 성인들의 절반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매 주일 하나님께 찬양을 불렀다는, 가슴 뿌듯하지만 사실은 거짓이었던 생각에 빠져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혹은 같은 주일 학교에 속한 사람이 불신자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조지 바나의 미국교회에 대한 연구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십니까? 미국에 약 3천 여 개의 한인 교회가 있습니다. 한 교회당 평균 70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면, 약 21만 명의 교인들이 있는 셈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민 교회를 조지 바나가 연구한다면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평가할 것 같습니까?

오늘 묵상하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최초의 서신입니다. 친히 1차 전도 여행 기간 동안에 전도해서 개척된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로부터 갈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줄을 이미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으로 시작해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똑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오늘 읽으신 본문의 배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는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직 성경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 얻음을 강조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구원 얻음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위하여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고 진심으로 회개 함으로만 얻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믿으십니까?
율법을 행해서가 아닙니다. 즉 내가 구원 받을 만한 일을 해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은 사실 자신이 구원 받고 안받는 주체가 됩니다. 사실 구약 성경을 자세히 보면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 받을 사람이 없음을 아시고 양이나 소나 염소나 기타의 제물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를 고백하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1년에 한 번씩 대 제사장이 나가서 민족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지성소에 들어가서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것은 내가 구원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십자가의 사건을 믿을 때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물론 또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거룩함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서에도 이 기본적인 신앙의 기초, 오직 예수님께서 단번에 이루신 구원에 군더더기를 부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서 모세의 율법이나 천사 숭배 사상 등이 혼합되고 있었습니다.
성화의 삶을 가고자 하는 것도 내 안에 계신 주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주장으로 하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10장10절을 보면 우리의 구원은 물론 성화도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내가 내 행위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시는 삶을 살면 이미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이세상의 풍조와는 이미 분리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을 보면, “그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할 영광스러운 영화도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셔서 죽으셨을 때 완성된 것입니다.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구약의 율법, 특히 할례를 받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이단 사상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하신 일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성경대로 부활 하심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주신 그 근원을 모른 채 교회에 나와 문화생활하고 사교 생활도 하고 그리고 도덕적 교훈들에 만족하고, 또는 복 받는 수단으로서의 한 종교적 방편으로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접근 볼 때 경각심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그러면 선행을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야고보 장로님은 인간이 행함으로 구원 받는 다는 것을 강조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성령의 사람들은 주님을 닮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열매가 곧 선한 성령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한 고행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셨기 때문에, 사랑에 강권 하심에 감사해 순종해서 사는 삶의 열매입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 주, 우리를 온전히 성결케 하신 주,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에 완전히 이르도록 하신 주님 안에 삶의 기초를 놓으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많은 선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님께 영광 돌리시는 교인,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는 사도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다는 사실을 공인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디도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할례를 강요 받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서 구원과 성화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거짓 신도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 하게 하리라.” 즉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닌 성령을 따라 사는 참 자유,육체를 위한 자유가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인정 받고 칭찬 바는 수준의 사람, 즉 사람들의 시선의 노예로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에도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그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동역자들과의 관계에서 모범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많은 문제점들을 만나게 됩니다. 교리적인 문제, 교회 생활에 대한 문제, 인간 관계에 대한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 선생님이 하신 일을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는 계시에 순종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겻 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문제를 의논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입니다. 자기 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구원만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의 행동의 근거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 그는 소명에 근거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이방인, 할례 받지않은 자들의 사도로 부름 받음을 확신했고 다른 사도들도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그의 행동의 기초는 하나님의 계시와 분명한 소명에 있었습니다. 1절을 보면 그냥 기다리거나, 나 손해 볼 것 없다거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 경쟁관계에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 능동적이지만 매우 겸손했습니다.
교회의 일치된 신조와 신앙 생활의 원칙을 정하는 일에 있어서 적극적이었습니다. 방관자로 남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됨을 힘써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전한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이방인을 위한 사역과 유대인을 위한 사역을 분담해 주신 부활하신 주님의 뜻을 순종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호 협력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입니까?
그러면, 우리들이 서로 해결해야만 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편을 가릅니까? 원수 시 합니까? 네가 잘 난 것이 뭐냐고 비난하지는 않습니까?
….
3.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았고, 사도로서 사역하는 그의 삶의 내용과 태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문제점을 직시한 분이었습니다. 주님과 교회와 양 떼들을 사랑한 지도자였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바른 태도와 과정을 가진 전략적인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겸손한 분이셨지만, 동시에 신앙적 용기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죽으신 목적이 왜곡되는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룩한 울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명을 생명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부탁한 것 즉 ”가난 한 사람을 기억해달라.”늘 것을 꼭 기억하면서 사역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 구원 얻는 진리를 선포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버림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감싸 안고 사산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 궁핍한 성도들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연보를 모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은 물론 성도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사역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삶은 주님을 주인으로 삼아 높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믿어 구원 받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은 삶과 인격은 주님을 따름으로써 주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았음을 확신하십니까? 그런데 나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적은 어떠합니까? 우리들의 이웃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특별히 가깝게 하기에 부담되는 분들과는 어떠합니까? 나누어야 할 이웃, 소외된 이웃에 대하여는 어떤 태도로 사십니까? 야고보 장로님은 “믿음이 있다면 행함으로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

기억하십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역사가 변질되지않도록 전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됨을 추구하며 겸손하게 인간관계를 맺되 소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고 감사해서 산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헐벗은 자, 목마른 자들에게 어떤 태도로 삽니까?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주신 마지막 설교의 말씀입니다.
“이 소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구원 받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현실화 되는 그날까지 충성스런 증인으로 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고: 갈라디아서 2:1-10
22 목적있는 섬김인가? 참고: 창세기 24:10-14
23 캡틴, 어메징 훼이스! 참고: 누가복음 7:1-10
24 중심에 진실 참고: 시편 51:6
25 사역의 확장을 위하여 참고: 사도행전 131-3
26 내 증인이 되리라 참고: 사도행전 1: 6-11
27 나를 생존케 하신 하나님 참고: 여호수아 14:1-15
28 살았으나 죽은 교회 참고: 요한 계시록 3:1-6
29 누구를 믿을까? 참고: 히브리서 11:1-7
31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참고: 요한복음 2:16-21
35 지혜로운 건축자 참고: 마태복음 7:24-27
36 감사와 전도 참고: 마가복음 1: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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