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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일 외에는
참고: 룻기 1:15-18
오래 전 제가고국에 있을 때 읽었던 기사가 기억 납니다.
한탄강 주위를 달리던 버스가 사고로 강에 추락했습니다. 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한 어린이 외에는 전원 몰사했습니다. 그 어린이의 어머니가 가라앉는 버스의 창을 깨고 아이는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은 죽었습니다. 자식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아끼는 모성애를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 6.25 사변을 만났습니다. 사변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6남매를 홀로 책임지셔야 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설교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또한 어머니의 눈물어린 헌신적 희생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부모님의 아낌 없으신 보살핌 속에 성장하셨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고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70년대 까지도 보리 고개가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지금부터 약 3100여년 전. 그러니까 가나안 정복이 끝나고 왕정시대가 오기 전 사사시대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 아침 묵상할 주인공들은 예수님의 조상들 중에 아주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두 여인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 아닌 모압 족속의 젊은 여인입니다. 그들은 그모스 신을 섬기는 나라인데, 그들의 제사에는 어린아이들을 불살라 바치는 잔인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여인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이분의 이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룻입니다.

사시기와 사무엘 상에는 많은 전쟁이 기록되어 있는 데 그 중간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선한 이야기기 기록되어 있음은 감사한 일이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흉년이 들어 이방 나라인 모압으로 이민을 떠남.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표준 새 번역 개정판) 1절에 임시로 살려고 고향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10여년 사이에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결혼시킨 두 아들 기룐과 말론도 자식들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의 처지와 형편이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그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이 “이게 정말 나오미인가?”라고 말할 정도로 몰라보게 변한 것 같습니다. “나는 가득친 채로 이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텅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즉 실패한 지난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어느날 세 여인만 집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 때 두 자부도 함께 가고자 따라 나섭니다.
그 당시 풍속에 결혼했으나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으면 죽은 아들의 대를 잇기 위해서 남동생이 결혼해 주어서 자식을 낳고 대를 이어주던 때였습니다.
나오미도 나이 많아 결혼하기도 어렵고, 더더군다나 아이를 낳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들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친정으로 돌아가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들이 함께 가고자 하는 이스라엘을 아주 다른 문화권이었습니다. 관습이 다릅니다. 혹시 멸시와 천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것입니다.나오미는 그들이 새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하면서 작별을 고하자 큰소리를 내면서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9). 그리고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따라 나섰습니다.아마도 요단 강 근처까지 온 것 갔습니다. 나오미가 다시 간곡히 권면 했습니다.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며느리 중 오르바는 마침내 시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바짝 따랐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다시 한번 “네 동서처럼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권면하자 조금 전에 읽으신 본문의 말씀으로 시어머니에게 답변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행한 두 여인 나오미와 룻이 연고지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는 보리 추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인간적으로 보면 나오미와 룻의 가정은 고독한 가정, 불우한 가정, 눈물을 많이 흘릴 수 밖에 없는 가정이요, 또한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 보면 보통 가정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오미의 말을 살펴 봅시다. “딸들아 네 부모에게 돌아가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권고했습니다.
자기 생각 보다는 며느리들의 장래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로 하여금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이 나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고 해도 받겠습니다.”

며느리 룻은 자기의 입장과 행복보다는 시어머니를 위해서 희생 하려고 합니다. 과부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단강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고부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고부간도 있는데 어떻게 나오미와 룻과 같은 고부간의 정이 있을수 있었겠습니까?
나오미가 좋은 시어머니이기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룻이 좋은 며느리이기에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둘 다일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순서를 매긴다면 시어머니 나오미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나오미와 같은 시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며느리 되신 분들은 룻과 같은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오미가 룻을 아꼈습니다. 그의 장래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반면에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자기 어머니 못지않게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늙은 시어머니의 고독한 삶을 돌보아 주기를 결심하고 어떤 희생이라도 다 감수 하고자 했습니다.

둘째로 룻이 이렇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은 데는 애틋한 사랑이나 인정 이상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결단이 있었습니다.

