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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사무엘 상 1:21-28 |
매년 어김없이 5월이 되면 부모님의 덕을 기리며 고마워하는 어버이 주일을 맞습니다. 제가 여러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을 빼고 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부모님을 댑니다. 제 경험으로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자녀들은 신앙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잘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대부분 오늘의 내가 있음은 부모님의 사랑, 특히 어머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먼저가신 부모님에 대한 많은 좋은 기억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 저의 어머님은 한글을 모르시는 분이었습니다. 체계적인 성경 공부도 하시지 못하신 분입니다. 그러신 데도 매일 새벽이 되면 일어나셔서 무릎을 꿇으시고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녀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를 가장 먼저 응답한다고 합니다. 그이 유는 부모님의 기도는 사심이 없기 때문이요, 자녀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희생을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구약 성서에 있는 인물 가운데 사사 시대를 종결하고 왕국의 기초를 놓은 사무엘 선지자의 가정 배경을 통해서 우리 부모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의 가정은 매우 행복했으리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포로로 잡혀간 분이었습니다. 에스더의 부모는 포로로 잡혀가서 세상을 떠나고 그 딸은 삼촌 모르드개가 키웠습니다. 잘 아시는 요셉은 배다른 네 어머니가 낳은 형제들 가운데서 자라다가 형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갔던 분입니다. 오늘 묵상할 사무엘의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1. 불화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1부 1처로 가정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의 하면 예외도 있었습니다. 첫 부인이 자녀가 없을 때는 후처를 허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형이 자손이 없이 죽으면 형수에게 자식을 낳아줄 의무를 정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사회에 있었던 것으로 오늘날과는 다른 풍습입니다. 모세의 율법 가운데는 도덕법, 의식법, 사회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도덕법은 현대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변합니까? 그러나 음식을 먹는 규정이나 예배 방법 등은 시대마다 변했습니다. 사회법 또한 시대와 환경에 의하여 조정되어 왔습니다. 구약에서는 노예제도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그 제도가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엘가나의 첫 부인은 한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성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인정되어서 천대를 받았습니다. 물론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살기는 했지만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습니까? 엘가나는 자녀를 얻기 위해서 후처를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브닌나였습니다. 한나라는 이름의 뜻은 “은혜”라는 뜻입니다. “브닌나”는 산호라는 뜻입니다. 미모가 있는 여성이었든 것 같습니다. 브닌나는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한나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엘가나는 ‘하나님의 집’이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갔을 때에는 더 큰 어려움을 격었습니다. 1장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하게 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서도 한나를 격동케 했으니 평상시에는 어떠했을 까요? 7절을 보십시오.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와 같이 하매(즉 제물을 갑절을 주며 위로했다는 뜻) 브닌나가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했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후처의 비방을 받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러 갈 때마다 울고 먹지 못할 만큼 많은 서러움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오늘 날 크던 작던 간에 문제없는 가정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내가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도 간혹 있을 것입니다. 밥맛을 잃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일들, 하나님의 전에 와서 머리를 숙일 때마다 눈물이 나는 여러 가지의 사연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건강의 문제로, 자녀들의 문제로, 부부간의 문제로 때로는 인간 관계에서 원통할 때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있으신 줄로 압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살펴보십시오.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했습니다. 아들을 달라고 분명한 목적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나실인 즉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 했습니다. 통곡만 하고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열성과 내용과 결심을 가지고 기도한 것입니다.
12절 이하를 보십시오. 한나는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했습니다. 정성을 드려서 인내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엘리는 나이가 많은 사사 였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술에 취한 줄 알고 꾸짖었습니다. 한나는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소서 지금까지 나의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나는 여호와 앞에 서서 심정을 통했습니다. 자신의 원통함과 격동됨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호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인생살이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원통함, 격동되는 일, 답답한 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그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신앙인 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토해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마도 한나는 매년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비통하고 마음이 아플 때, 멸시받고 천대받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을 줄로 압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 하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내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기도 할 때 조심하실 일이 있습니다. 정욕을 위하여 하는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남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기도를 드리시지 마십시오. 감사와 간구로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위해서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6정 33절 말씀을 잘 아시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13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드두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형편에 이르렀어도 성령님이 내 마음을 주장하시면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눈물의 골자기에 뿌린 눈물이 고인 곳이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터져 나오는 곳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기도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시는 어버이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잘 살고 유명해 지는 것 보다도 먼저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 들려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가 되도록 드리고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가에는 군대가 있어야합니다. 정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있어야 국가도 유지됩니다. 건강한 가정은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녀들이 쓰임 받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눈물 어린 기도를 하나님이 모른 체 하실까요?
