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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
참고: 전도서 11:1-8
미국으로 이주해 오실 때 이미 직장이 결정되어서 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서도 미국에 오셔서 살길을 마련해야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봅니다. 저도 미국에 오면서, 말도 안 통하는 낮선 땅에서 ‘어떻게 살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미국에 왔습니다. 초청해준 누나에게 걱정을 말했더니 일단 오면 살길 있다는 거예요. 하와이 공항으로 입국했는데 이민 담당관이 얼마의 돈을 가지고 이민 오느냐고 하더군요.
235불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분이 걱정을 해 주시는 거예요.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고. 그래서 못하는 영어로 저는 하나님을 믿는데 열심히 일하면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고요. 그랬더니, Good Luck! 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미국에 올 때 제일 먼저 ‘어떻게 살까?’라는 스스로에게 한 질문은 아내와 두 아이의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심각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낮 밤 없이 저와 집사람이 일 함으로서 해결 되었습니다.

직접 목회에 전념 하기 전에 안정된 직장을 잡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좀더 발전해가는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 대로 City college, Bible college에 등록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가까운 미국 교회를 다녔는데 집사람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을 전도도하고 제가 전도해서 양육하던 젊은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교회에서 성경 공부 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교회로서의 모습을 이루어 갈 때,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개척교회의 형편을 잘 아는 저의 또한 번의 질문은 ‘어떻게 살까?’이었습니다. 저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고정 수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헌신에 따르는 고민이었습니다.
첫 개척 교회를 시작했던 때로부터 20여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현재도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가끔 합니다. 이 물음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의 질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앞으로 남은 날들에 열매를 남기는 보람된 삶을 살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성도님들 가운데서도 저처럼, ‘어떻게 살까?’라는 절박한 삶의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질문 하시거나 질문 하셨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을 굳게 의지하고 낙심하지 마시고 힘껏 일하시면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또는 보람된 일생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함께 전도서 11장 1-8절까지 교독하시겠습니다.

중심 되는 말

솔로몬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다윗의 위를 이른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 아니었습니까?
그 위에 이 세상에 살면서 명예, 부귀, 권세를 누렸던 솔로몬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도서 1:2-3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인생을 탄식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결론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솔로몬의 고백대로 ‘허무’입니다. 헛됨입니다.

이 저녁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솔로몬의 권면을 가지고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1장 1-3절은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11장 4-6절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11장 7-8절은 ‘준비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이 시간 11장 1-3절을 중심으로 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서 1:1-3절을 통하여,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로,1절을 보십시오.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서로 나누라고 권면 합니다. 특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된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신명기를 읽으면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5:17절에 보면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던지라”는 말의 본 뜻은 “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 주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마음씨 좋은 부자들이 음식을 담은 그릇을 흘러가는 물위에 띄워서 가난한 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로, 어떤 태도로 나누어야 합니까?
왜 물위에 띄웠을까요? 명예성이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선한 구제 행위가 기억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투자하고 베푼 것을 회수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적용) 어떤 분이 말하기를 중동 사람들은 ‘알라’를 신으로 모시고 미국 사람들은 ‘달라’를 신으로 모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받은바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나누기 보다는 하나님께 계속 ‘달라’ ‘달라’라고만 하기 쉽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읽은 책 가운데 영국 사람으로 많은 영향을 준 에블린 언더힐이라는 분의 글을 즐겨 읽었습니다. 3월 생명의 삶 추천의 글 ‘사랑 때문에’ 라는 글에 에블린 언더힐 여사의 글을 인용한 것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속(구원)은 당신과 내가 그저 안전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각 영혼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달아 이기심에서 구속되며, 다시 그 구속의 역사를 확산시키기 위한 통로로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달아 이기심에서 구속된 사람들입니다.” 모든 동기가 나로부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복리를 생각하는 성숙함으로 발전합니다.

