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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참고: 마태복음 20:1-16
지방에 있지만 기독교 학교로 명문 고교인 경남 거창고등학교 강당 뒤에 붙은 직업 선택의 10계명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것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든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을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성도 여러분!
이 직업 선택의 10계명을 들으실 때 어떻게 느끼십니까?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다.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이 계명은 그 학교를 담당했던 한국 교육계의 탹월한 기독교 교육의 대가들이었던 교장 선생님 3명이 만든 것입니다.
고국이나 미국이나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하 된다고 생각해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마태복음 14-27장까지는 예수님의 일생가운데 ‘수난의 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상을 떠난 후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부터 3번 여행을 하셨습니다. 14-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일컬어 ‘도피의 반년’이라고 합니다. 18-27장 까지를 포기의 반년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북쪽 가버나움을 떠나셔서 유대와 베레아 지방을 오가시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에 3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 한번은 양력으로 10월경에 지키는 ‘초막절’에 다른 한번은 신구약 중간사에 나오는 유다 마카비 형제의 봉기로 약 100여년 동안 독립을 유지하고 성전을 정화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12월 경에 지키는 ‘수전절’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3월 말이나 4월 경에 지키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가셨습니다. 오늘 읽으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단강 건너편 베레아 지방을 떠나셔서 여리고와 베다니 마을을 지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주신 비유로는 최후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하여 돌아가시기 약 1주일 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나의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오른 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마태복음 20장 24절을 보면, 열 제자들이 두 형제에 대하여 분개했다고 기록하고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다투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으로 권면 하셨습니다.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몸 값으로 치러 주려도 왔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마태복음 20장 1-16절 말씀을 교독하시겠습니다.***

교독하신 본문 직전인 마태복음 19장 마지막 절에도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질문이 있습니다. 19장 27절에서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주님은 28, 2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 30절 말씀과 20장 16절 말씀과는 거의 비슷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는 누가 높으냐, 우리가 이만큼 봉사했으면 마땅히 지위나 보상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교훈적 비유의 말씀입니다.

첫째로, 이 비유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과 흥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한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과 그 당시 공정한 임금인 한 데나리온을 지불할 것을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보냈습니다. 이른 아침 뿐만 아니라, 아침 9시에 나가서도 일꾼들을 부르며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후 세시쯤에도 일꾼을 불렀고, 마지막에는 오후 5시에 나가서 보니 아직도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고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불러서 일을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임금을 지불하게 될 때 맨 뒤에 일하러 온 사람부터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한 데니리온 씩이나. 그런데 이 사실을 본 맨 처음부터 와서 일한 일꾼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는 데 그들도 또한 한 데나니온씩 받게 되자 불평이 생겼습니다. 주인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찌는 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수고 했는데 어떻게 우리들과 저들이 똑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들의 말을 듣고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들을 부당하게 대우한 것이 아니오. 당신을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나의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당신 눈에 거슬리오?”라고 대답했다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서 하나도 착취된 것이 없습니다. 그 다음날 준 것도 아닙니다, 즉 율법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불평한 일꾼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한 것이 사실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 사실이 잘 못되었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아침부터 일했다고 꼭 힘을 다해서 효과적으로 일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들은 물론 다른 경쟁자들보다 좋은 기회, 좋은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먼저 선발되었을 것입니다.
지지난 토요일 10시 경에 팔리세이드 팍 브로드 애비뉴로 진입하는 길에서부터 아직도 많은 형제들이 노동 시장에서 일거리를 기다리고 서성거리거나 몇 명씩 떼지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소수는 이미 일자리를 얻어서 떠났을 것입니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열망하는 눈초리를 볼 때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사도들은 특히 베드로는 주님의 사역에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얻어서 주님을 섬기며 열매를 거두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사두개 인이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도 일찍 쓰임을 받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감사는커녕, 하나님께 자신들의 의와 특권을 내세우며 다른 대우, 다른 입장에서 보아 줄 것을 요구하는 특권층의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종교적 품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도, 그의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하도록 부름 받은 일꾼들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른 아침 같은 때에 부름 받으신 줄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귀한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많이 종교적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님보다 내 의견으로 주님을 조정하고자 하기 쉽습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기도 생활도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테니 이렇게 해주셔야만 됩니다. 나는 다른 죄인과 다르니, 헌금을 이만큼 하니 이렇게 해 주셔야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 의, 내 노력, 내 경력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흥정하지 마십시다. 불러주신 것만도 감사해서 일하십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면 기뻐하십시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들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까지도 누가 높으냐는 문제를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천국잔치의 자리까지 이런 태도,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 내 의를 주장하는 태도를 가지고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공평하시며, 관대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첫 시간에 일한 사람에게 약속한 것은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관대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에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것은,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 경쟁 시대에 살면서 능력 있는 사람, 학력 있는 사람, 경력이 화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디나 이력서를 내놓으면 탐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뭐 그것이 꼭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첫눈에 쓰임 받을 만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 시장에서 누구를 제일 먼저 데리고 갈까요? 건강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경력 많은 사람이 아닐까요? 다른 비슷한 경쟁자들을 밀치고 자동차에 먼저 올라탄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을 보면, 오후 5시, 즉 조금 있으면 해가 지고 빈 손으로 부인과 자식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할 딱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왜 온 종일 하는 일 없이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렇게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일하고 싶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을 가지고 가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밭도, 자금도 없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참한 것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거나, 아니면 병약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포도 추수기는 일군이 딸리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용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금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시간은 공허한 좌절만을 안겨주는 매정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형편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일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뒤쳐진, 무시 당하고 무능하다고 낙인 찍힌 이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을 배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 씩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사랑의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늦게 부름 받은 일꾼은 물론 그와 연결된 사람들의 행복에 까지 관심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마지막 한 시간 전에 부름 받은 일꾼처럼, 정말로 주인의 배려와 관대한 사랑 때문에 부름 받았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하실 때에, “너희들이 부름 받을 때에 문벌 있는 자와 부한 자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뭐 남보다 특별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잘난 것 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의 말씀처럼 만물의 찌거기 같은 사람이요 죄인의 괴수가 아닙니까? 우리가 천국 일꾼 될만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이 몇 명 될까요? 디히트리히 본 훼퍼라는 신학자는 “부르심 자체가 은총이다”라고 했습니다.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톤은 주님의 사람이 된 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시간 전에 부름 받은 그 기쁨이 어떨까요?
상상치도 않았던 한 데나리온을 받았을 때의 심정을 어떨까요? 그 감격과 기쁨, 은혜에 대한 감사를 가지고 신앙 생활도 하고, 주님이 나라를 봉사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이 아닐까요?

