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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튼 헤일(Nathan Hale /1755.6,6-1776.9.22)
네이튼 헤일(Nathan Hale /1755.6,6-1776.9.22)

어제(7월 6일) 오후에,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모이기는 힘든 때이지만, 그래도 독립 기념일이니 어느 교회에서나 단체에서 실내에서라도 기념음악회 모임을 가진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았다.              
미국은 각 주가 모여 합중국이 된 나라이기 때문에 각 주의 사정에 따라서 방역 제한이 다르다. 내가 찾아 본  기념 음악회는 어느 주에서 모였는지 모르지만, 합창단원들과 관현악단 단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 모임은 2020년 6월 26일에 Temple Square 라는 곳에서  The Tabernacle Choir 가 주관한 것이다. 독립 기념일에 늘 부르는 God Bless America, This Land is Your Land 등의 익숙한 곡들이 연주 되었다. 합창단원은 남녀 200여 명씩 되어 400여 명이 남녀가 반반으로 나누어 제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섰다. 그 앞에는 관현악단 대원 백 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합창 단원들은 40 대 중반에서 60대 정도 되는 분들이었다. 참으로 잘 준비된 기념 음악회였다. 모임 중간에 한 분이 나와서 독립 전쟁 당시 21살에 장엄하게 교수대에 달려 죽은  네이튼 헤일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는 수 많은 적군을 죽인 사람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적군에게 잡히여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떠난 청년이다. 그런데 왜 이 분을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존경할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하는데는 역사에 이름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무명의 용사들이 수 없이 더 많을 것이다. 학자들의 추산으로 독립전쟁에서 죽은 군인과 민병대원들의 숫자가 약 오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는 전염병으로 죽거나 영양실조로 죽은 군인들도 포함 되었다. 잘 무장되고 훈련된 영국군인들과 맞서서 싸운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지만, 결국은 값진 승리를 이룬 전쟁이었다.

전쟁을 치루고 있던 당시 미국의 국내 형편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것이다. 자원의 부족과 훈련된 병사의 부족은 심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더욱 딱한 사정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전염병인 천연두가 창궐하여 13만 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오늘 날 COVID-19  사태를 당하여 미국이 힘들어 하는 것처럼, 그 당시 미국 전체 인구와 비교한다면 사망자의 비율은 참으로 참담한 수치가 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그러한 상황에서도 독립을 위해 전쟁을 수행했고 결국 이루어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전쟁에서는 정확한 첩보가 있어야 한다. 조지 워싱톤 장군은 진격해 오는 적군의 동태 파악을 위하여, 적군의 후방으로 가서 탐지할 스파이를 모집했다. 그러나 그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없던 차에 한 청년이 장군을 찾아와서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젊은이가 바로 네이튼 헤일이라는 사람이다.

네이튼 헤일은 1768년 15살의 나이에 예일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18살에 학급 수석으로 졸업하고 New London 이라는 곳에 가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가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서 그가 교사로 있던 그 동네로 잠입하여 영국군의 동태와 이동 경로등을 수집하다가 그가 파견 된지 일 주일 만에 롱 아일랜드에서 영국군에 붙잡혔다.
그는 죽기 전날 밤에 영국군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넣어 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 후에 그는 목사님을 만날 수 있도록 부탁을 했어도 또 거절 당했다. 그는 하나님께로 갈 준비를 차분히 하고자 했을 것이지만, 영국군은 그의 마지막 부탁들을 다 거절하였다.

그가 죽기 전에 영국군 장교가 할 말이 있는가를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네이튼 헤일이 남긴 이 말은 형을 집행했던 영국군 장교의 일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네이튼 헤일은 장교에게 “I only regret that I have but one life to lose for my country!” (나는 단지 내가 살아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라고 말한 후에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이상의 사실을 요약한 설명이 끝나자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구 찬송가 79장)이 연주 되었다. 정말로 눈물 겨운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코케티컷 주에도 뉴욕 주에도 그 외의 몇 곳에 네이튼 헤일의 동상이 서있다고 한다. 1920년에는 네이튼 헤일을 기념하는 우표를 미국 우정국에서 펴냈다고 한다. 그리고 1985년 9월에 코네티컷 주는 네이튼 헤일을 코네티컷 주의 영웅으로 추대하였다.

내가 약 28년 전에 예일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와 관계된 분들의 동상들을 보았지만, 그 당시 나는 예일 출신이요, 미국의 대 각성 운동에 크게 쓰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네이튼 헤일의 동상을 보았어도, 잘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이름 정도나 읽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교를 방문한지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뚜렸히 기억하는 것은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지금 기억으로는 졸업식 전야에 갖는 행사를 하던 대 강당) 광장에 큰 돌판들에 가득히 적은 글자로 새겨진 이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은 예일 대학교 재학중에 또는 졸업생들 가운데 세계 제 1차 대전과 제 2차 대전에서 전사한 분들의 이름들이다. 그 학교 출신이, 나라를 위해서 앞으로 귀한 일을 할 젊은 인재들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장열하게 전사 할 수 있었음에는 네이튼 헤일의 동상 앞을 지나가면서 애국의 충정을 마음에 새긴 학생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스물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네이튼 헤일은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기억되는 젊은이임에 틀림이 없다. 미국 독립 기념 음악회의 마지막 곡은 구 찬송가 524장 ‘우리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르며 막을 내렸다.
                                                                                                          

                                                                                                                                                             (2020.07.08)
 
Number Title Reference
76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탄절 풍경
75 고 박창환 학장님을 추모하며
74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배 진행
73 네이튼 헤일(Nathan Hale /1755.6,6-1776.9.22)
7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국 독립 기념일’ 풍경
71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4)
70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3)
69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2)
68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1).
67 “젊은 선교회와의 만남”
66 이상한 올킷 꽃
65 하나님의 은혜 (The grac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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