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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참고: 에베소서 3:17-21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시면 제일 행복하시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가 많았고, 부하였던 솔롤몬은 아가서 8장 7절에서 “이 사랑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리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하며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가를 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전서 12장 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시면서 13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13장 13절에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사랑이 제일일까요?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만은 간략하게 줄여서 말한다면, 인간의 육체는 의, 식, 주 가 있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신, 망, 애 즉 믿음 소망 사랑이 있어야 삽니다. 믿음은 영혼의 뿌리입니다. 소망은 줄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꽃과 열매입니다. 신앙의 뿌리가 꼭 필요합니다. 소망 가운데서 자라가야 합니다. 왜 그렇게 되어 가는 것입니까? 열매를 맺을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어서 그 존재의 의미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지, 사랑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 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성도들은 행복하게 삽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요일 4:8)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이 아무리 많다고 하고, 소망이 아무리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아도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실천이 없이는 진정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변질되었고, 이기적이 되어서 갈구하기는 하지만 얻지 못한 채 헤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무엇지지 그 개념이 잘 정리 되어있지 않은 면을 봅니다. 교회에서 사랑, 사랑을 되 뇌이지만 그만큼 진정한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이 아닌지요?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니라.”(마태 22:37-40) 신앙 생활이란 교회에 나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독교 교리를 배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있는 신자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7절에서 “너희가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라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도 모두가 “사랑가운데 뿌리를 내리는 신앙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되어야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될 수 있을까요?

1.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동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들의 옛 본성만으로는 안됩니다. 만물 보다 더러운 찌꺼기 같이 된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이타적인 사랑이니 희생적인 사랑이니 나라사랑, 교회사랑이라는 말은 다 허구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나야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마음이 되어야 새 사람이 되고 새 사람이 되어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수양이나 교육으로 그 본성이 바뀝니까?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개꼬리 3 년 묻었다 꺼내도 개꼬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본성은 우리를 지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모셔드릴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역사적인 사건이 예수님의 죽으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나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희생시키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 ”

조금 내려가서 4장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한 1서 4장 12절 말씀을 새 번역 성경으로 읽을 때에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샅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랑을 받을 줄 알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생동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거룩한 동기를 가지고 살게 된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여러분의 변화된 모습,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면서 사십시오. 이런 약속의 말씀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사랑하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사랑이 감사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그 시대의 신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2. 사랑에는 알찬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 사랑이 아님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타적인 사랑이라고 해서 다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과 내용이 잘 정리되어야 합니다. 가령 자녀를 양육할 때 달라는 것을 다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편에 대한 이기심 없는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관심은 진정한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돌볼 대상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를 때 선을 행하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상대편을 잘 이해하려면, 그의 입장을 눈여겨보는 지혜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를 조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가능성을 발견하여 그것을 개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에 협력자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부나, 명예, 권력에 의하여 평가하면 사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빼고 본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요1서 4:17).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법대로 사랑하면, 그 생활에 기쁨이 넘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요한 1서 4장 18절을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면, 아바, 아버지라고 주님께 달려나가게 되겠지요. 이웃이 귀하고 고마우면 자신을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겠지요.
에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3:16)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 장으로 유명한 고린도 전서 13장 4-7절까지는 사랑의 본질 또는 내용을 분석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야릇한 어떤 감정이 아닙니다. 인격을 수반한 인내와 수고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온유(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뽑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습니다.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즉 용서합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성숙한 인격의 연마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신을 죽이는 삶이 없는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기준을 상실한 사랑은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이 우리들의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야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을 앙모하며, 주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진정한 사랑의 내용을 바로 알고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실천되어야 빛을 발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19-20)

또한 요한 1서 3장 19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권면 하십니다. 말과 혀로만의 사랑은 이제 그만 버립시다. 행합시다. 그러나 진실하게 말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 1:22)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나에게 갚을 길이 없는 사람이 라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가는 길을 막았던 원수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롬 12:20)고 하셨습니다.

부모와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도 서로 사랑하라고 성서는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봅니다. 남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십자가 처럼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성령 충만할 때에 사랑의 실천을 가벼워집니다.

성도 여러분!
원한 관계에 있는 분은 않게십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잊은 분들을 안게십니까? 먼저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신 후에 그 사람을 보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어떤 은혜를 누릴까요?
- 신명기 5장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 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우리들이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을 성령님이 증거하심으로 열매를 맺으며 삽니다. 자신으로는 인격의 열매를 밖으로는 영혼 구원의 열매 를 얻습니다.(요한 13:35)
- 주님의 심판날에 우리로 담대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 스도께서 사신대로 우리도 세상에서 그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요일4:17)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굳게 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그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작정의 사랑이 아닌 성서를 중심으로 한 내용을 가지고 서로 성숙한 사랑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은 생활에서 실천됩니까? 혹시 말과 혀로만 주님을 이웃과 주님의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27 교회의 참 모습. (1) 참고: 에베소서 2장 19-22
128 교회의 참 모습(2) 참고: 에베소서 2:17-22
129 무릎을 꿇고 비노니 참고: 에베소서 3장 14-21
130 속 사람을 강하게(2) 참고: 에베소서 3:14-21
131 속 사람을 강하게(3) 참고: 에베소서 3:14-21
132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마음. 참고: 에베소서 3:17-19
13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참고: 에베소서 3:17-21
134 돌아오지 못하는 길. 참고: 잠언 2:10-22
135 성탄의 별을 따라서. 참고: 마태복음 2;1-12
136 새 사람을 입으라. 참고: 에베소서 4장 17-24절
137 하나님을 사랑하라. 참고: 잠언 8:17-21
138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참고: 열왕기 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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