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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넘어서 (2002년 11월 25일)
이름으로나마 신(God)이 되고 싶은 5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월남 참전 용사였던 챨스 헤페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성을 God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I am who I am’으로 바꾸었고 법원의 허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는 “나의 정식 이름은 ‘I am’이고 성은 ‘Who I am’이라며 참전 용사 헤페이는 죽었다.”고 밝혔다고 했습니다. ‘후아이엠’은 얼마 전 자기 집 뒷마당에 찰스 헤페이의 묘비를 세웠습니다. 이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미국을 경악하게 한 연쇄 저격범이 경찰과 전화 할 때에 “Call me God’이라고 했습니다. 13세 소년이 총격으로 숨진 매릴랜드의 중학교 근처에서 발견된 경찰을 조롱하는 메시지에서도 ‘친애하는 경찰관, 나는 하나님이야’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잡힌 죤 무하마드는 결코 신이 아닌 절망으로 뒤틀린 한 인간이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며칠 전 고국을 경악하게 한 한 초등학생의 자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일기장에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학교화 학원만을 오가며 공부 스트레스에 짓눌려 사는 것을 괴로워하는 글들을 일기장에 자주 기록했다고 합니다. 친구와의 채팅에서 ‘불행’이라는 ID를 사용했을 정도로 공부에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나이에 목매달아 자살을 했을까? 바로 전날 신문에는 서울 풍문 여고 졸업반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며 돼지 대가리와 각종 제물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는 장면을 찍어서 낸 놀라운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돼지 머리 앞에서 입시를 앞두고 머리를 조아리며 불안을 해소하려는 딱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성을 잃고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신격화 한 사람, 절망으로 허물어진 삶을 가지고 사회를 혼란에 몰아놓고 생명을 파괴함을 즐기며 법망을 피하고 있음에 신으로 착각한 사람, 공부나 성공이 신처럼 된 사회에서 가엾게 희생된 초등학생, 돼지 머리를 행운을 비는 여고생들…… .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의 한계와 미래의 불확실성의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선 나약한 인간의 초라한 모습입니다.

1855년 11월 11일은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42세로 작고한 날입니다. 우리는 그를 ‘불안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불안과 함께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떠받치는 개념은 절망입니다. 그는 자기 상실의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는 불안은 ‘죄에 대응하는 심리적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죄로 인한 인간 불안은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 할 때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제가 살고있는 L.A 지역의 동포사회는 자살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미국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상 낙원 같은 미국에 와서 살아도 인간 존재의 불안이 그대로 도사리고 있음을 봅니다. 10대의 마약, 성적인 문제, 도박, 사기의 늪에 빠져서 죽음의 길을 택하는 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소흘하게 다루는 사생관의 빈곤은 동포들이 직면한 절박한 문제인 듯 합니다.

생각하는 계절, 감사의 계절인 이 가을에 명예와 성공이, 쾌락과 권력이 신이 아님을 바르게 깨우쳐 주는 우리들의 사역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신이 되어도, 다른 인간도 물질도 신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들을 속이는 우상들입니다. 그것들을 따르면 그 결과는 불안과 절망이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절대화 할 때 인간은 절대적으로 불행해지고 절망하며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 주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출애급기 20:3)고 하셨습니다. 이 첫 계명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얼마나 불행했는가를 구약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 11:28). 절망을 넘어서 희망과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 이신 예수님을 믿는 길 뿐입니다.

이 가을에 절망하며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밝히 증거 하는 우리들의 사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들의 사명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35 세 가지 감사 (2003년 11월 21일) 시편 136:1
34 참된 아름다움 (2003년 9월 18일) 벧전 3:3-4
33 한 사람의 중요성 (2003년 8월 28일) 골로새 1:28-29
32 세상을 바꾸자 (2003년 7월 28일) 로마서 12:2
31 하늘을 날기 (2003년 6월 30일) 이사야서 40장 31 절
30 정직성 (Integrity) (2003년 5월 28일) 사도행전 24:16
29 스트레스 (2003년 4월 30일) 빌립보서 4장 4-7절
28 이렇게 변했습니다 (2003년 3월 25일) 요한 3서 2절
27 한 사람의 영향력 (2003년 2월 25일) 디모데 후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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