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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빌립보서 1:10-11 |  | 사랑은 그 근원이 입술이 아닌 심장임을 8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심장사도 바울이 아가페 적인 사랑을 했다는 것은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구원과 영생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야 하며, 영적 도덕적 분별력을 적용해야 바르고 풍성해 집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의지의 결단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우리들이 어떻게 사는 것을 통해서 평가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성경을 아느냐.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가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서 사는가를 봅니다.
 주님의 자녀는 세월이 갈수록 그 사랑의 내용이 알차게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비례해서 이웃을 특히 성도간에 사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여러분각자는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할 것입니다.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드려야할 예배의 회복과 이웃을 사랑해서 회복되어야 할 봉사(Ministry)가 아닐까요? 또한 성도들로서 마땅한 삶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주님이 주신 대 사명을 수행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성숙한 사랑이 되어갈 때에 다음 단계의 내용아 형성됩니다. 11월에 미국에 중간 선거가 있습니다. 여론을 들어보니 높은 삶의 질을 가진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높은 삶의 수준을 가지 고 살아서 이 나라에 좋은 일꾼들로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10,11절 말씀은 사랑에 근거해서 사는 성도들의 높은 삶에 대해서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랑은 행동화 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10).
 
 ‘분별’(Discern)이라는 단어를 킹 제임스 역에서는 ‘Approve'로 번역했습니다. 두 번역 다 어떤 것을 잘 살피고 조사해서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 그것이 지극히 선한 것인지 증명해 보고 선택하라고 교훈 하시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특징들 중의 하나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기분에 따라서, 전통에 따라서 그냥 쉽게 선택합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지, 어느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테스트해 보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이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라고.‘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삶의 사명 선언서를 기록하시기를 권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비죤은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를 기록해 두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인생의 요절을 한 두절 정해서 외우고 묵상하시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도움이 도리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을 해나가면서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놓고 자기도 기도하고 동역자들의 기도와 조언을 듣는다면 가장 좋은 길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세상보다 더 높은 삶의 표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면 다음 단계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둘째로,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10).
 
 “진실하다“ 는 단어는 “순결하다” ”혼합되지 않은“ 또는”순수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햇빛“이라는 단어와 ”판단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도자기 제조업이 가장 주된 사업이었는데, 깨진 도자기는 파기해야 하는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밀랍(Wax)를 사용하여 깨진 조각을 부치고 그 위에 유약을 발라 광택을 내서 시중에 팔곤 했습니다. 이렇게 된 도자기를 햇빛에 비춰보면 깨진 부분은 검게 변해서 진품이 아닌 것을 가려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안과 밖‘이 같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어 순결하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음 속은 깨져있는데 회복되지 못한 채 그냥 땜질만 한다든지, 속마음은 불순한데 안그런척 한다든지 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언젠가 햇빛 보다 더 밝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평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이 세상 것으로 인하여 변질되지 않는 순수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허물이 없다”는 단어는 능동태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뜻은 “거침돌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give no offence). 그러나 수동태로 해석한다면 “허물이 없다”는 뜻입 니다. 남을 넘어지지 않게 한다면 그 삶은 허물이 없는 삶이요 반대로 그의 삶이 허물이 없으면 남을 영적으로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불순한 삶을 살아서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종교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들어오는데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어떨 때 그렇게 될까요? 형식적인 신앙인일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될 때 그런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진리들 신앙 생활의 표준으로 삼지 않고 살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능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해야 합니다.(11).
 
 우리들의 신앙 생활은 잘 판단하는 일 순수하고, 걸려 넘어지거나 걸려 넘어뜨리거나 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소극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심으신 이유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살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자녀가 되게 하시고자 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십니다.
 
 어떻게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까? 그리스도로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요한 복음 15:5를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많이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내려가서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맺고자 하는 성품의 열매, 전도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많은 열매를 맺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비죤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중심의 영향력의 원에 인생의 의미를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사랑의 주님을 중심으로 해서 동행하면서 살 때에 성령께서 역사 해 주시므로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약속을 믿고 모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주님께로부터 주시는 많은 열매들을 얻었습니다. 전도의 열매만이 아닙니다. 서로 “누가 높으냐고“ 다투던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보면”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힘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사십시다. 마태복음 21:43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인들에게 주신 말씁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하나님나라의 자녀가 아닙니다. 열매 맺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개인적으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학교와 사회에서 맺을 열매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들 상호간에 맺어야 할 열매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 다면 그 이유를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로마서 8:9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열매가 있습니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병들어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을 보면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그 이하를 보면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산디아고 동물원에 가면, 머리가 두개 달린 뱀이 있다고 합니다. 설명에 의하면 그 뱀은 약 7년 정도를 살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그보다는 매우 오래 살 수 있는 데 머리 둘이 하상 싸우기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죽고 주님께서 내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 하시면 열매를 매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옛 본성, 즉 육체의 소욕을 죽여야 합니다. 바로 이 문제가 어렵습니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찬송가 212장 3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 성결키 위해 주 따라가고 일 다급하여도 당황치 말고
 참 즐거울 때나 또 슬플 때나 너 주님만 믿고 늘 따라가라.“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면서 사시지 않겠습니까?
 순수한 주님의 신부처럼, 허물이 없이 사시지 않겠습니까?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고 사시는 풍요로운 삶을 사시지 않겠습니?
 기억하십시다. 언젠가는 우리가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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