셋째로, 우리들의 삶에 주시는 교훈을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약 한달 전에 있었던 교사 수련회 때에 제가 말씀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한 학교에서 교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원서를 낸 교사들 가운데 25년 된 화려한 경력의 교사가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된 교사가 지원을 했습니다. 교장은 3년 된 교사를 채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교장이 볼 때 25년 된 교사는 1년의 경험을 25년 동안 반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연륜은 많지만 교사로서 성숙과 발전을 계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만심이 많은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3년 된 교사는 매년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는 교사였습니다. 자신의 부족을 깊이 느끼고 성숙과 발전을 향하여 전진하는 교사였습니다. 누가 먼저 되고, 누가 나중 되었습니까?

물론, 교장의 선택에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시간이 일한 시간이 짧고, 아직도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마지막 한 시간일지라도 부르심을 기다리고 인내한 그 마음을 주인이 본 것과 같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 보이지 않지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나같이 무익한 종을 사랑하셔서 관대한 마음으로 부르심에 감사해서 기뻐 눈물 흘리며 일하는 일군에게 후히 베푸십니다. 늦게 부름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고자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일생에 주신 시간 만큼 힘써 감사해서 섬기는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러나 관대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예들을 보십시오.
기드온은 300용사로 미디안의 십만명 이상의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는 “나는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 가장 약하고 자기는 아버지 집에서도 장 어린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은 사사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윗은 어떠합니까? 형제들 막내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같을 때 그는 목장에서 목동일일 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 중에서 별로 내세울 만 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2주 전에 ‘야베스의 기도’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야베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의 이름은 ‘고통’ ‘슬픔’이란 뜻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그가 가진 유산이, 그의 가문이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다”다고 성경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땅 끝까지 전한 사도 중 사도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사를 보면, 털투리안이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삼위 일체설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신학자입니다. 그도 40이 넘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 구원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다고 했지만, 늦게 복음을 깨닫고 구원 받은 분들일지라도 낙심 할 것 없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믿고, 주님을 섬긴 분들에게만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늦었더라도 주님은 은혜의 풍성하시므로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성서에 나타난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저와 여러분을 깊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의 피 공로로 구원해 주시고, 주님의 동산에서 일할 자격도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상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어떠합니까? 혹시 어떤 특권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 흥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없습니까? 내가 오늘 누리는 행복, 기회, 재능이 다 내가 잘라서 하나님이 뽑으신 것으로 착각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기억하십시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내가 경쟁에 졌더라도, 내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누구의 눈에 들만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우리를 눈 여겨 보시고 우리를 일꾼 되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9 다니엘의 삶이 주는 교훈 참고: 다니엘 6:1-9
10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1 빛으로, 소금으로 참고: 마태복음 5:13-16
12 뵈뢰아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참고: 사도행전 17:10-15
13 미스바로 모이라! 참고: 사무엘 상 7:1-17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참고: 이사야서 58:3-12
15 이렇게 싸웁시다! 참고: 사사기 1:1-7
16 작은 일의 날 참고: 스가랴 4:1-10
17 하나님의 의지 참고: 출애급기 31:1-11
18 내가 죽는 일 외에는 참고: 룻기 1:15-18
19 준비하고 사십니까? 참고: 마태복음 25:31-46
20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참고: 마태복음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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