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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죽었던 우리들
참고: 에베소서 2;1-10
미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의사의 사망 진단을 받은 후에야 장례를 치룹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의사가 할 수 있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적 죽음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었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을 보면 1절에 “너희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3절에는 ‘우리들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즉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었다” “사탄의 노예였었다”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3장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0절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우리들은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로 변화했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로 발전해 가야 하는가? 에 대하여 교훈 해 주십니다.

교회에 오래 동안 다니신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습관적,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거듭난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다니는 것입니다. 별로 생각하는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 들으니 교회에 가고, 친한 사람들 만나니 교회 가고, 안가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서 교회에 갑니다. 인생에 대해서, 의미 있는 신앙 생활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관습의 반복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감동이 있을 리 없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현대인의 병폐인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아닌, 나와 그것의 만남이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들이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나,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 예수님 영접했던 감동과 사랑은 간 곳 없고, 신앙적 지식이 헌신을 대신하고, 연륜을 더할수록 교만해져서 바리새인처럼 말을 잘해도 사역을 아니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이런 영적 교마이나 무기력증을 이기시려면 오늘 본문이 제시한 몇 가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가운데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 복음 15장 24절을 보면,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탕자가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즉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날”을 위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사야서 59장 2절에서 하나님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 전서 5장 6절 말씀에서도 ”일락(향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을 말씀하시기보다는 영적 죽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관계가 단절 된 그 자체가 영적 죽음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살아갈 수록 죽어 가는 인생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우리는 죽어갈 수록 생명의 완성을 향하여 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곧 영생의 길입니다. 오늘은 1절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1.“허물”과 “죄”란 무엇을 말합니까?

새 표준 번역 성경에서는 “범죄”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말로는 ‘파라포토마’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넘어지다.’ ‘발을 잘못 딛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의도적으로 넘는 적극적인 하나님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바로 사는 법을 주셨습니다. 그 울타리를 마음대로 넘어 가는 것입니다. 한발자국을 넘었던지 백발자국을 넘었던지 인간은 적극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한편 ’죄‘로 죽었다고 하셨는데 ’죄‘란 그리스말로 “하말티아”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화살을 쏘았는데 목표에 못 미쳤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자행 자지 하면서 사는 삶 자체가 죄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통하여 짓는 죄를 말합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일 때는 반항하고, 소극적일 때는 무관심하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소 4장 18절 하반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에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들의 주님으로 믿게 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러분들의 영혼이 다시 사셨음을 믿습니까?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다시셨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으시면,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왜 예수님을 믿어야 죄에 죽었던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예수님 안에서 만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일까요?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의 다리를 놓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고,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이 인간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와 허물은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흘려야만 용서될 수 있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는 못된 삶을 살아온 우리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주이십니까?
주님만이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세계에 많은 종교 창시자들의 무덤이 성역화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친히 예언하신 바와 같이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만이 우리들에게 주신 부활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세만이 우리들을 사망의 권세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주이십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만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인간의 몸이 아닌 ‘성령의 전’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힘차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가진 성도로서 성서를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감동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지친 인생 길에 ‘생수의 강’이 내 안에서 넘쳐나는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주님을 믿을 때 주시는 은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주 후면 부활 주일을 맞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이번 부활절에 여러분이 영적 죽음에서 소생하는 귀한 절기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깨끗하게 삽시다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 만날 그날을 준비하시는 순결한 신부처럼 바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구출하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신부”(계 21:9)라고 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19:7,8 절을 읽을 때 잘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깨끗하게, 뒤돌아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옳은 행실로 사십시다.

뜻있게 삽시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부르셔서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만일에 이런 사건이 우리들의 일생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허망함을 따라 사는 허무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사는 무의미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련한 우리들을 하나님이 살리셔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빛의 자녀답게 삽시다. 보람된 사역을 하면서 삽시다. 기쁘게 삽시다. 감사하면서 삽시다. 희망을 가지고 삽시다. 이런 변화된 삶을 삽시다. 한번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지 말고 분명한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보람있게 삽시다.

증거자로 삽시다!
정말로 여러분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을 경험했고 감사한다면, 이 부활의 계절에 부활의 신앙으로 살고, 부활의 기쁨으로 살뿐더러 이 기쁨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어두운 세상,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합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천하에 가서 이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부활의 계절에 우리들 자신이 아직도 가지 고 있는 죽음의 요소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해결해야 할 죄와 허물은 없습니까?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회개하십시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의 변화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부활하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15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5) 참고: 에베소서 1장 18-23절
116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2) 참고: 에베소서 3:1-9
11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참고: 마태복음 23장 37-39
118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참고: 고린도 전서 15:12-19
119 노예 되었던 우리들. 참고: 에베소서 2장 1-10
120 죄로 죽었던 우리들 참고: 에베소서 2;1-10
121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참고: 에베소서 2장 4-10
122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참고: 사무엘 상 1:21-28
123 그러므로 생각하라. 참고: 에베소서 2장 11-22 절
124 십자가의 역사(1) 참고: 에베소서 2장 13-16절
125 일어나라! 전하라!
126 십자가의 역사(2) 참고: 에베소서 2장 17-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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