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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로마서 13:11-14 |
기독교 교회사에 가장 유명한 신학자요 교부로 불리는 성 어거스틴이 젊어서 죄악 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모니카의 낯을 피하여 북아프리카로부터 로마로 도망가서 있을 때, 이웃에서 놀던 아이들의 음성으로 “펴서 읽어라.”라는 말이 들려 왔습니다. 그 때 그가 펴서 읽은 말씀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본문을 읽을 때 큰 은혜를 받아 죄를 자복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어둔 생활을 온전히 청산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옷을 입게 된 말씀입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을 보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본문에서 이 시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 선생님은 몇 가지로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1절을 보면,
1) 자다가 깰 때라고 하셨습니다.
2)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워진 때라고 하셨습니다.
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진 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기는 어둔 세상입니다. 성서적인 견지에서 보면 지금 이 시대는 말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학자들이 세계의 종말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여 그 수치를 낸 것이었습니다. 9.11사태 이전까지는 12시 5분전이었는데 그 후 ‘12시 3분전’이 되었다는 실로 충격적인 기사였습니다.
12절 말씀에서도 “우리의 구원이 믿을 때 보다 가깝다.”고 경고하셨습니다. 12절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3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전쟁과 기근과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미혹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 하실 날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도덕적이니 면에서도 말세가 왔습니다. 지난 해에 프로포지션 8이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성결혼은 어느 주에서나 버젓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마약 문제, 성도덕의 문제 그리고 청소년의 문제는 어떤 법적 제제나 사회적 방어 장치로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 음악등은 하나님을 떠난 죄악상의 전시장이 된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지만 지난 2년 전에 산디에고 지역에 큰 산불이 나서 온 매스컴이 그쪽으로 쏠려있을 때,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서 통과된 ‘SB777’ 이라는 법률안에 주 지사가 서명을 했습니다. 그것은 공립학교에서 게이나 레스비안은 아주 정상적인 삶의 형태이며, 학생 가운데서 자유롭게 남자든지 여자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남자가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면 여자 화장실, 여자 탈의실 여자 운동부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여자 아이도 남자 화장실, 탈의실등 남자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립학교에서 이것을 거부하는 교사나 학생은 특수 교육할 할 수 있고 때로는 징계 할 수 있는 법안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사실 이렇게 타락한 도덕 의식을 가진 법 체제 하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영어로 ‘소도미’(sodomy)라는 말은 동성 교합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들을 불과 유황으로 아예 지상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들이 이런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1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깨어나라’는 말씀은 사탄의 ‘시험에 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경각심을 갖고 기도함으로 늘 깨어 사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8절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이단 사교나 인간의 이성, 경험, 예술, 또는 거짓 교사들을 통하여 오늘 날도 간단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깨어나라’는 말씀은 ‘자기의 의무를 자각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라고 했는데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신자는 없습니까? 각자가 교회에서 받은 사명도 있고,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과 ‘복음 전도의 사명’을 아예 잃어버리고 잠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깨어나십시오!
제가 오래 전에 고국에 있을 때,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60여세 되어 보이는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그분도 영락교회를 다니신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성실히 섬기시는 영향력 있으신 권사님들의 성함을 대시면서 아느냐고 하셨습니다. “예 제가 압니다.” 그랬더니, “사실은 그분들이 처녀시절 저와 매우 친했던 친구들이고 함께 교회학교 교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 후에 그냥 영적 잠을 잤습니다. 서서히 주님과 멀어졌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나 잠에서 깨어나 이제 좀 주님을 섬기려니 너무 늦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삶이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세월을 아낍시다. 잠자는 분이 계시면 깨어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2절을 보면 “어두운 일을 벗어 버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두운 일이란 즉 “어둠의 행실”을 말합니다. 13절 말씀에 구체적으로 어둠의 행실의 예를 세 가지로 제시하셨습니다.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입니다. 이런 것은 다 어둠의 행실입니다.