16절의 말씀처럼, 룻은 어머니를 떠나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룻은 어머님이 가시는 곳, 머무시는 곳에 가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책임이요, 지켜야 할 의리였기에 저버리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가정의 달이 되면,효부상을 받는 분들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많은 분들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 명의 자녀와 동생들, 그리고 시부모를 남기도 세상을 떠났는데,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 가지 아니하고 시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시동생들을 위해서 일생을 희생하여 가문을 일군 내용들입니다. 이런 사연을 읽을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룻이 시어머니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어머님이 목숨을 거두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혼은 부부 일신을 말합니다.
한 마음, 한 뜻,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남편은 부모를 봉양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만일 남편이 죽으면, 며느리가 남편의 몫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룻은 지기 힘든 책임,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인간은 의리를 지킬 때 존경 받는 사람이 됩니다. 룻의 중심에는 이런 의리 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룻은 어머니를 결코 떠날 수 없었습니다.

셋째로,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이 이런 관계를 갖게 된 데에는 또 다른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룻의 고백을 잘 들어 보십시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이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하나님 안에서 맺고 있는 것입니다.
모압 백성은 원래 그모스 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룻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숭배를 그런 문화권에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룻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그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맹세하는 신앙인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룻이 시집와서 나오미에게 전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을 잃었지만, 며느리 룻의 마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확실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고부간에 신앙으로 뭉쳤습니다.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집오셔서 신앙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며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믿는 가정에 시집와서 신앙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저는 “교회에 갈 마음이 안 생깁니다. 특별히 시어머니 다니시는 교회에는 안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반대로 예수 믿는 며느리가 시집을 왔습니다. 시어머니가 전도를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를 보면 기독교로 개종할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 여러 시어머님들이여! 며느리에게 전도하실 수 있습니까?
* 며느리 되신 여러분! 시어머니를 전도 하실 수 있습니까?
* 믿는 아내 되는 여러분!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실 수 있습니까?
* 믿는 남편 여러분! 믿지 않는 아내를 전도하실 수 있습니까”
* 믿는 자녀 여러분!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전도하실 수 있습니까?

전도할 만큼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십니까? 감화 감동 받을 만큼 신앙 생활을 바로 합니까? 참 신앙 생활은 가족을 전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고. 말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주님께로 들은 바를 행하라”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낸 '사람이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통계를 보면, 85% 보고 배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라는 말은 옳습니다. 말로만이 신앙이 아니라 행해지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나오미와 룻은 불행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고독한 가정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다윗의 혈통을 만들어 가고 예수님의 계보를 형성하는 조상의 가문이 되었습니까?
이해와 사랑, 신의, 그리고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 어머니 주일에 우리 가정은 어떠합니까?
나오미와 룻의 가정처럼 사랑의 가정, 의리의 가정, 그리고 하나님을의지하고 따르는 신앙의 가정입니까?
사랑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져 주는 것입니다. 상대편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이런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저는 여러 성도님들의 가정이 나오미와 룻처럼 인간의 기대 이상의 복을 넘치도록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윗의 가문을 이루고 예수님이 이 가문의 혈통에서 나신 것처럼, 여러 성도님들의 가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될 후손들이 많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9 다니엘의 삶이 주는 교훈 참고: 다니엘 6:1-9
10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참고: 열왕기 상 19:15-18
11 빛으로, 소금으로 참고: 마태복음 5:13-16
12 뵈뢰아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참고: 사도행전 17:10-15
13 미스바로 모이라! 참고: 사무엘 상 7:1-17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참고: 이사야서 58:3-12
15 이렇게 싸웁시다! 참고: 사사기 1:1-7
16 작은 일의 날 참고: 스가랴 4:1-10
17 하나님의 의지 참고: 출애급기 31:1-11
18 내가 죽는 일 외에는 참고: 룻기 1:15-18
19 준비하고 사십니까? 참고: 마태복음 25:31-46
20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참고: 마태복음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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