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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Day
Memorial Day!
 
지난 5월 27일을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로 지켰다. 크게는 알링톤 국립묘지에서 국가적인 행사를 하지만, 또한 각 도시에서도 재향 군인들이 퍼레이드도 하고, 공원에서 기념식도 갖는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는 산타 크라라 센트럴 공원에서 오후 3시에 있었다. 하루 전날 저녁에는 공영 방송인 PBS에서 워싱턴에서 열리는 메모리얼 데이 기념 제 75회 음악회가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열렸는데, 두 번에 걸쳐서 방영해 주었다.
 
거기에는 국회 위원들과 각료들 전직 국무 장관 현직 국방 장관과 각 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이 참석해서 인사를 했다. 그 외에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는, 재향 군인복을 입은 사람들 현직 군인들과 군인 가족들과 일반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잃은 분들을 위한 묵념과 현역 군인들에 대한 감사가 흘러 넘쳤다. 그래서 나도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에, 장송곡의 나팔이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질 때에 일어나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들이 미국 공군 사관학교 입학 일부터 시작해서 29년이 넘게 군인으로서 국방의 임무에 헌신하고 있다. 그래서 ‘메모리얼 데이’가 되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무엇이 초등학교 때에 미국에 온 아들아이의 온 젊음을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게 만들었는지를 가끔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구나 남자라면 병역의 의무가 있는 고곡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사실 입대하는 날부터 까마득한 제대 날을 기대하며, 어찌하던지 잘 참고 명예의 제대를 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월남전에 참전하여 제대 일자에 맞추어서 귀국하고자 했지만, 비록 사병으로 있었지만, 부대의 사정으로 인하여 여섯 달을 더 근무하고 귀국했다. 1960년대에 육군 사병의 근무기간은 3년이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보다 6 달을 더 근무하고 제대했다. 여섯 달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내가 고국에서 군 생활을 할 때에, 민간인들의 군인에 대한 태도에서 존경과 배려를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하기야 특별한 건강상의 이유가 없는 한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기에, 그냥 그렇게 보아주었다. 어떤 때는 군인을 ‘군바리’라고 비하하는 듯 하는 호칭으로 불려 질 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보니 경찰이나 소방관 그리고 군인들에 대한 각별한 존경(장교만이 아니라 사병들에게도)과 예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놀랐다. 그 한 예로 아들이 사관학교 붓 캠프를 끝내고 입학식을 할 때에 참석했었다. 부모와 함께 외출할 시간을 주어서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내로 데리고 나가서 식당에 들어갔다. 머리를 짧게 깍은 애숭이 같은 아들을 보는 식당 종업원들과 식사를 하는 분들의 눈초리에 친근감과 존경의 눈초리를 보내며 눈짓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식사 후에 계산을 하려고 하니 사관학교 입학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신입생과 가족 친지들이 함께 와서 식사하는 분들에게는 15% 할인을 한다고 하면서 계산을 해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들이 입을 간편한 옷 한 벌을 사기 위해서 옷 가게에 갔을 때도 똑 같은 환영과 대우를 받았다. 돈 몇 푼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훈훈했었던 분위기를 말하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전사한 군인의 시신이 워싱턴 인근 비행장으로 도착하면, 한 밤중이거나 이른 새벽을 막론하고 성조기를 덮은 시신이 내릴 때에 대통령이 나가서 경례를 한다. 대통령은 전사자의 가족들을 일일이 악수하며 진심어린 위로이 말을 전하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감동이 되었다. 아들 삼열이도 이락과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전했기 때문에 비행기에 실려 차디찬 시신이 되어 내리는 관을 보면서, 그 군인의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마음 아파했다. 내가 아는 분의 아들이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갔다가 전사하였다. 그 분이 그런 상황에서 위로를 받은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 청년의 이름은 ‘민수’였다. 자녀들 가운데 아들은 ‘민수’ 하나였다고 한다. 전사 통보를 받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은 가히 짐작할 수도 없다. 아들의 시신이 도착해서 국군묘지에 안장하게 되어서, 참석해 보니, 그 분이 사는 주의 상원의원 그의 지역구의 하원의원 시장과 많은 경찰들과 재향 군인들이 참석해서 장례를 엄숙히 치러 주는 것을 보면서,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함께 아파해 주고, 함께 자리해 준 그 따뜻한 배려에 차디 찬 마음이 얼마만큼은 녹았다고 하셨다.
 
