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값진 사랑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8-9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서 새 피조물이 될 때 갖는 기쁨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 생명의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서 1:10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날까지 성장이 계속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인격의 열매, 감사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추수하실 주님의 재림의 날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자라나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의 확신과 기쁨의 근원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의 근원은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복음 전도자로서 생명을 건 순종의 삶을 살았음을 뒤돌아보면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착한 일, 곧 구원의 일을 하셔서 교회가 시작 되었 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실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새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영적 생활의 시작과 완성 사이에 무엇이 채워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룩한 삶, 사랑의 삶, 진리에 입각한 삶입니다. 이것을 종합해서 성화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열매를 가득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1).

오늘 말씀은 그 성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대 계명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짧지만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감미롭지만 진실한 사랑은 내용이 잇고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 13:34,35).

우리 자신도,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교훈 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1.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했습니다(8).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의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정도 있고, 이성적인 것도 있고, 모정도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도 있고, 이타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즉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상대편의 상태여하에 따르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하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도 예수님을 닮기를 소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할 때 말고 혀로 만의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담긴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아신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산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모든 혈관은, 그의 힘의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예수님이 하셨던 아가페의 사랑을 삶에 실천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일 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내게 보고들은 바를 행하라.” “나를 본 받으라.”고도 하셨습니다. 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이 삶의 의미요, 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인격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오늘 날 현대 교회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랑의 질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상호간에 이해 타산에 의한 사랑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장의 크기만큼이 우리들의 사랑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성도 상호간에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 각자가 주님의 진실한 사랑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2.사랑은 바른 지식에 근거해야 합니다(9 상).

본문에서 지식이란 말을 ‘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에피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과학적 지식이 아닌 도덕적 영적 지식에 대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식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로, 구원에 대한 지식이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2:4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알아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열망해야 사랑이 자랍니다. 골로새서 1:10을 보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신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고, 기도로 교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 경건의 시간을 꼭 갖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셋째로, 서로 하나가 되어 협력함으로서 사랑을 배웁니다. 성경을 “성령의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온전히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진리를 알았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함께 모여서 떡을 떼었습니다.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했습니다. 공동체를 이루어서 주님을 중심으로 해서 교제 할 때 실천적인 사랑의 지식이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가득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의 지식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확히 알기 위해서 최소한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사랑이 온전해 지기 위해서는 다른 한가지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사랑은 바른 통찰력(분별력)을 가질 때 풍성해 집니다(9 하).

어린애가 사탕을 달라고 할 때마다 사탕을 한움쿰씩 주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일까요?
본문에 총명이라는 헬라말은 ‘에이스데시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 가운데서 본문에 꼭 한번만 나옵니다. 그 뜻은 ‘분별력’, ‘판단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통찰력은 일반적인 원리를 삶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말합니다. 가령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되는 말씀이 사랑의 바른 분별력을 정의 한 것입니다.

성도간에 사랑해야 함은 분명한 명령이지만 편을 가르고 사랑한다든지, 이기적인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증가하되 바른 방향으로 증가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성숙과 도덕적인 선택의 명료성이 요구됩니다. 어떻게 이런 분별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먼저, 감정에 의한 신앙 생활을 하지 말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 옛 본성에 의거한 선택인지, 사탄의 유혹에서인지, 아니면 이 세상의 풍조를 따름인지를 생각해 보고 ‘예’와 ‘아니오’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다음으로, 우리들이 ”성령의 전“인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의 통제와 분별력의 기초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대로 순종해야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소한 이상의 단게를 거쳐야 바로 분별해서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고귀하고 값진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이웃과도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분별력을 가진 사랑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좋아하는 부류들만 사랑한다면 세상과 무엇이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오간 데 없고, 성령의 전을 손상하며, 성도들의 사귐을 파괴하는 사랑을 한다면, 그는 성숙한 성도가 아닐 것입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을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기도 하셨습니다. 그 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에 바른 지식이 밑 바침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분별력을 가지고 실천 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와 권면이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나의 심장은 누가 지배합니까? 나는 사랑에 지식이 더하도록 어떻게 매일 매일을 살아 가고있습니까? 나는 성숙하고 분별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하여 어떤 과정을 밟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어떤 성도로 주님 앞에 서시기를 원하십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139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2) 참고: 빌립보서 1:1-2
140 바람직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 참고: 빌립보서 1:3-5.
141 값진 사랑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8-9
142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7-21
143 더 높은 삶의 표준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0-11
144 사랑의 길이.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45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2-14
146 주님의 사랑의 높이를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절
147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2). 참고: 빌립보서 1:12-14
148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참고: 빌립보서 1:15-18
149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 예수님.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50 구원의 길. 참고: 빌립보서 1:19-26
Page: (13/19), Total: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