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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서로 교통함을 믿습니다(사도신경 6)
사도행전 2:42-47

여러분이 다니신 교회가운데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는 교회가 있으실 것입니다. 어떤 교회입니까? 웅장한 건물이 있던 교회입니까? 유명한 설교자가 있으셨던 교회입니까? 그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중 8,9는 성도들 간에 나눈 값진 만남과 진지한 교제와 위로 그리고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준 교회일 것입니다. 만일 지금까지 그런 교회를 만나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는 본 교회에서 이런 교제가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미 읽으신 말씀 가운데 42절을 보면 죄 용서함을 받고 세례를 받아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서로 교제”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 몇 주일간 우리는 사도신경을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부분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원문을 직역한다면, “성도의 교통”이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영어로
된 사도신경에서는 “The communion of Saint”라고 번역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사귐은 성도 상호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성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 성도들의 삶에는 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1장 3절을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말 사도신경의 내용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강조해서 번역했습니다.

헬라 말로 ‘교통’한다는 말의 원어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이말은 문장의 구조에 따라서 여러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데서는 ‘교제’로, 다른 곳에서는 ‘교통한다’는 말로, 또는 ‘동참한다’든지 ‘참여한다’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전반적인 의미는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교제하고 협동하며 사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간 우리들이 예배시마다 외우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부분을 묵상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 넓히 여시고 은혜와 교훈의 말씀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째로, 이 신조는 성도 상호간에 교통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요한 1서 1장 7절에서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사귐이 있고”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혼자 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가정의 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들이 많이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빛 가운데 행하는 생활을 합니다. 빛 가운데 사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울러 ”또 네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명령을 삶에 실천하기를 힘씁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한 몸에 많은 지체”로 서로 지체끼리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고 사랑합니다.

우리들은 혼자 성경읽고 찬송하고 예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정성껏 예배 할 때 더 큰 은혜를 받는 경험을 많이 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방학 동안 가족들이 캠핑을 다녀 온 분들이 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캠프 화이어를 할 때 장작개비 하나로 하지 않습니다. 불도 안붙고 분위기도 쓸쓸할 것입니다. 나무를 얼기설기 놓고 붙이면 훨훨 타오릅니다.

성도간에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값진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내용이 탁월해야 합니다. 만남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이있을 수록 좋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 말씀을 잘 아시지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에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의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읽으신 사도 행전에도 서로 모이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함께 찬미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순 복음 선고교회도 주일예배, 새벽 기도회, 금요 기도회를 모입니다. 월 1회 구역 모임도 갖습니다. 그러나 모일 때 주 안에서 교제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로 전화로 이 메일로 또는 방문하여 서로 교제 합니다. 힘써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신조를 외우는 우리들이 기억할 것은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교통은 물론 성도들의 마음을 열고 갖는 뜻 깊은 교통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신조는 성도 상호간에 화평에 힘 써야 함을 강조합니다.

열심히 모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이되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모임의 내용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는 모이면 바울파니 게바파니 아볼로파니 심지어는 예수파니 하는 파당을 지었습니다. 성찬식 전에 가졌던 애찬도 끼리끼리 먹었습니다. 서로 분쟁하고 싸웠습니다. 우리들이 다 알고 있듯이, 한국 교회는 열심히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처럼 다툼이 많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확실한지 모르겠습니다만은 한국에 장로교만 100개 이상으로 갈라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 이하를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도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을 사람을 날마다 더 하시더라.” 성도간에 화평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전도를 하는데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로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들의 행실로 전도합니다. 말만이 아닌 삶이 따라야 합니다. 삶이 깨끗하고 진실하고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무엇일까요? 성도들의 교제의 생활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삶이 언행 일치하는가? 그들이 모여서 어떻게 사는가를 세상 사람들은 주시 합니다.

순 복음 선교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 공동체는 어떠합니까?
화평함과 한 방향을 추구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에 모임들마다 화평과 기쁨이 충만해서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해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 성도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에 자연히 나비와 벌이 날아오듯 신앙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옵니다.

