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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을 입으라.
참고: 에베소서 4장 17-24절
교단 사무실에 가니까 우리 교회와 같이 C.L.A를 열심히 하고 있는 뉴마 교회 심 홍섭 목사님의 모친께서 소천 하셨다는 메세지가 와 있었습니다. 장례식에 가야했는데 예복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어서 갔는데 하관식 때 축도를 부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사양을 해도 간곡히 부탁하셔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는가는 우리가 해야할 역할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식장에 갈 때의 옷과 장례식에 갈 때의 옷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서 옷을 입는 것이 관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에 따라서 옷을 입습니다. 군인이나 경찰들을 그들대로의 제복을 입습니다. 죄수나 피의자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죄수가 석방되면 더 이상 죄수의 복장을 하지 않습니다. 군인이 제대를 하면 군복을 벗어버리고 민간인 복장을 입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이 지음을 받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게 되었으므로 옛 생활을 물리치고 새 생활을 하라고 권면 하십니다. 여기에서 새 옷은 새 직분을 말하며 우리의 생활은 윤리적으로 새로운 생활 양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주전에 우리는 성도의 연합의 원칙을 묵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신학적 교리적 일치를 가지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제도적 일치를 가지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식과 예배 형식의 일치를 가지면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선생님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함으로써 성숙한 성도들,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장해 가는 성도들, 세상 풍조에 요동치 않는 확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적극적인 지체 사역들 안에서 연결 되어있는 것이 중요한 여건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4장 13-16절의 연속으로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는 일에 있어서 순결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연합은 즉 Unity는 구성원들의 Purity 가 있을 때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안에서 증거 하노니”라는 말씀은“주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권위로서 이 글을 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파괴하는 것은 외부적인 여건보다는 내부적인 문제일 때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성도들이 이방인처럼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1. 성도들이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라고 권고하셨습니다(17-19).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옛 본성과 세상 풍조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우리가 이런 일에 넘어지기 쉽습니까?

우리들의 생활 방식이 이방인 즉 그리스도 없이 살던 모습이 되면 옛 근성이 되살아나기 쉽습니다. 곰팡이가 습도와 온도와 조건만 갖추면 어디서나 번식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방인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18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 마음이 굳어집니다.” 굳어진다는 말은 단단한 돌과 같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의 마음과 같이 강퍅해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와 교훈을 무시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너무나도 굳어지고 경화되어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같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간곡한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형식에 빠져서 성령을 근심시키며, 소멸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껍질은 썼지만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그럴듯해도 속에는 송장 썩는 냄새를 풍기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질책하셨습니다.

생각이 굳어지면 그 다음은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총명이 어두워지니 무지가 찾아옵니다. 분별력을 잃습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성경의 교훈도 무시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육체로 심는 것은 사망을 가져옵니다. 이 결과 그들은 19절의 말씀처럼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NEB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저희는 자기들의 더러운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한다.” 바로 이런 상태가 로마서의 입장에서 보면 죄와 심판의 상태입니다.

기억하십시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하여 귀를 막고 어두워지면, 그 다음에는 마음이 허망해 집니다. 총명이 어두워지고 분별력을 잃습니다. 무지해 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서 부끄러운 일, 더러운 일, 합당치 못한 일, 모든 불의를 즐겨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마십시오. 왜 오늘날 젊은이들이 문제가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무시합니다. 딱딱해졌습니다. 부모님들의 권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성적 방종, 술, 마약, 담배의 흡연이 만연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2001년도 1월 1일 입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이방인들처럼 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서 생명을 풍성하게 가꾸어 가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어떤 삶을 사셔야 행복하고, 열매가 있으며 교회가 건강하며 일치 될 수 있을까요?

2.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0-21).

우리들이 왜 이방인들처럼 살수 없는 것입니까?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주신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주 시요 부활의 주님이심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되심과 대 사명과 통치와 섭리와 제자다운 새 생활의 제자의 도를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들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상들의 삶의 모습까지도 듣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배웠”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듣고 배웁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나 교사들의 음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움은 변화를 위한 과정입니다. 배우기는 배우는데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성도다운 생활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내년부터는 성경을 바로 공부하는 열기가 우리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왕이시요 주되심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살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권고를 받았습니다. 새 피조물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법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왜 가르침을 받습니까?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회개와 재창조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아, 재창조된 인간이 벗어 버려야 할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기쁘게 받고 순종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본인도 성숙해 지고 교회도 강하게 연합될 수 있습니다 .

3.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22-24).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미 에베소에서 전도하실 때 그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말씀히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벗어 버려야 합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구습을 벗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오늘이 금년도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대로 가면 썩어질 구습이 있습니까? 오늘 부로 버리십시오. 벗어버리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23절을 보십시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행동의 변화가 없습니다.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습관이 변하겠습니까? 잘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의 열매가 어떠하겠습니까? 기억하십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성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심령을 새롭게 하십시오. 어떻게 새롭게 됩니까? 죄가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무거운 짐이 있으면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잘못된 습관,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옛 구습이 있으시면 주님께 나아가서 회개하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계속적인 내적 갱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예수 믿었다는 관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갱신되는 신앙 생활을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표준 성경으로 읽었습니다. 여기서 의로움이란 바른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나 자신과, 이웃과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는 관계를 이루어 나갑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분리를 말합니다. 우리들이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세상의 사상과 풍조를 따라서 살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시민권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전해주고 가르쳐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의와 거룩을 이루어 가는 성숙한 성도들이 많이 있을 수록 그 교회는 건강하게 연합되어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박 영식 성도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축하를 드립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 가셔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까?
아직 이방인을 따라서 사는 생활을 하시지는 않습니까?
주님으로부터 듣습니까? 배웁니까? 가르침을 받아들이십니까? 내년에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옛 구습을 오늘 다 주님께 내어놓으시지 않겠습니까?

올해보다 낳은 내년을 위해서 무엇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먼저 생각하실 줄 압니다. 재창조를 받은 새 사람으로서 나는 의의 거룩한 세마포를 입고 삽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127 교회의 참 모습. (1) 참고: 에베소서 2장 19-22
128 교회의 참 모습(2) 참고: 에베소서 2:17-22
129 무릎을 꿇고 비노니 참고: 에베소서 3장 14-21
130 속 사람을 강하게(2) 참고: 에베소서 3:14-21
131 속 사람을 강하게(3) 참고: 에베소서 3:14-21
132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마음. 참고: 에베소서 3:17-19
13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참고: 에베소서 3:17-21
134 돌아오지 못하는 길. 참고: 잠언 2:10-22
135 성탄의 별을 따라서. 참고: 마태복음 2;1-12
136 새 사람을 입으라. 참고: 에베소서 4장 17-24절
137 하나님을 사랑하라. 참고: 잠언 8:17-21
138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참고: 열왕기 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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