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사랑의 길이.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시력이 극도로 나쁜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신한 약시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딸을 보며 날마다 눈물을 흘리다가 자신의 눈 하나를 딸에게 이식해 주기로 하고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이식할 때는 시력이 나뿐 쪽을 한다며 왼쪽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애원을 했습니다. “오른 쪽 눈으로 해 주세요. 평소 왼쪽 눈은 아주 아팠어요. 딸애가 태어날 때 건강을 주지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좋은 것을 주고 싶어요.”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열린 문’ 10월 호 26일 자에 있는 글입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한없이 넓은 것은 이런 예화 만이 아닌 우리들의 어머님들이 다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 선생님이 에베소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깨닫도록 위하여 기도한 내용 가운데서 사랑의 길이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세상에 가서 가장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사가 세상을 두루 다녀 보니 어린아이의 웃음이 너무나 예뻐서 하나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가는 동안 그 예쁜 웃음은 변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가지고 하나님께 갔지만 가는 동안에 시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의 변함없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가 어머니의 사랑을 하나님께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큰사랑뿐만이 아니라 변함없는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사는 어머니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요사이 뉴스를 보니 아이를 나아서 숲에 버려 죽게 한 어머니도 있고, 자녀를 낳아서 부라운 백에 담아 버린 어머니들도 있습니다. 자녀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어머니들도 있습니다. 자녀를 윤락가에 팔아 버리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어머니의 사랑도 완전하거나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명심할 것은 우리들이 시시 때때로 주님의 은혜가운데서 성령님이 나를 주장하시지 않으면 세상 사람과 하등의 다름없이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신뢰를 알고, 믿지 아니하면 패역한 인간성이 변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시편 107편 1절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히 넓고 크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오래 참으셨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오늘도 길이 참으십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께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형식 이상의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되 주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경험해가고 배워 가는 과정이 되어야지 기도했다는 예배드렸다는 결과만을 챙기면 신앙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주님처럼 사랑의 길이를 영원까지 이어가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4절에도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3).성령님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모신 사람의 마음에 계시면서 일하십니다.
성경에서 ‘오래 참음’이라는 단어는 본래 심장이 크다는 뜻입니다. 즉 포용력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여유를 가지는 성품을 말합니다. 인간의 의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은 심령이 되에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고 바르게 맺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참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분을 냅니다. 분은 쏟아내기는 쉬워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열성을 지키는 것 보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을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정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즉 외부에서 충격이 왔을 때 무의식적인 즉각적인 반응은 십중팔구 실수합니다. 반응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은 골똘히 생각하십시오.”

기억하십시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들로서 성숙한 대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성도간에도 덕을 세워서 성령님이 역사 하시는 은혜로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먼저 주 안에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리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심정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들의 언행이 덕을 세우고 격려가 되도록 선택하십시다.

2) 사랑은 진리에 입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진리는 그 가치가 영원합니다. 사랑 장이라고 말하는 고린도 전서 13장 6 절을 보십시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아무렇게나 나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나쁜 욕을 하는 데 재미있다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 사랑일까요. 남의 것을 훔친 것이 분명한데 눈감아 주는 것이 사랑일까요?아니면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KEAR이라는 미국 방송에 매일 아침 6시에 말씀하시는 로벗 쿡 박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박사님의 친구가 어느 젊은 교수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식사시간에 3,4살 된 그 집 아이가 식탁으로 기어올라가더니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손으로 덥석 덥석 집어가더랍니다. 초대받은 분들이 당황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초대한 젊은 교수가 하는 말이 “아이의 한 일을 이해해 주십시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남이 억제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주님을 모르는 가정은 지식은 있는지는 몰라도 예의 범절이 없음을 한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도덕적인 잘못, 불의는 발견하는 그 때 바로 잡아 주어야 사랑입니다. 그러나 온유와 겸손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누구나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구약 성경을 보면 요셉이 나옵니다. 그는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나중에는 그 당시 세계의 최강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그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갔습니다. 그는 보복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았습니다. 왜 참았습니까? 그들이 아버지 야곱과 그의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무조건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들의 마음의 주소를 알아보는 것이 사랑의 단계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해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많이 기도하시고 많이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언제까지 쓸 수 있는 것인지, 형편에 맞는 지, 이 결정이 이 아이나 나의 신앙 생활과 이웃과 성도들에게 덕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달라스 경찰국에서 만든 범죄 아동을 키우는 12가지 방법이라는 글을 보면, 부모님들이 진리 안에서 결정하고 자녀들을 훈계하고 양육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 자신은 물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삶을 잘 배우고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디모데 후서 3장 16,17절을 기억하시지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바는 사랑,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하시고 싶습니까? 진리가 무엇인지 아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생애를 깊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희생과 헌신으로 입증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면 좋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 이 여인은 주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분입니다.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가보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살을 찢으시고, 물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종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씀처럼 “세상의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헌신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럴 때에야 그 사랑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이기적이 사랑이 만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들 합니다. 반대로 필요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랑 받고 있기에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사랑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나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에 희생과 헌신도 즐겁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주신 사랑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나의 시간, 생명, 재능이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일에 기꺼이 드리겠습니다.”이렇게 되어야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이 주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우리들의 실제 생활이 어떠합니까?
정말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 있습니까? 그 사랑이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적인 것입니까? 신앙 생활을 교회에 나오는 형식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하되 내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주님을 앙모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들의 인격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가슴에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고 주님을 사랑하는 응답이 흘러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리라.”(고전 13:7).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아시기를 원하십니까? 주 안에서 자신을 추수릴 수 있는 성품을 키워나갑시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원하십니까? 진리를 배우십시오.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무엇을 위하여 희생과 헌신을 하십니까? 쾌락입니까? 물질주의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주님과 그의 나라와 성도와 이웃을 위해서입니까? 영원한 사랑이신 주님을 경험하는 사랑이 있는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39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2) 참고: 빌립보서 1:1-2
140 바람직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 참고: 빌립보서 1:3-5.
141 값진 사랑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8-9
142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7-21
143 더 높은 삶의 표준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0-11
144 사랑의 길이.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45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2-14
146 주님의 사랑의 높이를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절
147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2). 참고: 빌립보서 1:12-14
148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참고: 빌립보서 1:15-18
149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 예수님.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50 구원의 길. 참고: 빌립보서 1:19-26
Page: (13/19), Total: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