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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에베소서 4:14-16 |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대부분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줄 압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올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거룩한 삶, 선한 영향력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떠나는 영적 모험들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이 그러합니까?
여전히 옛 습관과 씨름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옛 사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가르치는 이의 7가지 법칙, 장면 2 보여줌)
히브리서 5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시간으로 말하면, 여러분은 이 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무수한 날들이 지나갔지만 젓을 먹어야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러 계신 분들이 초대 교회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말씀을 드리고있는 저도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서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을까? 하고 질문 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대답은 ‘Yes’ 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일으키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변화의 기적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옛사람의 껍질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 하더라도 애벌레가 고치를 깨고 아름다운 나비로 탈바꿈 하듯이 그리스도를 닮은 새 사람으로 탈바꿈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장 4절 하반절에서 “여러분이 세상의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2. 중심 되는 말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주님을 닮은 성숙한 성품으로 변해 갈 수 있을까요? 20주년을 맞이한 동산 교회가 어떻게 하면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성숙한 신자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안정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확고한 교리적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영상 띄우기)
“오늘날 우리는 성경 문맹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그 대가로 혼란스럽고 피상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토대가 될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말씀에 대한 규칙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개인 경건의 생활이 그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과 그 기본적인 가르침을 알면 신앙 성장이 활력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말씀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그 상태를 ‘칭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죄와 죄책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다 ‘지불완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형벌을 제거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가진 법적 신분입니다.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구원의 은총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다음으로 가야 할 단계는 성화의 단계입니다. ‘성화’는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 마음과 삶을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바꾸어 주셔서 우리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도록 해 주시는 단계입니다. 이런 삶을 살려면,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 요청됩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로마서 10장17절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자로서 인생의 목표중의 하나는 성경의 내용과 교리에 통달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 묵상과 성서의 바른 이해와 영적 성장을 돕는 독서를 계속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을 최소한 한 주에 한번 정도 소 그룹에서 토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그것을 믿음의 동지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될 때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과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14절)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설 때에 세상의 풍조와 거짓 스승에게 말려들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옛 본성과 싸웁니다. 이 세상의 풍조와 싸웁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유혹하는 사단과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장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성품의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제 부터는 하나님 말씀에 안정된 지식을 갖기 위하여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성도들간에 진실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15절 영상)
15절을 보십시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관계의 사람”이 있는가 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현대인의 성경)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은 거룩한 변화의 두 번째 시금석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성숙과 거룩한 변화가 미미한 이유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정직한 관계를 맺은 성도나 모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 중심을 두고, 책임 있는 행동을 격려하는 사랑의 관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전에는 거룩한 변화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죄악의 생활로 내려가는 것을 본 형제가 “형제여!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의 삶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입니다. 반대로 내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줄 사람이 있는가? 입니다. 없다면 지금이라도 찾기 시작하십시오. “제가 잘못되거나 영적으로 게을러 질 때 질책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잠언 27장 5절을 보면, “맞대 놓고 책망하는 것이 숨은 사랑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날 교회에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관계를 가진 성도가 몇 %나 될까요? 고국에 있는 한국 교회는 약 5%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민 교회는 그보다 높을까요? 진실한 관계가 없는 오늘 날의 교회가 참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 이유는 대분분의 신자들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 저녁에 나의 신앙을 상담하고 때로는 꾸중을 해 줄 수 있는 분을 생각해 보시고, 연락을 하십시오. 이제 후로는 영적 점검 파트너, 영적 멘토를 갖고 사십시오. 위대한 신앙인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와 충고자가 있습니다.
셋째로,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주님의 몸에의 온전한 참여해야 합니다.
(16절 영상)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므로, 온 몸은 여러 부분이 결합되고 서로 연결 되어서, 각 부분이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라는 말씀 속에서 ‘온 몸’, ‘여러 부분’, ‘각 부분’ 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전체와 연결됩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연결 되지 않으면, 온 몸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온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온 몸도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영적 성숙은 외톨이로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에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건 서적을 읽었어도 지역 교회에서 여러분의 자리를 찾아서 사역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방식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연결 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잘 결합되어 서 사랑을 주고 사랑 받고 계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역 교회에 속하셔서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십시오. 자신의 은사를 모른다면 어떤 분야든지 시작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은사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이라도 다른 신자들과 힘을 모아 봉사할 수 있습니다. 사역에 참여할 때 서로 알게 되고 사랑 받고 사랑하게 됩니다. 다른 분들과 기도하게 되고, 그들도 여러분과 같은, 아니면 더 큰 싸움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은연중에 자기 중심적인 삶에 익숙해 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기 바라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섬겨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서로 연결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둘 수도 섬겨 줄 수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 나름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성경에는 “서로 격려하라.” “서로 돌보라.” “서로 짐을 져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이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생활”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부터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절을 보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실제적인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정확하게 자신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생각의 중심에 놓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둔 생활 태도입니다. 변화된 성숙한 삶은 타인 중심의 희생적 관계와 섬김의 삶에 대한 부단한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온유함입니다. 온유는 ‘사려 깊다’는 뜻입니다. ‘자제할 수 있는 인격’을 말합니다. 온유는 힘을 다스릴 줄 아는 성품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오래 참음 즉 인내입니다. 이 말은 ‘꾸준히 견딘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마이크로시마’인데 이 단어의 뜻은 아주아주 많이 열을 받아야 화를 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왜 인내하지 못합니까? 우리에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용납입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변덕, 잘못, 특이한 성격까지도 참아 준다.’는 뜻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발휘한 후에도 그저 ‘참아주는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참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품으로의 변화 과정은 수도원이 아니라 개인 경건의 생활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3. 맺는 말
(동영상 상영)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숙하게 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이것을 이제부터는 배우며, 실천하여 거룩한 변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계획을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행합시다. 그렇게 함으로 말과 생각과 인격이 성숙한 성도로 변화합시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관계를 정립한 모임과 멘토를 가집시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돌보아 주는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섬김으로써 날마다 변화되어가는 성숙한 성품의 성도가 되고자 열망합시다.
성서는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말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장부답게 되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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