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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도부터 배 사라 선교사님을 통하여 '경건의 시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부족하나마, 그후부터 매일 주님과의 '만남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경건의 일기'라는 노트를 만들어서 정리해 왔습니다. 매년 해왔던 경건의 노트를 다 보관하지도 못하고 분실도 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하여 보존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웹에 올려 보존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저와 함께 모이는 공동체에서 '경건의 시간'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는데, 실제로 경건의 시간의 한 예를 볼 수 있게 해 줄 필요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이 서로 나누도록 하고자함이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후 2011년 1월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에수님
마가복음 6:1-6
주후 2011-09-05(월)
본문 요약
1-4 /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셨을 때, 사람들이 가진 질문들.
5-6 /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불신하는 것을 보시고 놀라신 예수님.
하나님에 대한 묵상(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
예수님(5)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예수님.
예수님(6)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음에 대하여 놀라신 예수님.
신앙 생활에 대한 묵상(약속, 교훈, 모범, 피할 조, 경고, 명령)
모범(2)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
피할 죄(3) 예수님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여긴 고향 사람들.
교훈(4) 예언자는 고향이 아니라, 고향 밖에서 존경을 받는다.
묵상과 적용(기도할 것, 행할 것, 발견된 교훈의 전개)
예수님의 사역은 강행군의 계속이었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휴식을 필요로 하셨던지, 아니면 마가복음 3장 21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미친줄 알고 잡으러 왔던 가족을을 만나서 교정해 주시기 위함이셨든지, 아니면 고향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영육간에 병든 사람들을 도와 주려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고향에 가는 길은 설레임이 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고향 사역에 대하여 매우 흥미진진하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쳤습니다.
첫 반응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2절 말씀에는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 이사람이 어디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이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라는 경이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요, 마리아의 아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에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들이 예수님을 달갑지 않게 여지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요, 목수였으며, 그의 가족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주장하신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같은 사건를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이사야서 61,2절 말씀을 인용하셔서 말씀을 증거하시면서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공포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한 것은 넘어서, 불경죄에 해댱한 예수님에 대하여 화가 잔뜩나서 들고 일어나 동네 밖으로 내 쫓고, 산 벼랑에 떨어뜨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더더욱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곧 자신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
사실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간적을 잘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죽이려던 나사렛 동네 사람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동네 사람에게, 일종의 정신 병자 취급을 받으시고서 그 동네를 떠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시요, 그분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는 메시야라고 주장하면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반 사회적인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예수님만이 메시야이심에는 하나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주정하던지간에 예수님만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주님,
예수님도아주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모욕과 내어 쫓김을 받으셨음을 봅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만이 주님이 되심이 변할 수 없는 진리임에 감사드립니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어떤 댓가-사람들의 비웃음-를 받더라도 꼭 지켜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Number Title Reference
230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에수님 마가복음 6:1-6
229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시편 143:1-12
228 유대의 타락한 지도자들 에스겔서 22:23-31
227 ‘달리다굼!’ 마가복음 5;35-43
226 “안심하고 가거라.”하고 말씀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5:21-34
225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예수님 마가복음 5:1-20
224 "고요하고 잠잠하여라.”고 명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장 35-41
223 세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21-34
222 주님의 계명을 사랑하는 자의 고백과 기원 시편 119:113-128
221 그 때가 오면, 한 의로운 가지를 주실 하나님. 예레미야 33:14-26
220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명해 주신 예수님 마가복음 4:13-20
21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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