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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참고: 열왕기 상 19:9-18
인생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상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른 한가지 질문을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즉 나의 영적 현주소는 어디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있기 전에는 어디로 가야 할 방향이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사회와 국가의 현주소를 진단해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사역을 선지자들이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떠나서 방탕한 삶을 사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악한 왕후 이세벨이 죽이려고 함으로 칼날을 피해서 남왕국으로, 브엘세바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왜 하나님이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을까요?

엘리야 자신이 상한 감정과 절망감을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사역을 계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Retreat을 가져야 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사역자로서 엘리야의 정서적,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가,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1.그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의 자부심과 열심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10,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호렙산 동굴안에 있는 엘리야에게 물으셨을 때 그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여호와만 열정적으로 섬겨왔습니다.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마져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열정적으로 주님만을 섬겼고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칭찬이나 부귀 영화는커녕 핍박하고 죽이려는 칼을 피해 도망가는 신세가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실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 오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아뢰고 있는 것을 봅니다(창 17:18). 20년이 넘도록 약속이 성취되지 않자 하나님 앞에 섭섭한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있습니다. 성서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많은 위인인 욥도 예기치 않은 고난을 당하고 역경을 걸을 때 “내가 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종았을까?”라고 독백을 했습니다. 다윗이 쓴 시 가운데는 억울함과 원통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탄원시가 많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수고와 헌신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것 같은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만나서 상한 감정과 기억의 치유를 받아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내게 고통이 올까? 하나님이 살아 계 시다면 사회 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런 솔직한 감정을 아십니다. 엘리야는 그 아픈 부분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았습니다. 이것이 치유 받는데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숨기면 치유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어도 어렵고 힘들면, 담대하게 우리들의 고뇌와 아품을 아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문제는 정말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그렇게 말 할만 한 진실 한 종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말이 원망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탄원인지를 아십니다.

2.그는 사역 대상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엘리야가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주의 제단을 헐어버렸습니다.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당한 엘리야가 그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겠습니까? 거룩한 울분과 가슴이 터지는 듯한 분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다가 멸망해 가는 조국을 보면서 “내 눈물로 내눈이 썩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고만 계십니까?“하고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우리들이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 배신을 한다면 그 감정이 샃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엘리야가 이만큼 상처를 받았다면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도하고, 양육을 하고, 제자 삼는 사역을 하고, 순수하게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사는 분들 가운데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사역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에 휩싸입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이 사람까지만 하고는 손을 놓아야 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로 엘리야 처럼 영적 Retreat이 필요한 시점에 온 것입니다. 이런 감정이 엄습할 때 엘리야 처럼 하나님께 솔직하게 여러분의 감정을 아뢰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엘리야를 회복해 주셨는가를 살펴봅시다.

3.그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하여 Touch되고, 비-죤을 넓혔습니다.

하나님 엘리야를 동굴 밖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상한 감정과 기억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적라라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얼그러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조카 롯과 땅을 나눈 후에 피해의식에 사로 잡혔고, 조카 롯을 포로에서 구한 후에 또 피해의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끄시고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밞는 땅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감정보다 앞세워서 순종할 때 시작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마음을 터치해 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끌리어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습니다. 여호와 앞에 그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산과 바위를 쪼개고 가르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그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 지진, 불은 자연의 강한 힘이지만 인격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상처 난 영혼들을 치유하시기 위하여 다가오십니다. 세미한 음성을 한글 표준 번역 성경에서는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네가 상처 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나에게 와서 아이처럼 투정을 부려도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너를 사용해서 나의 사역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들은 줄로 믿습니다. 사도 요한 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가페의 사랑은 우리들의 약점까지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실패까지도 감싸 안으시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다가 찢긴 영혼일 때는 싸매 주시고 업어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는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믿습니다.

상한 감정이 우리를 괴롭힐 때, 그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감정의 동굴 밖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치유가 있을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마음이 가득 차기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성공과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자신의 비-죤으로 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역의 현장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시고 일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일군들을 세우고, 무엇보다도 제자를 한 명만이라도 분명하게 양육하라는 부름에의 순종이었습니다. 다마스커스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는 일, 이스라엘에 가서 예후에게 기름 붓는 일과 엘리사를 제자로 삼아서 키웠습니다. 꼭 대단한 업적을 남겨야 하나님이 쓴 사람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굴 일군들을 세우고 양육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받아들일 때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치유 받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감정, 시람들의 인정,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경건하게 삽니다. 세상 풍조에 밀려다니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할 일군들을 세우기 위하여 꾸준히 전진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어디에 이르렀던지 계속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은 하시지만 너무나 상처가 깊어서 쓰러진 분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 상처가 죄 때문이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치유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힘써 섬기다가 지친 분들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약속은 “때가 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나중은 찬양과 환희로 바뀐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우리들도 시선을 하나님의 뜻을 삶에 실천하고, 채우는 삶을 계속한다면, 반복적인 상한 감정에 의한 좌절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영적 현 주소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상처를 치유 받으셨습니까? 주님이 주신 비-죤으로 인하여 달려가십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127 교회의 참 모습. (1) 참고: 에베소서 2장 19-22
128 교회의 참 모습(2) 참고: 에베소서 2:17-22
129 무릎을 꿇고 비노니 참고: 에베소서 3장 14-21
130 속 사람을 강하게(2) 참고: 에베소서 3:14-21
131 속 사람을 강하게(3) 참고: 에베소서 3:14-21
132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마음. 참고: 에베소서 3:17-19
13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참고: 에베소서 3:17-21
134 돌아오지 못하는 길. 참고: 잠언 2:10-22
135 성탄의 별을 따라서. 참고: 마태복음 2;1-12
136 새 사람을 입으라. 참고: 에베소서 4장 17-24절
137 하나님을 사랑하라. 참고: 잠언 8:17-21
138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참고: 열왕기 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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