“너 다니는 교회는 어떠냐?” 고 물으실 때, “야! 괴롭다. 묻지마!”라고하던지, “그저 그래”라고 대답하는 교회라고 대답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랑스럽게 “와,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자랑스러운 대답을 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 성도의 교제는 어떠합니까? 교회 분위기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고국에 있을 때 가정을 심방해 보면 ‘가화만사성’이라는 글이 걸려 있는 집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교화만사성’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인들 상호간에 화목하는 교회는 많은 열매를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느다.”는 고백을 할 때에는 “나는 이와 같은 교회생활을 믿고, 이런 화평한 교회가 되는 일에 힘을 모으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런 성도, 이런 교회가 되시기를 힘쓰시겠습니까?

셋째로, 이 신조는 성도 상호간에 교통은 서로 상부 상조해서 서로 돕고 사는 선한 이웃이되겠다는 고백입니다.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에 대하여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뜻은 ‘참여한다. ‘동참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서로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신앙적인 것 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음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었습니다. 이방인 교회로 잘 알려진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를 보냄으로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그외에도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이 기근가운데 궁핍한 소식을 듣고 나누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적으로도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들과 길에 버려진 영아들을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즉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로마서 12장 13절에는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공급’이라는 단어가 ‘코이노니아’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을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잇었느니라.” 조금 내려가서 13장 16절을 보면, “오직 선을 행하며, 서로 나누어주기를 잊지말라.”고 하셨습니다. ‘나누어준다’는 단어가 ‘코이노니아’입니다.

미국교회들 가운데서는 가정에서 다 쓰거나 안입게 된 옷들을 깨끗이 딱고 빨아서 교회로 가져오면, 큰 방에 차려놓고 동네사람들 가운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서 나누고, 교인들 가운데서도 서로 나누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쉘터나, 지역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찾아서 교회 성도들이 팀을 짜서 각종 봉사를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서 사회를 봉사함으로 ‘성도의 교통’을 경험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하여 복음 전파의 기회도 됩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는 “즐거워하는 자로 즐거워하고 우는자로 함께 울라.”고 하셨습니다. 공감하는 마음이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눔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억지로함이나 인색함으로 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공급받아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8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우리의 나눔에 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식은 성도의 교통의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예식입니다. 물론 이 예식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살을 찟기시고 피를 흘리신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성찬예식의 의미의 전부는 아닙니다. 위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시에 우리 성도들간에 신령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동참합니다. 원래는 한 떡과 한 잔을 가지고 나눕니다. 성찬식을 영어로는 “Holy Commun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거륵한 교제, 또는 교통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주님과 교통할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성도들과도 한 몸에 많은 지체로서의 교통을 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 승리와 고난에 서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물질적, 감정적, 지적인 면은 물론 신앙적인 면에서도 서로 유무상통할 수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서로 만나지 못할 때도 서로 주 안에서 교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도로 무시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4-21절 까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에베소서 6장 18-19절 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함으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저희 교회 성도들 간에서 이런 기도의 교통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고국은 물론 우리가 사는 미국과 이민 사회는 사실 고독한 사회로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로스엔젤스의 한인 사회는 노인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기술문명이 발달할 수록 반대로 사람들은 매우 고독해 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필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성도의 교통이 끊이지 않고 아름답게 지속되도록, 먼저 주님과의 교통이 잘 되는 생활은 물론 성도 상호간에도 아름다운 만남이 되도록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신조를 설명하여 말씀드리면서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성도 상호간에 교통이 끊긴 분은 않계십니까? 이유야 어떻튼 서로 관용하고 용서함으로 인하여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분이 먼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가서 교제의 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고독한 분이 계시면 다른 고독한 분이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다 보면 상대편은 물로 자신도 큰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 앞으로 성경 공부반이 생기시면 그런 그릅에 참여하십시오. 찬양대나 교회 학교 교사나 그외 여러가지로 봉사하는 가운데 성도의 아름다운 교통을 하게 됩니다.

혹시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교통이 끊어진 분은 안계십니까? 회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사람은 그 마음이 늘 고독합니다. 요한 1서 1장 3절을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신들의 사귐의 모임에 기쁨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쁨이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간에 그 기쁨을 나누고, 더 나아가서 그 끼쁨이 세상으로 번져 나가서 사도행전 2장 47절 말씀처럼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가는” 건강한 교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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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77 하나님이 주시는 복 아래 사는 방법 참고: 마태 복음5:1-6
178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 마태복음 5장 7-16절
179 새해, 새 결심 여호수아 3:1-6
180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강해 1) 스바냐 3:17
18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신경 2) 요한복음 3장 16절
18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사도신경 2-2). 베드로 전서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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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사도신경 5) 마태복음 16:18 골로새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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