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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삽시다(2)
참고: 에베소서 4장 25-32절

“한 번 말을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아 볼 수 있을 때까지 말을 억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언제나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과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 할 것을 요구하실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의 자연적인 생활 속에 친근한 말이나 유머의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의 말씀에도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말의 위험성에 대해서 오늘 묵상할 말씀을 비롯해서 많이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돌이켜 참된 것을 말하라.
화를 내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수고하며 주는 자가 되라는 요지의 말씀으로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29절부터 32절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더러운 말을 하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

모든 죄는 먼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죄가 제일 먼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은 말입니다. 말은 그 당사자의 사고와 감정의 윤곽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더러운‘이라는 단어는 보통 썩은 나무나 과일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더러운 말이 부정직한 말이거나 불친절한 말이거나 혹은 추잡한 말이거나 간에, 이런 말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인 말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에 사용하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건설적으로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이래야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더러운 말 가운데는 진실치 못한 말이 포함됩니다. 불경스런 언어도 포함 됩니다. 불손한 말도 포함됩니다. 무익한 말도 포함됩니다. 이 무익하다는 단어의 원래의 뜻은 도덕적으로 무용하고 아무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야고보 장로님은 야고보서 3장에서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기록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 라 능히 온 몸도 굴레를 씨우리라.”고 하시면서 혀를 배의 방향를 잡는 키로 말씀하셨고, 혀는 곧 불이요 불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고 경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데 이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한 샘물이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는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부명코 새로운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을 함부로 함으로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내는 대신에 말로서 남을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 주며, 힘을 돋아주는 덕담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 21장 18절을 보면,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힘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30절을 보십시오. 우리들이 천박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성령을 근심”시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거룩하신 영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지 못한 것에 의해서 근심을 하십니다. 성령님을 “한 성령”(엡 4:4)이십니다. 말을 막하면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파괴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교회의 일치가 어려워지는 이면에는 덕을 세우지 못하는 무익한 말이나 험담들이 돌 때가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 그런 전화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맞장구 하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막아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날은 우리가 죄의 세력으로 완전히 자유로와 질 완성된 그날까지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온 몸이 내 것이 아닙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된 것입니다. 나의 언어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 기간을 성화의 단계라고 합니다. 즉 거룩함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화 되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치한 농담이나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이 볼 때 덕이 되지 않는 언행을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둘째로,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버려야합니다(30).

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기에 여섯 가지의 좋지 못한 태도와 행위가 있습니다.

악독은 날카로운 마음과 예리한 혀를 가진 자의 특징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악독이라는 단어를 “남과 화합하려고 하지 않는 음험하고 노를 잘 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노함과 분냄은 분명히 유사한 단어이지만, 노함은 감정적인 것이 강조 된 것이고 분냄은 보다 내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내 외적으로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떠드는 것은 흥분한 사람들이 소리를 돋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는 것을 뜻하는 반며, 훼방은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은밀히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의는 남에게 해를 입히려고 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데 변화가 없어요. 의로운 새 옷을 입지 않고 옛 누더기를 입고 삽니다. 예수님의 천국 잔치에 대한 예화의 말씀가운데, 초청은 되었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났다는 내용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이상의 여섯 가지는 육으로 심는 것입니다. 육으로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자신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어지럽게 됩니다. 그 빛을 잃게 됩니다. 싸움하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회에 누가 전도되어 오겠습니까?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 성도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훼방하는 것, 모든 악의를 회개하고 벗어버리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셋째로,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31,32).

서로 용납하기 위해서는 서로 인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원어로 크레스토스 라고 하는데 우리들이 그리스도하고 하는 말을 그리스말로는 크리스토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성향을 쉽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서로 우의 있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즉 궁휼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자비로우심같이 서로간에 자비롭게 용납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 받는”자 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1만 달란트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백원 안 되는 돈 빚진 자에게 모질게 굴어서야 되겠습니까?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 성도 여러분!
서로 인자해집시다. 서로 불쌍히 여기는 교회가 됩시다. 서로 용서하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십시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더러운 말, 험담, 불결한 말, 상처 내는 말을 삼가고, 오히려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 함께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영광 받으시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리고, 서로 인자하게,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할 때 교회는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대단한 행사를 계획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한 조용한 회개와 행동의 변화가 있으면 주님의 은총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151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 참고: 에베소서 4장 1-6절
152 그리스도인의 인생목표. 참고: 빌립보서 1:19-26
153 부르심의 한 소망. 참고: 에베소서 4장 3-6절
154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참고: 빌립보서 1:27-30
155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은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156 감사와 증거 하는 생활. 참고: 마가복음 1장 35-45절
157 사역자를 세우기 위하여. 참고: 에베소서 4장 7-12절
158 이렇게 삽시다(2) 참고: 에베소서 4장 25-32절
159 목사와 교사의 사역 핵심 참고: 에베소서 4:7-12
160 목사의 기본사역 참고: 에베소서 4장 12-16절
161 성도의 연합이 이루어지려면. 참고: 에베소서 4장 13-16
162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참고: 열왕기 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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