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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길상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손길이 되셨던 장로님을 추모함
주님께로 가신 권길상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지난 34년간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셨던 권길상 장로님께서3월13일 오전 8시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소천 소식을 들고 세상이 다 멈춘 것 같았다. 장로님과 마지막 통화 기록을 보니 3일 전인 3월 13일오후 12:53분 부터 몇 분간이었다. 수술 후 회복하신 기간에는 사모님께만 안부를 여쭈어 보았는데, 그 날은 장로님께서 전화를 받아 주셨다. “이제 많이 건강해 져서 일도 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장로님께서 피곤하실 것 같아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 끊었다. 그 전화 통화를 마지막으로 참으로 다정하시고 늘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던 장로님과의 이 땅에서의 대화는 끝난 것이다.  소천 소식은3월 13일 오전 11시 45분에 따님이신 권희원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이 메일로 알게 되었다.
 
장로님과의 만남은 1981년 어느 화창한 봄 주일 예배 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민 초기에 L.A에 살 때에, 권 장로님의 형님이신 권희상 목사님께서 사역하셨던 교회를 다녔다. 따뜻한 어느 봄 날, 예배 후에 목사님께서 권 장로님 소개하시면서 “작곡가 권길상이예요”
하셨다. 나는 그 때에 귀가 번쩍 띄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부른 ‘꽃 밭에서’ ‘과꽃’ ‘아침바다’등의 곡을 쓰신 어르신을 뵙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나는 그 때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섭리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날, 장로님께서 교회 뜰에 서계실 때에, 장로님께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있던 봉투를 꺼내서 손으로 노트에 쓴 찬양시 2편을 드렸다. 이 시들은 이민을 떠나 오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오던 믿음의 후배들이 계속 격려를 받도록 하고자 쓴 신앙시였다. 작곡자를 찾지 못해서 걱정하던 때에 교회에 올 때면 늘 양복 상의 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기에 즉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제가 고국을 떠나 오면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싶어서 신앙시를 썼고, 작곡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감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면서, 장로님께 봉투를 드렸다. 그 날 처음 만난 청년이 불쑥 내민 봉투를 얼떨결에 받으시고는 조금 있다가 “받기는 받았지만, 읽어보고 영감이 생기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라고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3주 정도 후에 작곡 ‘나를 감동시켜 주소서!’를 작곡해 주셨고, 얼마 후에 ‘아침에 주를 뵈어라’를 작곡해 주셔서 권희상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교회 찬양대에서 부르게 하셨다.
 
그 때 이후로 약 34년 동안 128곡의 감동적인 찬송가를 작곡해 주신 나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어른이 바로 권길상 장로님이시다.
 
3월 21일 오후 3시에 ‘Hollywood Forest lawn Church’에서 가진 장례식에는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참석한 장례식 가운데 가장 많은 조문객이 오셨다. 내가 그 날 유족들의 부탁을 받고 유족들과 조문객들 앞에서 조사를 하였다. 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장로님은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고국의 6,25 사변으로 인한 정서적 공황, 가난과 불안 가운데 있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동요를 작곡하셔서 부르게 하심으로 힘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저 자신도 사변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애서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 밭에…”로 시작하는 ‘꽃 밭에서’ 라는 동요를 참 많이 불렀습니다.
찬송은 음이 붙은 기도라고 합니다. 128 곡의 찬송가를 작곡하시면서, 한절한절을 수 없이 되뇌이시며 작곡하셨을 장로님의 모습은 아마도 기도하시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감격의 마음이 없이는 작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4년 1월 2일 집 사람이 몹씨 아파서 USC응급실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연초에 의사들이 연휴를 가져서인지 응급실이 대 만원이었습니다. 서류를 꾸며 들여 보내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아 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직원들에게 물어 보아도 알려주지 않고, 내가 들어가서 확인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권장로님의 형님이신 권희상 목사님께서 이 병원의 원목을 하셨다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권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나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곧 갈께요!”하신 얼마 후에 병원으로 오셔서 나를 만나 주셨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은, 그 때에 권장로님과 여기 앉아 계신 사모님또 긴장하신 모습으로 함께 오셔서 내 손을 잡으시고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장로님은 사랑의 실천자이셨습니다!
 
 
둘째로,  장로님은 겸손과 아울러 열정아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가 쓴 찬송시가 얼마나 부족했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도 제 글에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곡을 붙이셔서 제게 우편으로 부치실 때마다, 편지에 최선은 다했지만, 목사님이 표현하시고자 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의 모습 가운데서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예수님의 겸손을 보았습니다.
 
장로님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받고, 작곡 하신 곡들의 연보를 보았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128곡 가운데 118곡을 칠순 이후에 작곡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삶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장로님은 주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열정을 갖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셋째로, 장로님은 사람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해방 이후에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어린이 합창단을 조직하셔서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연주하셨습니다.
 
무학여고, 이화여고, 서울 예고와 한양 대학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미국에 오셔서는 한국 학교 설립에 힘쓰셨습니다. 가주 어린이합창단과 가주 소년소녀 합창단을 조직하셔서 1,5세와 2세들을 음악으로 지도하셨습니다. 한국학교 설립에도 혼신의 열정을 쏱으셨습니다.
 
제가 장로님을 만난 후에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의 교육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미국 학교에서는 정규 음악 시간이 없었습니다. 인성 교육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아들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민 가방만 가지고 온 나이기에 피아노 구입비나 레슨 비가 없었습니다. 나의 형편을 들으시고는 “피아노가 없어도 연습 할 수 있습니다!”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종이에 건반을 그리십시오, 그것을 가지고 아이가 매일 연습하도록 한 후에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치게 하라”고 말씀이셨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연습한 후에 산호세로 이사 가서도 아들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까지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장로님은 사람을 남기시기 위하여 힘쓰셨고, 힘을 주셨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고 권길상 장로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받으신 바 탈렌트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겸손과 열정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남기신 분이셨습니다.
 
지금까지 장로님께서 작곡하신 128곡의 찬양으로 10회에 걸쳐서 ‘감사와 찬양의 밤’을 가졌습니다. 제 2회는 2002년 LA에 있는 미주 평안 교회에서 했는데, 그 때에 장로님 내외분이 오셨습니다. 그 밤에 연주된 곡 가운데에 ‘얼마나 기쁠까?’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한 절을 읽어 드리고 저의 조사를 마치겠습니다.  
 
       사망의 문 넘어 죄인 위하여
       상처 받은 주님 손 잡으면
       얼마나, 얼마나 기쁠까!
 
       천군과 천사들의 인도 받으며
       주님께 안길 때 얼마나 좋을까

       유리 바다 위를 걸어가며
       세마포 입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때
       어린 양 주 예수 앞에서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서
       겸손히 바쳐 드릴 때
 
       나는 진정 감사하리라.
       주님께 올리리라!
       할렐루야!
       오직 어린 양 죽으심
       나를, 나를 구원하심을
       얼마나 기쁠까! 우리 주님 높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행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베다니의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 고 권길상 장로님은 이 땅을 떠나셨지만,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이상이 내용으로 조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신지 약 20일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현재까지도 장로님이 계신 것 같이 산다. 작곡 하신 찬양을 들을 때마다, 장로님께서 옆에 앉아 계신 것 같다. 장로님은 내가 살아 있을 동안도 찬양 가운데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나도 언젠가 주님 곁을 가면, 반갑게 뵈올 날이 있으매 슬프지 않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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