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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증인이 되리라
참고: 사도행전 1: 6-11
교회 설립 5주년을 마지하신 본 교회 성도님들과 그동안 수고하신 장로님들, 제직들 그리고 목사님내외분께 한인 총회를 대신해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저의 작은 정성을 기억하고 칭찬해 주신 분들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해 전에 시카고에서 총회가 있을 때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제가 사진 몇 장 찍어드렸는데 목사님께서 나중에 말씀 하시기를 전문가가 찍은 것처럼 잘 나왔다고 크게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생에 20번 이상 칭찬을 듣지 못하고 산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본 교회를 존경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작은 목자의 삶’ 공부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본 교회와 제가 섬기던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는 C&MA 한인 총회 교회들 가운데 전 과정을 끝낸 교회입니다. 그 과정을 마친 분들이 새벽 기도회와 수요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의 말씀처럼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사역자로 세우는’ 같은 비전을 가지셨기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어떤 예배 프로그램을 해야 교회가 부흥하는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이 교회에 머물도록 해야 하는가? 어떤 싸이즈의 교회가 이상적인교회인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들은 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을 통해서 우리들이 추구해야할 성서적 교회 상을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시작된 첫 번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첫째로 주님이 주신 말씀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눈부신 활동을 기록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이 증거 되고 받아들여지는 곳곳마다 믿는 자들이 생기고 교회가 세워지는 사건들에 관한 책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사도들은 성령님의 도구요 동역자이였습니다. 사도 행전을 복음 전파의 행전이라고도 하는데,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입니다.

사도행전에 1장 1절에서는 “예수님이 행하시면 가르치신 것”입니다.
28장 31절에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라고도 했고 고린도 전서 15장 3,4절에서는 예수님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 된지 3일 만에 부활하심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 전파의 ‘대 사명’을 제자들이 수행하기 전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도들은 3년 정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에게 또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총 복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온전한 전파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 기다림이 필요할까요?
기다림은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인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꿈과 하나님의 나라를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일에 온통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이고 지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관심과 꿈이 바뀌기 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어도 그들의 주된 관심은 아직도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적인 관심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계를 복음화 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언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며 언제 주위나라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역에 대한 의식과 목표의 변화가 있어야 했습니다.

요사이 말로하면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어떻게 성공해서 명예와 권세를 얻을까? 어떻게 큰 교회가 되어 이름 내는가? 등의 욕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할 목표일까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의 관점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삶의 비전과 절대 가치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사역자의 비전은 내 뜻,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부터 철저히 포기해야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제자들은 ‘때와 시기’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지만 주님은 사명을 위한 ‘기다림’과 변화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의 그릇을 준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의 해석 지침이 됩니다. 우리들이 전할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목표’요, 복음의 궁극적 종착점은 “땅 끝”이며 복음의 ‘역사적 동력은 성령님’이시며 복음을 나르는 도구요 그릇은 “증인”들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은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주님이 주신 약속과 명령에 대한 바른 자세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림 가운데서 무엇을 했는지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모여서 전혀(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요사이 ‘큐티’나 ‘묵상’등이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초로 해서 나누고 기도하는 운동까지 가야지 그냥 개인적인 경건 생활로 그치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의 기도회의 모습을 좀 살펴보십시다. 부활의 증인의 공동체의 기도는 ‘단체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한 마음 한뜻’이 되어 기도하는 ‘합심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전심 기도’였습니다. ‘전혀’라는 말은 몰두함, 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서로 나누이고 기도하는 사람도 그 마음이 나눠지면 전심으로 기도 할 수 없겠지요.

2) 15절부터 26절을 보면 가롯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세웠습니다. 결원된 사도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사역임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깨닫게 되었습니까?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가운데성령님이 다윗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다고, 말씀에 입각한다고 아무나 사역자로 세웠습니까?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증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사도들과 잘 협력이 되지 않겠습니까?

