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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위에 세운 교회
참고: 마태복음 16:13-20

창립 22주년을 마지하신 상항 반석 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자리에 참여하신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시고 강건하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북부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들어가는 링컨 터널이 있습니다. 입구에 가까이 가면 양 옆에 까만 암석들있는데, 길을 낼때 암석을 깨서 만든 것을 봅니다. 호보큰은 링컨 터널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허드슨 강 건너편을 보면, 911때 무너져 내린 쌍둥이 삘딩의 빈 터가 보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하여 하늘을 찌르는 듯한 마천루도 보입니다. 그 좁은 만하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고층 빌딩이 설수 있었을까요? 만하탄 섬의 지반이 암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봉독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8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나는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2년 전에 상항 반석 교회를 유 무길 목사님과 성도들을 통하여 설립해 주셨습니다. 그 때 모이셨든 분들이 교회를 시작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시며, 메시야시며, 세상의 구주이심을 널리 증거하시기 위해서 모이셨을 것입니다.

이미 읽으신 하나님의 말씀 18절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희랍어로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무엇을 위하여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상항 반석 교회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아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로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봉독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18절에서 예수님은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상항 반석 교회가 창립된 22년 전이나 지금이 나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항상 주님의 것인 상항 반석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구약을 보면, 절기들이 나옵니다.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초막절, 나팔절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절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과 언약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역사속에서 기억을 새롭게 하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22주년을 맞이하신 상항 반석 교회 성도님들은 물론, 우리들이 소속된 교회가 어떤 교회로 모여져야 할 것인가를 묵상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 삼위 하나님께서 이시간 하늘 문을 넓히 여시고 픙성하신 교훈과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봉독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함께 일하신 약 2년 반정도 되는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90Km 정도 떨어진 헐몬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한 빌립보로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곳은 각양 각색의 종교가 신봉되는 곳이었으며, 특별히 바알 신 숭배가 강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헬라의 신인 ‘판’을 섬기는 신당들이 많았고, 헤롯왕이 아구스도 가이사를 신격화 하기 위하여 신전을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시 환경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보셨습니다.
“사람들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후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정도의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은 나늘 누구라고 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영어로는 “Who do you say I a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들에게 강요가 아닌 전 인격적인 고백을 원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 보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고백적인 신앙이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한 구세주이신,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 ‘메시아’로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영원부터 계신 분이시요, 하나님의 본체시며,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신 주님을 요약한 고백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는가? 어떻게 고백하고 간증하는 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는 집에서나서 그냥 교회에 습관적으로 나온다든지, 남이 믿으니까 믿는 것이라든지, 기독교의 교리나 신조들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끝나는 믿음을 원치 않으십니다. 나의 고백, 나의 간증이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그 고백과 같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그의 이름을 요나의 아들 시몬으로부터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로 불러 주셨습니다. 성서 시대의 이름은 그가 누구냐 하는 존재적인 면과 직결되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데는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한 후에 변경된 이름입니다. 주님에 대한 고백이 분명해야 죄인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고백한 말을 들으시고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신령한 복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입으로 말하고 고백하며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 동거 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 때문에 복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고백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감화와 감동하심이 있기 때문에 복된 것입니다. 계시란 하나님의 비밀을 열어 보여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예수님이 누구신 것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감화 감동하셔서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읽고 묵상해서 깨달을 수 있음이 큰 복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맡은 가르치는 일의 상징으로 흔히 열쇠를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룩될 교회의 첫 선포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 사용 될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들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하늘 나라가 더 확장되기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복음을 전했고 일시에 삼천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깨달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주십니다. 이 임무를 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음 단계를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 동거할 뿐만 아니라 동고도 합니다. 즉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을 이겨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21절에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야 하며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절대로 그런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표준 새번역 개정판의 표현대로 하면 “대들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고백한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일 지라도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는 것을 원치 않는 우리들은 우리들도 고난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4,25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라고 했고 골로새서 1:24절에서는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왜 고난이 있습니까? 주님의 자녀들과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을 싸우려면, 자연히 고난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처럼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공중에 권세잡은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8절에 보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만나나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백적인 공동체, 고난을 이겨 나가는 주님의 공동체는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고결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2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고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위선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한낱 전통과 아집에 묶어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서 산상 보훈인 마태복음 5장 13,14절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소금은 맛입니다. 빛은 매력을 줍니다, 시선을 끕니다. 멋과 멋을 더하면 영향력이 됩니다. 이웃과 사회와 국가에 영향을 주는 신자와 교회 공동체가 되기위해서는 성경적 이론과 연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삶, 고결한 삶, 성숙한 삶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성령안에서 닮아 갑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5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성경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2장 16절에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정 24절에서 우리 주님이 친히 산상 보훈의 말씀을 마치시면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실천하여 고결한 삶, 성결한 삶, 성숙한 삶을 사셔서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반석위에 우뚝 선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 맺는 말
교회 창립 22주년을 마지하신 상항 반석 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자리에 모이신 성도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전 인격적
고백을 주님께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창립 22주년을 맞이하신 상항 반석 교회 성도 여러분!
고국에서는 만 21세 정도가 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합니다.
많은 고생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함께 힘든 영적 싸움을 싸우
는 일에 따르는 고난에 기쁨으로 자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영혼 구원을 위한 싸움은 아마도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일 것입니다.
어느 여학생이 목걸이 장식으로 예쁜 십자가를 걸고 다니는 것을 보신
선생님이 웃으운 이야기로, “자매님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지고 다니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니 십자가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선생님 십자가는 지고 다니는 것이라고 해서 쪽으로 돌려서 메었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를 기억하시지요? 사도행전 2장 43절 이하를 보면 성도들이 유무상통하며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47절을 보면,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삿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성도들의 삶과 인격이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거룩한 성화의 삶이 정착되면 분명히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37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참고: 마태복음 6:19-34
38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참고: 골로새서 3:12-17
39 영생의 비결 참고: 요한복음 6:48-59
40 성경은 어떤 책인가? 참고: 디모데 후서 3:15-17
41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1) 참고: 에베소서 3:7-13
42 신앙 성장을 위한 세 가지 요소 참고: 요한1서 1:1-10
44 반석위에 세운 교회 참고: 마태복음 16:13-20
45 큰 빛 안에 거하는 공동체 참고: 요한1서 2:7-11
47 어떻게 부모를 섬길 것인가? 참고: 창세기 9:20-27
48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참고: 마태 21:1-17
49 지혜를 얻으려면 참고: 잠언 2:1-6
5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참고: 고린도 전서 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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