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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어메징 훼이스!
참고: 누가복음 7:1-10
“터키는 한국과 형제국이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기이한 것은 터키 사람들이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하여 독일로 가고 있다는 신문 기사도 읽었습니다.
왜 먼 나라 터키가 우리와 매우 친근 한가에 대하여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 2002년도에 고국에서 월드컵이 있을 때 터키와 우리나라가 게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국의 응원단들은 고국과 터키를 다 응원하는 기현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인정하듯이 우리는 매우 배타적인 민족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을 지칭할 때 양 놈, 중국 사람들을 지칭할 때 뙈 놈, 일본 사람들을 지칭할 때, 왜 놈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도, 터키 사람들도 서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6.25 동란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송 해 준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들의 옛 역사에서 찾기도 합니다. 옛날 고구려 시대에 우리민족은 이웃 돌골족과 좋은 관계를 갖고 살았는데 이 돌골 족이 외부 세력에 의해서 민족이 이동을 했는 데 그들이 멀리 터키까지 가서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뭔가 모르는
통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듯하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들도 매우 배타적입니다. 그들도 외세에 시달렸습니다. 주위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사마리아 인으로 태어 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그들을 점령하고 있는 로마 사람들을 매우 미워했습니다. 열심당이 있었는 데,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시몬이 바로 무력으로 로마를 몰아내려는 무장 단체 소속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로마 군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누가복음 7장 1-10절을 읽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계시던 시기 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곳을 예수님의 전도 사역의 본거지로 삼으셨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신 곳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곳입니다. 왕의 신하를 고치신 곳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2장1-10절에 기록된 대로 중풍 병자를 고치신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저주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3절을 보면 “화있을진저,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 까지 떨어질 것이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백부장이 3명 나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곁에서 지키던 백부장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4절을 보면 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보던 이 백부장이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10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있는 백부장의 집을 방문했던 사건이 나옵니다. 그분도 예수님을 믿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구원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 읽으신 본문 가운데 백부장은 가버나움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로마 군인 100명을 지휘하는 장교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비록 유대인과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 사람이었고, 군 장교였지만 그 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인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백부장의 집에는 매우 어려운 일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의 종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 백부장이 집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어떤 삶을 산 사람인가를 살펴 봄으로써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그의 종에 대한 관계가 어떠했습니까?

본문에 나온 종이란, 노예를 말합니다. 그의 집에서 일하는 종은 물건과 같은 대우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여러분, 남북 전쟁 이전에 흑인들이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소와 말 과 같은 단순 노동을 하는 정도의 취급을 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때 마다 적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인구의 약 반이 노예였습니다.

백부장은 자기집에서 노예로 사는 한 사람의 삶의 아픔과 죽음을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취급할 수 있도록 모진 훈련을 받은 백부장이요, 가장 취약 지역인 유대에 파병 된 장교지만 그의 마음에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의 부인이나 자녀가 아파서 예수님을 찾을 것이 아닙니다. 하찮은 종입니다. 그가 종의 생명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시도 기다림이 없이 유대인 장로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전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군인이기 전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지휘관이기 전에 한 생명을 매우 귀하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종과의 관계에서 까지도 지극한 사랑의 관계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에 대하여 저 사람들은 참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둘째로,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장로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도움을 간청했습니다. 여기서 매우 배타적이기 쉬운 유대 장로들이 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존경 받는 분이었음을 봅니다. 그는 압제자의 앞잡이이기 보다는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한 예가 4절에 장로들이 예수님께 간곡히 백부장의 종을 살려 달라고 탄원하면서 한 말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선생님께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창찬 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칭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백부장이 그냥 백성들의 민심을 얻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삶과 인격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품위와 종교적 전통과 가치를 깎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섬겨준 군 지휘관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저 사람들은 은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들은 저를 대항하고, 멸시하고 조롱해도 사랑으로 갚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들의 문화와 전통을 잘 이해하고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는 속 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로, 그의 예수님과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기다린 이유는 그의 종의 생명을 살리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심을 그는 분명히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 그는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대충 알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과기타 지역에서 행하신 기적들을 그는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직접 보았 든지, 아니면 부하들의 도시 동향을 통해서 들었던지 그는 주에 대하여 잘 알았습니다.그는 그 주님 이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이 예수님의 가버나움 도착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자기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 또한 그는 예수님 앞에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셨을 때에 그는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그는 “말씀만 하사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8절을 보면 그가 군인으로서 한 마디 말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만하셔도 종의 병이 낳을 줄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캡틴. ‘어메징 훼이드’로 잡았습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의 신분에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보수적인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지않으셨습니다. 그가 엘리트 로마 장교이기 때문에 놀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기이히 여기시면서 예수님을 쫓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이 하신 일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놀랐다는 기록은 누가복음 4장 36절(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5장 26절(중풍 병자), 9장 43절(귀신들린 소년을 고치셨을 때)에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그는 주님이 종을 살려주심으로 인하여 ‘어메징 그레이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에는 ‘어메징 훼이스’라는 칭찬도 받았습니다. 또한 사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을 여행 하실 때 한 이방 여인이 귀신 들린 자기의 딸을 고쳐 주시기를 구했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라고 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믿음의 소유자들을 기뻐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에는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신앙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믿는 것입니다.

- 우리들도 삶의 여정에서 도저히 뛰어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문제들이 잘 해결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평상시에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온 사람인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가족을, 이웃을, 종업원들을, 또는 보스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이 꽃피고 자라고, 그들의 삶의 위기들을 당할 때 어떠한 입장에 서 있었는가 입니다.
-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결코 품을 수 없는 사람들, 원수 지간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았는가를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백부장은 자기를 원수 시 하는 유대인의 차가운 눈초리를 사랑으로 갚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정말 날마다 주님을 더 알아갑니까?
-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주님께 가지고 갑니까? 아니면 내 생각대로 끌고 갑니까?
- 우리는 주님을 정말로 존경합니까? 우리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 그리고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어떤 경우가 올지라도 확신합니까?

백부장의 종은 나음을 받았습니다. 백부장의 큰 믿음을 보신 주심은 그 좋을 살려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보실 때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본문을 묵상하시면서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중심의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이 백부장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싶지 않으십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온 백부장과 같은 삶과 주님과의 관계처럼 되어 주님께로부터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고: 갈라디아서 2:1-10
22 목적있는 섬김인가? 참고: 창세기 24:10-14
23 캡틴, 어메징 훼이스! 참고: 누가복음 7:1-10
24 중심에 진실 참고: 시편 51:6
25 사역의 확장을 위하여 참고: 사도행전 131-3
26 내 증인이 되리라 참고: 사도행전 1: 6-11
27 나를 생존케 하신 하나님 참고: 여호수아 14:1-15
28 살았으나 죽은 교회 참고: 요한 계시록 3:1-6
29 누구를 믿을까? 참고: 히브리서 11:1-7
31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참고: 요한복음 2:16-21
35 지혜로운 건축자 참고: 마태복음 7:24-27
36 감사와 전도 참고: 마가복음 1: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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