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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A(extended STAY AMERICA) 210호에서(1)
eSA(extended STAY AMERICA) 210호에서(1)
 
1월 3일에는 바로 다음 날 창고로 들어갈 모든 세간을 잘 정리해 놓고, 오후 3시 경에 앞으로 약 8개월 동안 살 모텔에 왔다. 내가 살던 노인 아파트에서 약 25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곳으로 오려면 프리웨이가 아닌 로렌스 익스프레스 웨이를 이용하는 길 외에는 빠른 길이 없다. 대부분의 모텔이 프리웨이 근처에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모텔도 바로 옆에 237 프리웨이가 있다. 창문을 조금만 열면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데 방음 유리창이 잘 되어 있어서 문을 닫으면 거의 밖의 소음이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무실에서 열쇄를 받고서 210호를 찾으니 예상외로 1층이었다. 나는 210호이기 때문에 2층 10호실인 줄로 착각한 것이다. 지급 받은 프라스틱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운 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전등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켜니 방의 윤곽이 나타났다. 하룻 밤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여러 달을 지내야 하는 방임으로 혹시 하자가 있지 않은가를 살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부엌과 화장실 사이의 벽에 약 2인치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고 소파 앞에 있는 탁자의 다리 하나가 끄떡거렸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면대를 살펴보니 세면대 뒤에 설치된 물막이 손잡이 레버(세면대에 물을 많이 채우기 위하여 레버를 올리면 물을 가두어 둘 수 있는 장치)가 파손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아주 조그만 싱크대 주위의 실리콘이 너무나 오래되어 썩어 있었고, 물을 써서 조금만 싱크 통 옆으로 나가면, 이내 스며들어서 밑으로 물이 새어 떨어졌다. 다른 한 가지는 미국에서 특히,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화재 경보기가 잘 작동 되도록 철저히 점검한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아예 경보기를 달았던 자리는 있는데, 경보기 자체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냉장고였다. 1월 3일 첫 밤은 참으로 힘들게 보내야 했다. 냉장고의 팬이  쉴새 없이 도는 것이었다. 냉장고에서 찬 바람이 나옴으로 실내 온도가 내려가니, 방의 온도를 맞춰주는 히타가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고, 한 10여 분 정도 걸려서 방의 온도를 올려 놓곤 하였다. 문자 그대로 새로운 모텔에 와서 신고식을 톡톡이 치뤘다. 그 이유는 냉장고 아래쪽 문을 닫으면 고무 바킹이 너무 노후해서 냉장고 문의 상부가 약 1/4인치 정도나 사이가 벌어져서 그 경사가 냉장고 반 정도까지 내려오니 문이 잘 닫히지가 않았다. 그러니 냉장고 안의 팬이 쉴새 없이 도는 것이었다. 외부 공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어름과 물이 흥건히 고였다. 문이 닫히지 않는 것도 사진을 찍었다. 내 생각에는 내가 들어간 방이 아주 오랫동안 빈 채로 있었던 것 같다. 이상의 문제를 관리 사무실에 알려주기 위하여 기록을 해 두었다.
 
미국에서는 입주자가 처음 들어가서, 시설 부분에 문제가 있는데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나갈 때에 책임지고 변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 부부는 이 방에서 약 여덟 달을 살 예정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 보아야 했다. 내가 건축 설계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에, 이상의 문제들을 간단히 적어가지고 관리 사무실에 가서 시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내 사무실로 갔다. 낮에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집사람의 말에 의하면 매네저가 와서 보더니, 벽에 구멍을 우리가 낸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했다고 하였고, 싱크대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으며, 냉장고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니 그대로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오후 3시경에 모텔에 돌아와 보니 화재 경보기는 설치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가서 우리가 하룻 저녁 지냈는데, 우리 부부가 벽에 구멍을 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그렇다면 즉시 와서 벽 구멍에 쌓인 먼지를 확인하라고 했다. 매네저와 함께 내가 머무는 방에 와서 보았고, 수리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싱크대 주위에 실리콘도 발라 주겠다고 했지만, 냉장고는 괜찮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분은 계속 우겼다. 어떻든 내가 발견한 문제점이 금세 해결 될 것 같지 않아서, 냉장고의 고무 바킹이 오래 되어 굳어져서 닫히지 않는 경사부분을 냅킨 종이로 조금조금씩 붙여 나가서 공간을 메워서 밖의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느라고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썼다.
 
