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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 들어가는 말

어떤 젊은 목사님에게 “목사는 방이 세 게가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목사님 안방, 건너방, 사랑방이냐고 그래요. 아니라고 그랬더니 그러면 건너방 대신 마루방이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방 말고 목사님만이 꼭 필요한 다른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가르쳐 달라고 해요. 심방, 책방, 골방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제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선배 목사님들에게 저도 배운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심방, 골방, 책방이 목사님들에게는 꼭 있어야 합니다. 목회는 심방을 통해서 교인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며 사정을 살펴서 배려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위해서 골방의 기도가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간단없는 자기 성장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목회자가 계속 독서와 공부를 중단해서 자기 성장이 중단된다면 좋은 일군이 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따라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분들을 기억하시지요? 노아, 이사야,예레미야와 같은 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온갖 치열한 영적 싸움이, 뼈를 말리는 절망감으로 인한 탈진이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아픔이 늘 가시 옷을 입은 것처럼 달라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요 달릴 만한 승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열왕기 상 19장의 말씀을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북 왕국을 통치했던 19명의 왕들이 다 악한 왕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의 아버지 오므리와 아합은 극도로 우상숭배에 빠진 극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일에 열광적인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서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의 시대적 배경은 이처럼 열악한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 850명과 대결에서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2. 중심 되는 말
엘리야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이 싸움에 있어서 승리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것에는 추호의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자요, 또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의 대결에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옵소서, 내게 응답 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왕상 18:37).

“이에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서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38절) 그는 말씀의 사람임과 동시에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여 응답 받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부귀 영화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참 신이심과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우상 숭배자들이 알아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일군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감 없이 증거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우상들이 있습니다. 물질이 주는 쾌락이 행복의 전부인줄 알고 물질을 숭상하는 사람들, 쾌락이 행복의 전부인지 알고 부추기는 무리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적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영적 싸움에 임할 때,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과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엘리야의 상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아합 왕은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을 부인 이세벨에게 말했습니다. 이세벨은 즉시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네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는 왕후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통보를 받은 후의 엘리야의 모습은 갈멜산에서의 모습과 변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상반절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생명을 위하여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왜 갑자기 영적 싸움을 하지 않고 이런 결정을 한 채 도망가야 했을까요? 왜 능력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일까요? 자기 생명하나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긴 날들을 아합과 대항 했겠습니까? 좀더 다른 의미는 없을까요?
혹시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악한 우상숭배자의 손에 무참히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도망하지는 않았을까요? 자신이 유일하게 남은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자기가 죽으면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이 중단된다는 위기감 때문은 아닐까요?

엘리야는 갈멜산서의 영적 전투 후에 이스르엘로 내려가는 아합을 앞질러 달려갔습니다. 그 거리가 자그마치 50여 키로나 됩니다. 그 결과로 그는 탈진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또 다른 영적 전투를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싸우고 싸워도 끝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세벨의 힘이 미칠 수 있는 영역으로부터 약 120키로 미터 정도를 벗어난 유대 남단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더 하룻길 정도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엘리야처럼 탈진 상태를 경험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계속되는 큰 일들을 치루고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견디기 힘든 위기가 올 때 주저앉고 싶고 도망 치고 싶은 심정을 가지신 적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을 바쳐 주님을 사랑하고, 양 떼를 위해서 나의 가능성, 기회, 능력을 다 뒤로한 채 섬겼건만 그 결과는 이것인가? 내 심장을 다 바쳐 사랑하고 아낀 그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영적 싸움에 싸움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아 주저 앉고 싶을 때가 없지않습니다. 아니면 잠시 잘 되는 것 같다가, 끝없이 추락해서 부닥칠 바닥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고 남이 안보는 데서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연약해 질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을 브엘세바에 남겨 놓고 광야 길로 간 것처럼, 아무리 가까운 그 누구도 옆에 있는 것이 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안 나오고 푸념만 나올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자신의 사역과 중요성을 스스로 낮게 보고 별볼일 없는 나인데 뭐 꼭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괴로워 남몰래 눈물 흘릴 때가 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까지 가더라도,우리의 감정과 상황과 두려움과 걱정을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들을 다시 세우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돌보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탈진하여 광야의 로뎀 나무 밑에 누워 자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를 어루만져 주면서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천사가 마련한 하늘의 양식을 먹은 후 또 누었습니다. 그의 탈진 상태가 어떠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와서 어루만지면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꾸짖으시기 보다는 “어루만졌습니다! 그가 죽기를 구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언약한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좌절감입니다. 들으니 미국 목사님들 가운데는 사역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갖는 분들이 점차 많아진다고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좌절하고, 비관하고, 탈진되어 무능해지더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절망할 때일수록,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우리를 어루만져 주셔서 마음의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우리의 육적, 정서적,영적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지금 어떤 사역을 하기 보다는 가야 할 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날 분이 있었습니다. 재 충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탈진 상태에서 부르짖을 힘도 없는 우리의 상한 심령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를 더 쓸모 있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갈 길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산을 향한 지치지 않는 달음질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대면해 주십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목회자가 되는 분이나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천사가 준 양식과 물을 다시 먹은 엘리야가 40 주야를 달렸습니다.그가 도착한 곳이 어디입니까? 그의 영을 다시 새롭게 하고, 다시 한번 우뚝 일으켜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신 산, 하나님 임재의 표상인 구름과 불과 번개가 있었던 그 산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달려 그 산, 여호와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곳 굴에 들어가서 유했습니다.