우리들이 나누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헌금, 구제금, 선교 헌금, 또는 형제 자매, 일가 친척, 또는 친지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쓰기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나누는 분이 있고, 많이 가져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헌금은 약 85%가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 낸다고 합니다.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꼭 그럴까요?
셋째로, 나누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1절하반절을 보십시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도로 찾을 것을 목적으로 하고 헌금을 한다든지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은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신 것”,을 잊지 안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갚아 주십니다. 나의 대에 아니면 우리들의 후손 대에라도 갚아 주십니다.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을 주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넷째로, 왜 나누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2절 하반 절을 보면,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경직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 납니다. 미국에서 엠포리아 대학을 졸업하시고 일제 하에 있는 고국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일제에 의해 폐쇠되고 적국인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어떤 교직도 가질 수가 없어서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셨습니다. 불우한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니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어 재산이 있는 기독교 인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때 어떤 분들은 기쁨으로 협력해 주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거절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해방 후에 남한에서 이북에서 아시던 분을 만나실 때 고아들을 위해서 협력해 주신 분들은 “목사님! 제가 이북에서 내려올 때 공산당에게 다 빼앗기고 내려왔는데 그때 고아들을 위해서 헌금했던 것이 얼마나 잘 했는지 보람이 됩니다.”라고 하고 그때 거부했던 분들은, “목사님, 죄송합니다. 왜 그때 제가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릅니다. 다 빼앗기고 내려오니 후회가 됩니다.”라고 하시더랍니다.

3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쏱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대로 있으리라.” 인간을 언제 어디서 쓰러질 지 모릅니다. 인간의 삶의 한계성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손을 펴서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라고 하십니다.

2절 상반절을 보면, 나누되 인색하게 나누지 말고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인색 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기회 있을 때에 선행을 하라” 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9장 6절을 잘 아시지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한 자매님의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캠패인을 끝내고 나서 좀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중, ‘월드 비존’ 을 통하여 아프리카에 있는 한 어린이를 돕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우리나라가 6.25 사변으로 많은 고아와 과부와 무의 무탁한 노인들이 있었을 때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양부모가 되고 후원자가 되었느지….

제가 아는 중학교 때 미국에 오셔서 크신 목사님이 한국 컴패션 대표로 일하시게 되었는데, 사실 한국 컴패션은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아진 1980년대에 철수 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 본부에 연락을 해서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어떻게요? 어려운 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하고 뭉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정성껏 ‘쓰나미’ 헌금을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을 좀 절약합시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를 도웁시다. 복음 전파 사역을 지원합시다. (원칙 설명)
학생들을 도웁시다. 어떻든지 선한 사역에 참여하십시다.

어떻게 일생을 사시겠습니다. 나누면서 삽시다!
이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재능도 나누고, 시간도 나누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도 나누고, 받은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는 것도 다 포함 될 것입니다. 뒤로 미루지 맙시다. “기회 있는 대로 선한 일에 항상 힘쓰는 자가 됩시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땅은 영원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을 교독하시겠습니다.
35-40절을 잘 살펴 보십시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영적으로 궁핍한 우리들의 이웃은 없습니까?
그들에게 말로, 사랑으로,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육적으로 궁핍한 이웃은 없습니까?
나눕시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
복음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어 이 땅에서도 하늘 나라에서도 큰 상급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구원을 위해 생명을 주신, 살과 피를 찢어 나누어 주신 주님을 따라 삽시다!

기도 하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63 중심에 호산나 (엘림장로교회040509) 참고: 마태복음 21:1-11
16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참고: 요한복음 14:1-14
165 어둔 세상, 밝은 행실 참고: 로마서 13:11-14
166 준비 하시고 사십니까? 참고: 마태복음 25:31-46
167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참고: 히브리서 12:14-29
168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참고: 마태복음 6장 5-15절
169 목적 있는 섬김인가? 참고: 창세기 24장 10-14
170 나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 참고: 디모데 후서 4:9-18
171 이제부터는 참고: 에베소서 4:14-16
172 어떻게 살까? 참고: 전도서 11:1-8
173 베뢰아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참고: 사도행전 17:10-15
174 건강한 신앙공동체의 길 참고: 빌립보서 4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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