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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에베소서 4장 3-6절 |
5,4,3,2,1한 후에 발사하는 명령과 함께 육중한 로켓이 하늘로 오른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원통형의 로켓이 하늘로 올라가서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가지의 부품들이 각기 기능을 발휘 할 뿐만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서 힘이 모아져야 할 것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윗덴벍 성당의 문에 95개조항의 신앙 토론 주제를 마틴 루터가 걸었습니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오직 한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성서의 말씀을 만천하에 전했습니다. 교황도, 성자도, 자신의 공덕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오직 성서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으로 구원 얻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하신 말씀은 2천 여년 전에 지금 터키지방에 있었던 번화한 도시에 세워진 에베소 교회에게 보내신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 중에 일부입니다. 그 교회를 구성한 성도들은 유대인들도 있고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도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에서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도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 2:14-16).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 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전해서 구원 얻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사명인데 그렇게 되려면, 제자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성 삼위 하나님 안에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지 못하면 우리들이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4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6절 말씀을 보면 왜 우리가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짧은 본문 가운데 ‘하나’라는 말씀이 7번나옵니다. 세 번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네 번은 심위 일체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는 지금까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힘을 모아온 교회임을 여러 성도님들도 잘 아실 줄 압니다. 지금 당면한 중대한 일들을 감당할 때도 일치 단결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1.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도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한 몸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6장 15절을 보면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몸에는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얼굴도 있고 내장도 있습니다. 온 몸의 모든 구조가 다 연합해서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서 삽니다. 손이 발더러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 9절을 보십시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리라.”
왜 성령님을 주셨습니까?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하심이라.”(고전 12: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머리와 몸의 관계처럼 서로 나누일 수 없고 온전히 하나로 묶여진 유기체로서 “한 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어 죄 용서함을 받고 성령님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는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한 성령님”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교제하는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고 이 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2. 우리는 한 소망, 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목표를 이루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4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심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대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제자 삼는’ 신자,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 그런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가서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더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변화 때문에 우리들의 목표가 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우리에게 주신 한 목표인 ‘복음 전파 운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큰 사명을 이루려면 ‘하나’됨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한 주님’을 고백합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지 못함을 압니다. 이 주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믿음도 하나입니다. 우리들이 다 ‘한 세례’를 받습니다. 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어 사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이 모여서 ‘한 성찬’을 받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6절 이하를 읽을 때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우리들이 성찬식 때 잔과 떡을 나눕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은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한 몸이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이 주신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자는 결단의 모습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한 하나님이 아닙니까? 6절 말씀을 쉬운 번역을 한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천지 만물의 아버지시며, 만유 위에 게시고, 만유를 통일하여 일하시고, 만유안에 계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충분히 표현되어지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우리는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3절 말씀을 한 분의 성부는 한 가족을 지으셨습니다. 한 주이신 예수님은 한 믿음과 한 소망과 한 세례를 주셨습니다. 또한 한 성령님은 우리들을 모아서 한 몸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족들도 신령한 의미에서는 나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인 것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을 쪼갤 수 없듯이 교회도 쪼개어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상의 교회들은 역사상 수많은 분열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 바울 선생님은 아주 이상한 주장을 하시는 것 같이 보입니다.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임을 묘사했습니다.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교회는 파괴될 수 없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분은 하나됨을 지키고 보존하라고 우리들에게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즉 교회의 하나됨을 보존한 다는 것은 그 하나됨이 눈에 보이도록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공동체임을 증거 해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세 자녀가 삽니다. 분명히 아내와 남편입니다. 같은 혈통을 받은 자녀들입니다. 이 관계는 무엇으로도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혈연이 같다고 자동적으로 한 마음 한뜻을 가진 행복한 가정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상호간에 깊은 관심과 상호 배려, 봉사와 인내가 없이는 한 마음 한뜻을 이룬 가정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이요, 한 교회에 나와 같이 앉아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같은 목적, 같은 마음을 가진 공동체가 자연히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됨을 힘써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로, 무엇보다도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행전 1,2장의 내용을 잘 아시지요? “한 마음 한뜻이 되어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구절이 있음도 잘 아실 것입니다. 모이기도 힘썼고, 전파하기도 힘썼고, 나누기도 힘썼습니다.
둘째로, 함께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 25절을 기억하시지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면 서고 격려해야 하겠습니다. 힘을 모으고 서로에게 잘 됨을 위한 관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배나, 성도의 교제나 성서 공부반등에 힘써 모여야 한 마음 한 뜻을 키워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셋째로, 평안을 해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교만, 죄, 허영, 비난, 원망, 질투, 싸움의 요소들은 언제나 버려야 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을 갉아먹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스스로 회개하고, 서로간에 화해함으로 하나됨을 건설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현재 분사로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계속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 정, 의 그리고 우리들의 힘을 다 합하는 전인적인 노력을 경주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남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얻으셨습니까?
한 성령님을 믿어 한 몸의 많은 지체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한 하나님으로 인하여 한 가족이 되셨지요?
우리들은 한 소망 즉 ‘대 계명’ 과 ‘대 사명’을 이루는 목적을 가지고 모이지 않았습니까?
그러하시다면!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계속 힘써 전진하십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들의 모든 힘과 마음을 모을 때가 아닙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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