3. 한나는 결단력이 있는 어머니였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간절한 한나의 말을 들은 제사장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를 입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더 이상 근심 걱정하지 않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실 것을 믿고 근심을 떨쳐 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나와 남편 엘가나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였고 부지런했다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2차 대전 후에 미국의 Y.F.C를 이끌었고, 지금은 King's College의 학장으로 계신 Robert Cook 박사님의 말씀을 방송을 통해서 즐겨 듣습니다. 새벽 6시 5분에 KEAR이라는 기독교 방송에서 합니다. 그분은 어머니를 2살 이전에 잃은 후에 아버지가 재혼하시지 않고 누나와 주위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서 키워졌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일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이른 새벽에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기 전에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것보다도,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도,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도, 이른 아침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하나님과 함께 교통하는 부모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한나의 눈물어린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를 생각하시고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부쳤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엘가나와온 집안이 하나님께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갔습니다. 서원제라는 말을 하나님께 약속한 바를 시행하겠다는 예배입니다. 엘가나는 사랑하는 아내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그 서원을 시행하는 가장이었습니다. 누군들 귀여운 아들이요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첫 부인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우리들이 이 가정에서 배울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꼭 기억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기도해서 응답된 후에 어떤 태도를 갖기 쉽습니까? 많은 경우는 잊어버립니다. 알아도 뒤로 미룹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합니다. 엘가나는 그 아들을 일생토록 하나님을 섬길 나실인으로 드릴 것을 작정하고 서원제를 드리러 성막이 있는 실로로 갔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행하는 신앙인을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이 복을 받는 것보다도 복을 받은 후에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23절을 보면 분명히 부부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사무엘이 젓을 떼면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가서 “영영히 있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합심해서 공통된 보조를 일관되게 실행야 합니다.
어느 날 어린 젓을 뗀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갔는데 그 나이가 어렸습니다(24). 젓을 뗀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이가 어렸다고 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집에서 자녀가 자라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 부모의 영적 책임이 어떠한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을 통해서 인생관이 형성되고 예의 범절을 배우고, 에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 큰 다음에는 어렵습니다. 요사이 교육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6살 이전에 뇌의 85%가 형성되고, 인생의 방향이 거의 결정된다고 합니다. 우리 날 속담에 “세살 때 버릇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나이에 있는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게 하고, 말씀을 암송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가르쳐 주고, 실제로 본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미국 교회 사무를 보시는 주디 집사님은 여러 해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교회 사무를 보시기 전에도 제가 교회에서 일하면서 본 것은 시간이 되시는 한 City Team에가셔서 봉사도 하시고 교회에 오셔서 이일 저 일을 도우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데 교회 남자 집사님들이 데리고 낚시도 가고 교회에 일을 할 때면 데리고 오셔서 기계 쓰는 법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교인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한 꿋꿋한 남자로 키우기 위해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실제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만났더니 이 교회에서 성장하신 분이 파파 뉴기이에 선교사로 가 계시는데 여름 방학 때 그분을 돕기 위해서 간다고 합니다. 선교에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를 받아서 아버지처럼 맡아줄 선배들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부모님들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도록 자녀들을 키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가고 싶다고 해도 늦잠을 자는 부모가 되지 마십시다.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는 부모가 되십시다. 매일 손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가정이 되어서 어린 시절부터 본을 보고자라는 영적 환경을 만드는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엘가나와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수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이 아이를 맡아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주시기를 바라면서 이런 감동적인 말을 했습니다. 26절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 하신지라 그러므로 나오 그를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의 부모는 어린 사무엘의 일생에 지워지지 않는 예배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를 잡는 모습 속에서,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눈물과 감사의 기도를 드림을 보는 사무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문제는 우리들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부모 된 우리들이 온전한 헌신된 삶,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기 위해서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참 예배자로 사는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사는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면서 사는가가 아닐까요?
부모님을 두신 여러분!
이 뜻 깊은 어버이 주일에 부모가 있으신 분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일들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효자가 되십시오.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자녀가 되지 마십시오.
부모님 되신 여러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아버지 엘가나를 통해서 배우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비통함과 실패와 좌절이 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어떤 태도로 기도하시겠습니까? 기도가 응답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들에게 어떤 신앙적인 모범을 보이시기로 결심하십니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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