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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못본 국군 전사자 유해
한 번도 못본 국군 전사자 유해 송환식을 보면서
 
   2023년7월 26일 하와이 히캄 공군 기지에서 4 대의 F35 전투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공중의 주요소라고 일컬어지는 시그너스기가 서울 비앵장에 도착했다. 이륙 이전에 히캄 공항에서는 인도 태평양 해군 사령관을 포함한 많은 군 고위 인사가 엄숙하게그 이전에 유해 인수식 거행였다. 한국을 대표해서는 국방무 차관이 유해 환송을 위해서 참석하였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들은 울산 상공을 통과하여 서울 공항에 70년 만에 북한에서6.25 사변에서 전사한 한국 참전 용사 7분의 유해를 고국의 모시고 왔다. 지금도 미국은 계속해서 북한 땅에서 전사한 군인들 가운데 전사하신 분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하여 힘쓴다고 한다. 그 결과로 발굴된 유해를 정밀한 조사를 통하여 한국 군인임을 확인하고 보낸 것이다. 우리 남한에서도 유해 발국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7월26일 밤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7 명의 영웅들을 맞기한 기념식이 공항에서 있었다.  대통령, 국방장과 군 요직자들과 미군 장성들이 비행기 앞에 도열하여 전사자의 유해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군인들이 태극기가 덮인 함을 들고 내려오자 대통령을 비롯하여 영웅들에게 거수 경례를 한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이 거수 경계를 했다. 이어 나팔병의 연주로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21발의 예포가 하늘을 울렸다. 영웅들의 유해든 병사들 가운데 해군 제목을 입으신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해군 상사 한 분이 이 눈에 들어띄었다. 그 분은 송환된 7 영웅 가운데서 유전자 감식을 통하여 유일하게 가족을 찾아 73년 만에 유가족의 품에 안긴 최일락 일병(당시 19세)의 조카가 되시는 분이 현재 해군 상사이신데, 하와이로 가셔서 삼촌의 유해를 직접 들고 온 것이다. 고 최일락 일병은 울산에서 출생하셨고, 전쟁이 나자 자원하여 군에 입대하였다. 미 7사단에 배속되어  카투사 소속으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전하셨고, 함경북도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과 교전 중 전사(1950년 12월) 하셨다. 일병님의 형 최상락(21) 하사는 동생이 전사하기네 달 전인 1950년 8월 영덕-포항 전투에서 전했다.  송환되어 도열한 최일락 일병님의 나이가 많이드신 동생이 눈물을 머금고 형님께 드리는 글을 읽은 후에 태극기가 덮인 함 위에 놓았다. 이어서 윤 대통령께서 나와 참전 훈장을 편지 위에 놓았다. 그 후에 영웅들의 함을 든 군인들이 그 분들이 안장 안장 될 현충원으로 향할 버스로 갈 때에 대통령과 군 요직 인사들이 뒤 따라 갔고, 버스가 떠나자 거수 경례를 하였다. 영상 화면에는 “우리는 결고 나라를 지킨 영웅들을 잊지 않는다!” 라는 글자가 선명히 빛났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유해를 못 찾은 전사자 수 13만 여명가운데서 1만1.313 전사자의 유해를 찼았다고 한다. 매년 미국과 한국 발굴팀이 찾아내는 숫자는 300-500 분 정도라고 하니 모든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와이 히캄 공항에서 가진 송환식에 참석했던, 아퀼리오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고 최일 식 일병의 유해를 인도 받기 위하여 미국에 와서 참석한 해군 상사이신 조카에게 “평생동안 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라” 고 격려했다고 한다.
 
                                                                                                    (2023.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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