국어 사전에는 방탕이라는 단어의 뜻을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않은 것”을 뜻한다고 정의 했습니다. 표준 새 번역 개정판에서는 이 방탕을 “호사한 연회”라고 번역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는 아끼지 않는 생활 태도를 말합니다. 믿기는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과 별다름 없이 허랑방탕한 삶은 산다면 그것이 곧 어둠의 행실입니다. 그리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을 참 좋아합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만 말라고 했는데, 왜 교회는 술을 금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윌리암 캠불이라 목사님은 성경을 해석 할 때 어떤 한 구절만을 잡지 말고,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그 교훈에 대한 다른 구절들과 함께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잠언 23장 31절을 보십시오. “잔에 따르는 포도주가 아무리 붉고 고와도, 마실 때에 순하게 넘어가더라도, 너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음주 단속에 걸린 사람들이 하는 말의 공통점은 자기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존경 받으시는 교장 선생님도 술 취하시면 갈지자로 걸으면서 고성방가를 부릅니다. 아무데서나 소변을 봅니다. 토합니다. 괜히 싸움을 겁니다. 집에 와서는 아이들을 이유 없이 때리고 부인을 때립니다. 의인 노아도 술 때문에 망신 당한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다음으로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고 임신해서 낙태시키든지 아니면 낳아도 고아원이나 입양기관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태어난 아이가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가 지고 가야 할 인생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의 원인입니까? 음란과 호색이 아닙니까?
성적 타락은 개인의 인격의 파탄을 가져오고, 가정을 파멸로 몰아가며, 사회에 각종 짐을 지울 뿐 아니라 각종 범죄와 살인의 원인이 됩니다.
약 20여 년 전에 이 곳에 사는 동포들 가운데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 간에 삼각 관계가 형성되어 총으로 죽이고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고 하셨을까요? 우상 숭배와 함께 음란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온갖 광고물과 책들과 인터넷이 호색과 음란을 정당화하고 죄 짓도록 부추깁니다.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할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4절 하반절을 보면,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쟁투 하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쟁투라는 말은 ‘싸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는 목사님이 서울에 가셔서 지하철을 타셨는데 승객들 중에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 일어서시더니 “싸우지 말고 조용해!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라고 소리를 지르시더랍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하나됨과 화평을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에 고국에서 어는 집을 가면, 대청 마루에 ‘가화만사성’이라는 글이 붙어있는 집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한경직 목사님은 설교하시면서 ‘교화 만사성’ 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힘을 모읍니다. 그러나 악한 사탄은 서로 갈라놓고 시기 하고 질투하게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즉시 벗어 버려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넓은 마음으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상과 같은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린 후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세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4절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옷은 그의 품위, 직위, 취향, 신분을 나타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습니다. 간호사는 그에 따른 복장을 입습니다. 법관은 법복을 입습니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잔칫집 주인이 그에게 하는 말이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이곳에 들어 왔느냐?”고 하자 묵묵 무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려면,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 7장 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각 나라, 각 족속, 각 방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 ‘흰 옷’을 입고 있었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이 ‘흰 옷’이 무엇입니까?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의롭다 하심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로 우리의 온 몸을 감싸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상한 인격과 그리스도의 고귀한 성품,을 가지고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온유와 겸손, 관용과 용서,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을 갖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안디옥에 살던 신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챤’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 이하를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부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나오지만 벌거벗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죄를 온전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입혀주시는 의의 흰 세마포를 입지 않고 교회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는 성도의 깨끗한 행실, 밝은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회개하지도 않고 그냥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어떻습니까? 성경은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 이하를 읽을 때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궁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들의 삶에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서로 용납하여 용서하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밝은 행실을 옷 입고 사는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런 옷을 어디서나 언제나 입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예배하러 올 때, 주일날 교회에서는 물론 세상에 나가서도, 사업을 할 때에서 사람들과 만날 때도 이런 옷을 입고 사는지를 늘 깨어 점검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 먼저 우리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라도 지은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새 사람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빛나는 옷을 입지 못한 분은 않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께 마음을 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어둠 가운데 거니시는 분은 않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 어두운 것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로 옷 입어 세상을 밝히는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어둔 세상에서 밝은 행실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성도들이 모인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적은 수의 우리들 만이라도 이 어둔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옷 입어 밝은 행실을 가지고 살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온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과 빛의 갑옷을 입고 영적 싸움을 용감히 할 때가 아닙니까?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됩니다. 주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옵니까?
온전히 죄를 회개하고, 믿더라도 깨어 있고, 더 나아가서 생명의 빛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생명의 호흡이 되는 기도를 간단없이 하며, 그리고 불꽃 같으신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늘 충만이 받아서 순종할 때 이 어둔 세상에서 밝은 행실로 세상에 빛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어둔 세상에서 밝은 행실 가운데 삶으로써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여러분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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