9.11 사건 직후에 내가 교단의 일로 인하여 여러 지역을 방문할 때에 이락 전투가 있었다. 비행기에서 군인들을 많이 보았다. 스튜어디스는 가능한 한 군인들이 안락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우선 비행기 탑승 때에 군인들이 먼저 타게 배려했다. 혹시 좋은 앞자리나 1등석이 비면 군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스튜어디스가 방송으로 이 비행기에 탑승한 군인들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하면, 승객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군인들에 대한 배려에 대한 아름다운 일들이 참 많지만 한 가지만 더 쓰고자 한다. 많은 경우에 군인들이 임무 상 군복을 입고 식당에 들어와서 식사를 하면 많은 경우에, 어떤 분이 대신 지불하고 간다.
미국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휴식 시간에 관람하는 군인들을 일어나게 하여 박수와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군인은 자기가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왜 이렇데 장황하게 미국에서 있었던 군인에 대한 예우를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지난 5월 24일 여섯 달의 파병 임무를 마치고, 중동지방의 소말리아 아덴 만에서 귀국한 청해함이 정박하는 과정에서 정박용 밧줄 사고로 최종근 병장이 생명을 잃었다. 전역을 1개월 남긴 사병이다. 그 자리에는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와 여동생이 나가서 환영인파 속에 있었다.
 
사망한 이후 일 계급 특진을 시켜 고 최 종근 하사 영결식에는 분명히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급의 인사는 없었다. 그들이 보낸 조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사병의 순직을 기리기 위하여 해군의 고위층이 여럿 온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오지 않고 조화만 보냈다. 사진에는 해군제복을 입은 사병들이 눈물을 흘기고 경례를 하는 것이 전부이었다. 모래 먼지가 휘날리는 갑판, 40도가 넘는 무더위에서 나라의 명령에 따라서 외로운 함상생활을 하고 돌아와 부모와 가족 잎에서 죽은, 그 최 하사가 아닌가?
 
왜 이런 일에 국군 통수권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다. 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해전 기념일에 현재 대통령은 국내에 있으면서도 참석하지 않는가에 대하여 분노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국군 통수권자가 나라를 위해서 명령을 받고 다녀와서 죽은 군인이나, 북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생명을 걸고 싸우다가 죽은 장병들은 남의 나라 군인인가? 만일 대통령이 자기 자식이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게다가 급진적 여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워마드’에는 최 하사에
대한 외모 비하와 인격모독 글을 게재하였다. 국가를 위해 생명을 버린 군인에 대하여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같은 나라 국민임이 분명한가? 심히 개탄스럽다!
 
얼마 전에 읽은 신문 기사에서 마음 뭉클한 내용이 있었다.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지난 5월 25일 오하이오 스프링그로브 묘지에서 있었던 6.25 전쟁 참전 용사였던 헤인즈 퍼킨스씨에 대한 기사이다. 이 분이 90세의 나이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는 분도 많지 않고, 그의 딸조차도 3.800 Km나 떨어져 있는
캘리포니아에 사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도저히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요양원 측은 소셜 미디어에 사연과 함께 ‘주민 여러분이 함께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그 다음 날 미 전역에서 고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수천 명이 장례식장으로 달려와 추모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는 성조기를 덮은 관을 둘러싼 수많은 퇴역 군인들이 제복을 차려입고 운구 행렬을 지켜보는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지역 음악가들이 ’어메징 그레이스‘를 연주하며 노병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스프링그로브 묘지의 스킵 펠프스 국장은 CNN 인터뷰에서 “장례식에 오려고 수백 마일을 운전해서 온 사람도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전했다. 스트론 이라는 사람은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왔다.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모습인가!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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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코디 리(Kodi Lee) (당신이 세상을 바꾼 사람입니다!)
63 Memorial Day
62 ​꼭 두 사람만. 아름다운 관계를 기다리며
61 '70년대 영락교회 청년 복음화 운동에 대하여 박소인 교수님께 보낸 서신
60 고 민하식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장로님을 추모함.
59 고 권길상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손길이 되셨던 장로님을 추모함
53 믿음에 대하여 요한복음 10:10
52 왜 예수님을 믿는가? 요한복음 11:25,26
51 사랑에 대하여 누가복음 15:20
50 여호와를 기다리라. 시편 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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