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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비노니
참고: 에베소서 3장 14-21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나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문제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불분명하니 기도의 내용이야 어떻겠습니까? 기도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기도, 육적인 욕망을 위한 기도, 부귀 영화를 위한 기복적인 기도,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기도, 형식적인 기도, 자랑하고자 하는 기도들을 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기도는 신앙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의 만남이요, 교제요, 헌신입니다.

한국에서 기도원을 간다고 하면, 소나무 뿌리를 뽑고 오라고 합니다. 왜 소나무 뿌리를 뽑아야 합니까? 가뜩이나 산에 나무가 없는 나라인데. 소나무 뿌리를 뽑고 올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과 영적인 교만을 주님이 뿌리째 뽑아 주셔야 하고, 복음의 확신을 마음에 가득히 심기 위해서 기도하러 가는 것이 아닐까요?

함 석헌 선생은 하나님의 이해에 대해서 무지하고, 하나님을 빙자한 그릇된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 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꼬집어서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닌 이름만의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린 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만남과 결단과 변화가 없는 한갓 종교 행사라는 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 가운데는 그런 분이 없으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기도를 생동감 있게, 내용 있게, 열랍 되게 드리기를 마음에 소원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중단 없이 성숙해 질뿐입니다. 인간의 좁은 입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만족하시도록 아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를 잘 한다느니, 못한다느니 하는 평가도 사실은 부적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솔하게,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면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고 이말 저말 넣어서 유창하게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은 사도 바울 선생님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드린 기도의 내용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기도의 태도와 내용이 어떻해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사도 바울 선생님이 기도한 근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14)?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초두에 “이러하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3장 1절에도 “이러하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이러하므로 갖힌 자가 되었고, 이러하므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에게 이루신 일은 자기를 사도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감추어졌던 구원의 비밀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이 평화하고 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과, 그 일이 자신에게 계시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기초로 해서 바로 감당하고자 기도했습니다.

마태 복음 6장 33절을 잘 아시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어떤 성서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으로 계시하시지 않은 어떤 것도 기도할 권리가 없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고 기도가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서의 말씀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나의 순종을 놓고 기도해야지 일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고 우리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 그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요한 1서 5장 14절을 잘 아시지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 복음 15장 7절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억하십시다 주님의 뜻을 따라서 드리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서 드리는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야고보 4:3) 우리의 기도 생활의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까? 말씀 안에서, 말씀을 따라서 사시면서 기도하십니까? 할 수 없이 습관적으로 나의 필요만을 위해서 하는 이기적 나태한 기도생활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2. 사도 바울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15).

유대인들이 보통 기도할 때는 서서 했습니다. 앉아서 할 수도 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고 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일 경우에는 누워서 기도 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릎을 꿇는 것은 드문 일인데 이것은 특별한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 에스라서를 보면, 에스라가 고국에 돌아와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들과 통혼을 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에스라 9:5)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게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밤 기도를 드리실 때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마태 26:39)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순교자 스데반도 마지 막 일생의 시간에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분들이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 앞에서 최대한 겸허하게, 간절한 태도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흐트러진 태도로, 말 따로 생각 따로 하기가 쉽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할 일들을 생각하거나, 기도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로 마음이 산란한 채 시간만 채우기도 쉽습니다. 짧게 하던 길게 하던, 형편대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집중해서 생각을 모으고 경건한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만홀히’라는 말은 ‘조롱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을 돌리려면 우리들의 겸허함과 경건한 태도를 가지 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 기도했습니까(14,15)?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 16:24).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약속에 의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산천 초목과 짐승들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각 족속”이라는 말은 ‘그의 모든 족속’을 말합니다. 즉 ‘신자들의 모든 족속’을 말합니다. 그 공동체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족속은 ‘하늘의 승리한 교회’를 말합니다. 땅의 공동체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악한 사탄과 전투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체들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름을 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 - - 라는 이름’ ‘에베소 교회’라는 이름,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라는 이름을 말입니다. 이름은 존재와 그 의미와 가치를 말합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만 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합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하나님께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하여, 말씀 안에서 사시면서 기도하십니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족의 전도를 위해서, 이웃과 친구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인내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만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부귀 영화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건강하고, 평화롭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겸허한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구할 수 있을 때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할 때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제일의 문제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도하는 가입니다.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 가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가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어떤 태도로 기도하십니까?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사시면서 기도하십니까?


잠언 저자는 매우 평범한 것 같지만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아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탆란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언 30:7-9). 일상생활 가운데서 말과, 물질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일생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일생에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 기도 제목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127 교회의 참 모습. (1) 참고: 에베소서 2장 19-22
128 교회의 참 모습(2) 참고: 에베소서 2:17-22
129 무릎을 꿇고 비노니 참고: 에베소서 3장 14-21
130 속 사람을 강하게(2) 참고: 에베소서 3:14-21
131 속 사람을 강하게(3) 참고: 에베소서 3:14-21
132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마음. 참고: 에베소서 3:17-19
13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참고: 에베소서 3:17-21
134 돌아오지 못하는 길. 참고: 잠언 2:10-22
135 성탄의 별을 따라서. 참고: 마태복음 2;1-12
136 새 사람을 입으라. 참고: 에베소서 4장 17-24절
137 하나님을 사랑하라. 참고: 잠언 8:17-21
138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참고: 열왕기 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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