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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참고: 마태 21:1-17
어떤 책을 읽어보니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심각한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의사의 진단에 의하여 이 세상에서 1주일 동안만 생존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누구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말의 교회’라는 책을 쓴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Francise Shaffer)는 그의 마지막 주간을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 신앙의 동지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서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다가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생활의 마지막 한 주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한 주간을 인간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시며, 기도하시다가 잡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1.예수님은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여리고로 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군사도로를 이용하셨습니다. 이 도로는 여리고를 출발해서 베다니를 통과한 후에 감람산 남동쪽에 위치한 벳바게 옆을 지나서 감람산을 넘고, 다시 기드론 골짜기를 통과하여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은 승전한 왕이나 장군들이 백마를 타고 의기 양양하게 들어오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이유는 구약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4).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줄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리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곧 나귀의
작은 새끼니라.”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셨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셨고 겸손하신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화와 겸손의 상징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을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45절에서도 예수님은 섬기러 오신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한 주간의 시작을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는 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을 배워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약속을 기초로 해서 삶의 틀을 짜고 행동의 기초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 나귀는 어떻게 준비된 것입니까?

본문을 보면,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는 두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수하고 단순한 순종을 봅니다(1,2). 그리고 나귀 주인의 아낌없는 나눔을 봅니다(3). 본문에 나오는 벧바게의 맞은 편 동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베다니 마을입니다. 6절과 7절 상반절을 보면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하여 나귀와 나귀의 새끼를 끌고 와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하신 그대로’순종했습니다.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이유를 달지 않았습니다. 영광스런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은 실천하는 믿음을 가진 제자들과 자신의 나귀와 새끼를 기꺼이 주님을 섬기도록 내어놓은 이름 없는 성도에 의하여 착실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입버릇처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싶다고들 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님의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살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의 구원의 승리의 행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제자들이 어떻게 장식했습니까?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 새끼 위에 얹었고, 군중들도 걷옷을 벗어서 가시는 길에 펴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이 빨간 카펫을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멋진 군악대의 행렬도 없었습니다. 평범한 옷이요, 종려나무 가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아십니다. 그들은 주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로 고백했고 기뻐햇습니다. 소박한 믿음 그대로를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세상 임금들처럼 화려 하시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동행할 때에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들이 부족해도, 불완전해도 좋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드리면 됩니다. 자녀들이 어머니날에 미숙하지만 손수 그린 카드를 받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주님은 우리들의 작은 정성을 기뻐하십니다. 종려주일에 우리들의 작은 정성들을 주님께 드리며,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신 예수님(누가복음 19:41-44)

41절에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셨다’는 말씀은 원어의 의미로 보면 ‘통곡하셨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가시면서 환호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뻐하시지 않고 소리내어 우셨을 까요? 우리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처럼 ‘평화의 도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강도의 굴혈처럼 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신 이유는
-그 도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말씀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역하는 도시 였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외형과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빠저버린 위선 때문에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이 당할 멸망을 미리 보시면서 우셨습니다(43,44)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일 슬퍼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아서 멸망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는 도시를 보시면서 주님은 통곡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이 도시를 보실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겠습니까? 내가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주님이 경고하셔도 못들은 체 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이 종려주일에 나와 내 가정을 보고, 이 도시에 대한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야 하겠습니다.

3.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12,1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처음 하신 일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도 있었던 일입니다(요한 2:12-16).
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지 않으면 안되셨을까요?
본문을 보면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이 타락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매하는 자들’이란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희생을 드리는 짐승, 나무, 기름 등을 파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돈 바꾸는 자들’이란 성전세를 내기 위하여 로마 화폐를 성전 세겔로 바꿔 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들의 약점, 선한 종교심을 이용해서 제사장들과 짜고서 폭리를 남기는 협잡꾼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 소리보다는 종교를 방자한 협잡꾼들의 목소리가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라고 질책하시면서 그들을 내어쫓으시고 상을 엎어 버리셨습니다. 종려주일은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할 것을 꼭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가 성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개혁할 것들은 개혁해야 하겠습니다. 이익 집단들의 소굴이 되거나 하나님을 빙자한 부도덕이 있으면 깨끗이 청소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전서 3장 16,17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4.병자들을 고치시고, 어린아이들의 찬송을 받으신 예수님(14-16).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이 하신 것만이 사명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고 구원의 능력을 경험해야 할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영육간에 상처난 부분들을 치유하시는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다른 성한 사람들 보다는 비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고, 와서도 매우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치료받기를 원하여 주님께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일생이 바뀌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것과 아이들이 찬양하는 것을 보고 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찬양의 정당성을 입증하셨습니다. 성전은 주님이 찬양을 받으시는 곳입니다. 오는 날 우리들의 심령이 주님의 전에 와서 주님의 권능으로 치유함을 받는 일은 우리들이 사모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우리 심령이 주님을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려 주일에 우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치유 받아야 할 일 이 있으면,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죄책감, 허무, 좌절, 실망, 근심으로 인한 상처들, 육신의 아픔들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갑시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야’이심을 마음껏 외치며 간증하는 종려주일이 되십시다.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서 종려주일을 통해서 주신 신앙적인 교훈들은
-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 있는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 교회와 우리들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 영육간에 치유 받아 주님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함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찬양의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뜻 깊은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결단이 이 종려주일 아침에 여러분 각자와 가정과 열린 문 교회 위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37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참고: 마태복음 6:19-34
38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참고: 골로새서 3:12-17
39 영생의 비결 참고: 요한복음 6:48-59
40 성경은 어떤 책인가? 참고: 디모데 후서 3:15-17
41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1) 참고: 에베소서 3:7-13
42 신앙 성장을 위한 세 가지 요소 참고: 요한1서 1:1-10
44 반석위에 세운 교회 참고: 마태복음 16:13-20
45 큰 빛 안에 거하는 공동체 참고: 요한1서 2:7-11
47 어떻게 부모를 섬길 것인가? 참고: 창세기 9:20-27
48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참고: 마태 21:1-17
49 지혜를 얻으려면 참고: 잠언 2:1-6
50 주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참고: 고린도 전서 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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