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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자 (2003년 7월 28일)
로마서 12:2
얼마 전에 있었던 고국 철도 노조의 파업 구호는 “ 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였습니다. 생각해 볼수록 이상한 것은 철도운행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철도를 멈추면 결과적으로는 자기의 일터를 잃게 되는 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줌으로서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지, 파업 자체로 세상을 바꾸는 숭고한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에 교사들이 가르치는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니 “학교 문을 닫아 세상을 바꾸자”라고 할 수 있을까? 공무원들이 임금이 적으니 “관공서를 닫아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 수 있을까?

일명 ‘아르헨티나 병’이라는 사회적 병이 있다고 합니다. 일 안하고 권리만 요구하는 사회적 바이러스 때문에 오는 사회적 질병을 의미합니다. 가능한 한 노동력을 적게 제공하고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경제 원칙에 의하면 꼭 나쁘다고 꼬집을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이것이 집단 이기주의를 충족하기 위하여 상대편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 양식이 된다면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60여년 전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도밍고 페론이 정권을 잡은 후 현재 연 국민 소득 3,500달라의 중 하위권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미래는 상호 의존적인 삶의 방식을 인식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작든 크던 우리는 공동체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동은 독자적으로 끝나지 않고 수 많은 고리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삶의 방식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약 한달 전에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면서 뉴스를 들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있는 ‘휘닉스’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카페는 실내에 책상 4개 그리고 밖에 3개가 있는 아주 작은 곳이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 카페는 재활단체에서 경영하는데 그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모두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장애자들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종업원들의 일손은 뜨고, 돈을 받을 때 눈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어색함이 있지만 자립해서 사는 것을 배우고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다니엘 마이클이라는 젊은이입니다.

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닐 때부터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일해 온 결과 미국 여러 곳에서 이런 카페를 개업했다고 합니다. 이런 분이야 말로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애자들을 훈련해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과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는 바람직한 방식입니다.
성경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누가복음 6장 31절) 것입니다. 이것이 생의 황금률입니다.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면 그 파장은 전인류의 복지에 까지 미칠 것입니다. 주는 것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남겨 줍니다.

요사이 ‘테레사 요법’이라는 말이 나돕니다. 테레사 처럼 남에게 주고 섬기는 생활을 하면 심신이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머더 테레사는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내가 그분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것만을, 나의 필요만을, 나의 욕구만을 채우고자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투쟁은 자연히 폭력을 유발하게 됩니다. 파괴적인 행동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간디는 “이 세상이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렇게 변해라” 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먼저 스스로 움직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자연인에게는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삶의 목표입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하며,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거부하는 타락한 영을 소유한 우리가 어떻게 남에 대하여 배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연인인 인간으로 바람직한 사회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강조하는 말씀 처럼 ‘새 사람’이 되어야 ‘새 사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새 피조물이 되고 이들에 의해서 바람직한 사회로 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성서는 말씀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의 말씀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대속의 제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사역에 저와 여러 동역자님들을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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