그는 출애급기 19장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에게 나타나신 불과 연기와 지진과 나팔 소리로 천지가 진동하도록 임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기 원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9절과 14절에서 물으셨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굴에서 나가 여호와의 앞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 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지진, 불은 자연계의 큰 세력입니다. 경이와 놀라움과 두려움을 줍니다. 동시에 인간의 무력감을 갖게 합니다. 엘리야도 무서워서 동굴로 피한 것 같습니다. 후에 고요하고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섰을 때 또 다시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나의 경험, 관심, 성취와 열정으로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으로 하나님의 비전의 삶이 되도록 엘리야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걱정하는 것 보다 더 치밀하게 일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두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늘 결코 외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로서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셨습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 길을 돌이켜서 광야를 지나 다마스커스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를 기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난 후 엘리야는 480키로나 떨어진 다마스커스로 갈 수 있었습니다. 죽음도, 사역의 실패와 성공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분부하신 사람을 세워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위해 부름 받은 선지자 였습니다. 그나라는 망한 후에 회복되지 못할 나라였습니다. 선지자로서는 이왕이면 유대나라에서 일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사역에 열매는커녕 생명이 지척간에 없어질 위기를 맞고 살았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그가 일군을 세우는 일에는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는 그 일을 했습니다. 악한 왕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아가 죽을 때 까지 약 10 여년 동안 양육 사역에 전념했습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도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일했습니다(왕하 6장).

그가 역사에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같은 경이로운 메모리를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무브먼트의 파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복음 전파의 무브먼트를 이어나갈 일군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김 진태 목사님이 번역하신 “All for Jesus”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사역은 개인의 노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도도한 무브먼트가 되어 자신의 사후에도 끊임 없이 발전해 나간다. 그런가 하면 동일한 업적을 남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장에 잠간 명멸했던 별이었을 뿐인 분도 있다.한 인물은 무브먼트를 남겼고 다른 한 인물은 메모리만 남긴 그 차이점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세상이 깜짝 놀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는 특정한 계기를 만드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주님이 주신 대 사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대 계명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목회자가 되십시다.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얻고, 세우고, 준비시키고 배가 시키고 파송하는 대 사명을 이루는 교회를 목표로 합시다. 그런 목회자가 되십시다.

3. 맺는 말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다음 세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다 목회자는 아닐 지라도 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넓히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엘리야 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잡읍시다. 기도의 사람이 되이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보이는 일군이 되십시다. 그러나 나만이 이일을 하고 있다는 자만이나 착각은 버립시다. 우리의 사역은 영적 싸움을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합시다!
- 우리들이 의기소침해 지고, 사역에 활력이 없어지고 그냥 주저 앉고 싶은 때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탈진이 되어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셨으면 좋겠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육간의 필요를 이시고 채워 주십니다. 우리를 ‘터치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맙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감정에 의하여 살지 말고, 환경에 의하여 살지 말고 신실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받아 걸어도 뛰어도 피곤치 않은 일군이 되십시다. 주님을 대면하여 재 충전을 받읍시다. 사명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십시다. 우리에게 탈진과 위기가 오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함께 일할 일군을 세우는 일입니다. 혼자의 영향력으로만은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키우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인류 구속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을 얻고, 세우고, 준비시키고, 증식하는 사람으로 키워 파송하는 예수님의 무브먼트를 계승할 일군을 키우십시다. 바랍니다. 우리의 사역은 내가 성공안 목회자가 되느냐,실패한 목회자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군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믿습니까? 이것들을 기억하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9 다니엘의 삶이 주는 교훈 참고: 다니엘 6:1-9
10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1 빛으로, 소금으로 참고: 마태복음 5:13-16
12 뵈뢰아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참고: 사도행전 17:10-15
13 미스바로 모이라! 참고: 사무엘 상 7:1-17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참고: 이사야서 58:3-12
15 이렇게 싸웁시다! 참고: 사사기 1:1-7
16 작은 일의 날 참고: 스가랴 4:1-10
17 하나님의 의지 참고: 출애급기 31:1-11
18 내가 죽는 일 외에는 참고: 룻기 1:15-18
19 준비하고 사십니까? 참고: 마태복음 25:31-46
20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참고: 마태복음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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