새로 뽑힐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게 될 사람”입니다. 두 사람가운데 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공동체는 기도했습니다(24,25절). 추첨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선출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비 뽑는 과정 : 두 후보자의 이름을 나무 조각이나 가죽 헝겊에 써서 항아리에 넣고 흔들 때 제일 처음 튀어나오는 이름을 선택합니다.)
왜 12사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합니다(마 19:28 계 21:12). 이스라엘이 12지파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제 시작될 새 이스라엘도 열두 사도의 토대위에 세워져야 했습니다(엡 2:20 마16:18). 우리들은 한 몸의 많은 지체들입니다. 복음 전파역사에는 팀웍이 회복되어야 합니다.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고 성령으로 인도된 말씀에 의하여 일군을 세우되 목표를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을 세우기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세웠습니다.

셋째로, 능력을 받은 공동체였습니다.

성경에서 세례를 주다라는 말은 “물에 푹 잠그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행전 1장 5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 세례’는 어떤 사람이 물에 푹 잠기듯이 성령님께서 임재 하셔서 그 사람을 온전히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세례는 ‘일회적’이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면 능력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능력을 받아야 ‘땅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능력은 어떤 능력일까요? 다른 나라를 제압하는 폭력일까요? 임금의 추상같은 명령에 천군만마가 출동하는 능력일까요?
아닙니다.때리면 맞고, 가두면 갇히고, 묶으면 묶이고, 죽이면 죽는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에 의하여 권세 있는 복음의 역사가 로마와 땅 끝까지 성취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스데반을 죽음인 사울의 일생을 바꾼 능력입니다.
황금어장 사마리아를 뒤로 두고 광야로 이끌어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통해서 복음의 역사를 이룬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교회의 위기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역자들을 세워 극복하게 하신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가죽 세공업자였던 시몬의 집에 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베드로의 고정 관념을 버리고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을 주님께로 인도한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의 꿈을 실현하도록 하신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 전도를 할 수 있도록 방향을 돌리신 능력입니다.
결국 성령이 임하심으로 받는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 증거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어떤 일이라도 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고 잡아 가두는 자들에게 그냥 잡혀가는 능력입니다. 죽음과 생명의 위협이 있어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증인됨’을 포기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는 능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능력과는 정 반대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능력에 대해서 잘못 생각합니다. 힘 있고 큰 것을 상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왜 능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이 죽음의 자리에 이르도록 순종하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죽으심이 없으면 부활의 능력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 전파의 행전입니다.
이 일은 말씀을 기다리는 자들이 한다. 인간의 열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영에 의하여 사로잡히고 주님으로 물들여 져야한다.
성령의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팀웍이다. 기도도 일군을 세움도, 그리고 부활의 증인을 세우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 능력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교회 설립 5주년을 맞이하신 뉴마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나의 증인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나를 나의 꿈을 주님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않습니까?
서로 힘을 모아 기도하고 사역자를 세우며 성령의 그릇의 부분이 되고 되도록 하시는 팀웍 보다는 개인적 신앙의 차원에서 만족하시지는 않습니까?
정말 증인이 될 능력을 받으셨습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고: 갈라디아서 2:1-10
22 목적있는 섬김인가? 참고: 창세기 24:10-14
23 캡틴, 어메징 훼이스! 참고: 누가복음 7:1-10
24 중심에 진실 참고: 시편 51:6
25 사역의 확장을 위하여 참고: 사도행전 131-3
26 내 증인이 되리라 참고: 사도행전 1: 6-11
27 나를 생존케 하신 하나님 참고: 여호수아 14:1-15
28 살았으나 죽은 교회 참고: 요한 계시록 3:1-6
29 누구를 믿을까? 참고: 히브리서 11:1-7
31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참고: 요한복음 2:16-21
35 지혜로운 건축자 참고: 마태복음 7:24-27
36 감사와 전도 참고: 마가복음 1: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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