이렇게 냉장고를 손 본 그 다음 날에, 우리를 이곳 모텔로 보내준 우리 아파트 매네저에게서 불편한 것은 없느냐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문제점들을 이야기 했더니, 자기가 책임지고 시정하도록 부탁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이곳 모텔의 관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냉장고를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오전11시 경까지 기다렸더니, 일하시는 분이 냉장고를 가지고 왔다. 새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것이었다. 문짝도 반듯했고 꼭 닫히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금까지도 냉장고의 상태는 매우 좋다. 삐떡거리는 탁자를 뒤집어 보니 다리들을 나사로 조여 고종시키도록 되어 있어서 내가 고쳤다. 화장실 싱크대 뒤에 조절 손잡이는 관리인이 고쳐주었다. 우리 부부는 하루 이틀 묶고 가는 객이 아니다. 여러 달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모텔 관리자들에게는 별것 아닐지라도 우리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로서 이 모텔로 와서 산지도 벌써 한 달이 엿새가 되었다. 방이 하나이니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다른 우리 집사람과의 시간 조정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자연히 새벽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다. 불을 켜면 온 방이 밝아지기 때문에 집사람의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요즈음은 말씀 묵상을 저녁에 기록하고, 새벽에는 기도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참고로 내가 사는 모텔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가로 12 피트, 세로 28피트 반의 넓이이다.
이 공간 안에서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침대이다. 킹 사이즈인데 가로와 세로가 6피트 2인치이다. 그러니 화장실을 제외한 공간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내 일생에 한 번도 킹 사이즈 베드를 사용한 경험이 없었는데 참 넓어서 좋다. 화장실은 가로 5피트에 세로 9피트이니 전체 면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부엌은 세로 2피트에 가로 7피트인데 냉장고가 2피트 가량이 되니, 실제로 식사 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2’X 5’이다. 미국 사람들의 식 생활로서는 괜찮을 것 같지만, 우리 음식 문화인 지지고, 볶고, 끓이고 비비는 음식을 만드는 데는 아주 비좁다. 식탁은 붙박이로 되어, 식탁을 받히는 밑부분의 반은 식재료나 그릇을 넣어두는 공간이 있다(식탁 : 3피트 1인치X 3피트 8인치). 길이 7피트에 넓이 2피트 반인 크로셋과 소파와 탁자의 면적을 제외하면, 남은 면적은 그런대로 다닐 수 있는 공간 정도이다. 내가 제일 처음 살았던 노인 아파트 프리덤 타워의 스튜디오 보다는 넓고, 직전에 살던 1베드룸 아파트보다는 좁다. 여기서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방 청소를 해 주어서 감사하다.
 
다음 번에 좀더 자세히 쓰겠지만, 좋은 공원을 찾아서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집사람은 방에 혼자 있으면 심심해서 성경도 더 많이 읽고, 기도도 더하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두 번을 걸었지만 세 번을 걸어서 감사하다. 나도 전에는 아침에 한 번을 걸고 저녁에는 다른 운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하루에 두 번을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주간 중에는 아파트 주위를 돌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공원까지 걸어가서 걷고 오면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집사람이 방에 오래 혼자 있으면 심심할 뿐더러,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내가 사무실에 나가는 시간을 반으로 줄였다.
 
베이 에어리아 전역에 약 3만 여명의  홈리스가 있다는 방송 보도를 보았다. 우리 부부는 나이 사십이 가까워서 미국에 왔기에, 미국을 위하여 별로 한 것도 없는 우리가 이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산다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주님의 역사하심이, 이 땅을 사는 우리 부부에게도 넘치는 은혜로 역사하여 주심에 대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2018.2.10)
Number Title Reference
83 ​2021년 4월 4일(부활 주일)
8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81 20여 년은 건강하실 거예요!
80 약 12 시간 만에.
79 왜 일까?
78 마지막 우거처 (寓居處) 에서
77 eSA (5) 쥐같이 된 다람쥐
76 eSA (4) 왜가리
75 eSA (3) 개미가 만든 길
74 eSA(2) 미래 세대를 위하여
73 ​eSA(extended STAY AMERICA) 210호에서(1)
72 T.J.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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