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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참고: 빌립보서 1:15-18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자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15). 16, 17절의 말씀처럼 어떤이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사도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에 대하여 투기와 경쟁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친 그리스도 적이지만 반 바울적인 그리스도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만일 이단이거나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이었다면 분명히 사도 바울은 지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일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 여러 분파가 있었습니다. 어떤이는 바울을, 베드로를 , 어떤이들은 아볼로를 그들의 신앙적 지도자로 따랐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도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증거 하지만, 몇 분파로 나뉘어 경쟁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서 자기 교회의 부흥에 큰 관심을 둔 그리스도 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도나 전도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 바울 보다도 더 존경하는 사도나 신앙적 지도자를 따랐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게 되자 친 바울적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도 뒤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시기와 경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오늘날도 각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복음을 증거 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같은 개신교일 지라도 교파가 다르고, 전통이 다릅니다. 고향이 같거나 같은 학교 출신들이 모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이민 교회는 미국에 살면서도 주로 한국 사람들끼리만 모입니다. 한국에 대학교에 가보면 많은 기독교 선교 단체들과 큰 교회 대학부가 경쟁적으로 기독교를 전해서 자기들의 써클을 키워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전도 방법이나 강조점에서 일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때에도 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하나로 합할 수 없었던 것은 성례전의 신학적 견해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과는 다른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나, 예배 형식과 강조점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경쟁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 가를 본문의 교훈을 통해서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문제를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주님 안에서 반응해야 합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나의 지위와 명예를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그 일을 막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상대편에 대해서 역공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는 경쟁적이지만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는 다른 성도들을 볼 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18). 바울은 그들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이름도 들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전파에 있어서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경멸 당하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49,50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이 주님께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산상 수훈에서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34,4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결정 짖도록 하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비난하거나 반대할 때 먼저 기억할 것은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고 방법이나 사건의 이해에의 차이 때문이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며, 주님이 중심 되시는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높임을 받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길로 자신이 조종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어려움을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열심히 증거하는 그들을 위해서도 성령에 충만해서 바른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는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12:17에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교훈 해 주셨습니다.

2.긍정적인 면에서 반응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8을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평화를 파괴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이 된다면, 나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 먼저 주님께 나아가서 그대로 아뢰어야 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신 분들을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을 낱낱이 고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잃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결론을 얻고 전진합니다. 시편 20:5을 보면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도 성령님이 역사 하셔서 능력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민수기 11:24이하를 보면 모세를 돕는 70인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로로 녹명 된 자중에 두 사람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도 임했습니다. 그 사실은 안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말하기를 “주 모세여 금하소서.”라고 하자 모세는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8,29) 모세는 자신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임했습니다.

3.하나님의 판결을 기대하면서 반응해야 합니다.

나에 대하여 외부적인 반대가 올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거룩한 울분일지라도 그것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사탄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에베소서 4:26,27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할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 사건을 보면 분도 나고 실망도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면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평가나 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제 삼자가 되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 7:1)고 하셨습니다. 즉 내가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판결에 맞기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일의 최종적인 판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많은 판단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4:3-5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도 스스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양심에 꺼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심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사람들이나 다른 그리스도인의 시선이나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 양심의 판단도 받습니다. 그러나 가장 완전한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그 판단 중에 많은 것들은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들의 동기를 아시는 주님에 의하여 판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하나님의 시선은 도외시하지 안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의 동기와 목적은 세계 제일의 전도자가 되어 명예를 누리거나, 그로 인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계파를 만들어서 권력을 잡으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해서 높여드리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 좋아서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일을 할 때, 전도를 할 때 이런 동기에서 출발한다면 다른 성도들에 대하여 시기하거나 질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일을 할 때, 시기나 투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옛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로 도와가면서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편에서 신앙적으로 미숙해서 우리를 비난하거나, 경쟁적으로 일할 때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함께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편에서 어려운 일들을 만들 때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위해서는 나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반응(Reaction)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행동(Action)이 있어야 합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39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2) 참고: 빌립보서 1:1-2
140 바람직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 참고: 빌립보서 1:3-5.
141 값진 사랑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8-9
142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7-21
143 더 높은 삶의 표준을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0-11
144 사랑의 길이.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45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참고: 빌립보서 1:12-14
146 주님의 사랑의 높이를 알자.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절
147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2). 참고: 빌립보서 1:12-14
148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참고: 빌립보서 1:15-18
149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 예수님. 참고: 에베소서 3장 19-21
150 구원의 길. 참고: 빌립보서 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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