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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 시간 만에.
약 12 시간 만에.

     지난 2월 13일(목) 저녁9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집사람이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추측하건데, 매 십여 년 마다 반복해서 아파했던 담도(Bail Duct) 에 박힌 돌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3명의 손녀 딸이 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사위는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임으로 딸에게 연락해도, 그 시간에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혼자 집사람을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혹시 가는 과정에서 통중이 심해지면,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운 후에 응급실까지 가는 것이 혼자로서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병원이 공사중이었음). 전에도 집사람을 데리고 응급실을 여러번 가서 차를 세우고 업고 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때 나이가 아니지 않는가.
    
     생각 끝에 하는 수 없이 베다니 교회를 담임하시는 믿음의 동역자 유성현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혼쾌히 승락하시고 20여 분만에 아파트로 오셨다. 집사람은 내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고, 응급실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반 경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안내문 옆에 1회용 마스크가 있어서 각자가 마스크를 쓰고 접수대에 가서 응급실에 온 이유를 말하니, 이름을 부를 때 까지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카운티 병원이라서인지, 그 날 따라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가신 목사님과 집 사람 그리고 내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약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접수대에 가서 영문을 물어보니 좀 더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집사람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어쩔줄을 몰라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담당자에게 가서 통증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니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러나 번번히 지금 응급 병실에 공간이 나지 않아서이니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할 수 없어서 통증을 멎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니, 의사에게 연락해서 한참 후에야 알약 하나를 주었다. 그것을 먹으면 좀 가라앉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그 약이 과도했는지, 정신을 못차리고 몸을 거의 추수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사정을 접수대에 가서 시간마다 말하기를 그 다음 아침 10시 경까지 하였다. 이런 지경이라면 앰뷰란스를 불러서 집사람을 싯고 다른 병원 응급실로 갈까 하여 문의해 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였다.

     딱한 사정은 집 사람뿐이 아니었다. 집사람의 접수를 마친지 얼마 후에, 60대 중반 되는 아주머니를 남편이 데리고 와서 접수하였다. 그분도 급했는지 몇 번을 접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급실의 자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마찬 가지였다. 새벽 5시 경에 남편 되시는 분이 부인을 데리고 사정을 하러 접수대에 와서 의자에 앉혔지만, 힘이 없어서 머리를 가누지 못해서 카운터에 크게 부딛혀서 절도해버렸다. 그런 일을 당한 후에야,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뛰어나와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때에 아내와 함께 응급실로 들어가지는 못한 남편이 오전 9시 경에 간호사와 함께 자기 부인이 있을 방문하고 나왔다. 상태가 잘 호전되어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분에게 부인의 상태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집사람은 물론 목사님과 나는 밤을 햐얗게 지샜다. 고통 가운데서 어쩔줄 몰라하는 집 사람은 이를 악물고 기도하며 숨을 몰아쉬면서 참아내려고 안깐힘을 다쓰고 있었다. 먼동이 트고 아침 해가 오른지 한참 된 시간이 되었어도 응급치료실로 들어가라는 연락은 언제일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치료 받으러 왔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응급 처치를 받고 거의 다 가고 몇 사람만 덩그러니 큰 대기실에 남아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사모님이 걱정하실터이니, 목사님은 댁에 가셔서 좀 쉬시라고 하면서, 어떤 일이 있으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였다. 집 사람은 내게 “그냥 집으로 가서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까지 말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뿐이었다. 때로는 목사님과 합심해서, 때로는 혼자 계속 기도로 밤 지냈지만 이었지만 아직고 입원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렇게 기다릴 바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하면서, 마지막으로 접수대에 가서 집사람의 딱한 사정을 말하니, 접수를 보던 분도 “딱한사정을 알지만,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응급 치료실이 않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 밤에 앰뷰런스로 실려서 들어온 사람은 많고 응급한 환자들을 치료할 방이 없어서 복도에 빈 공간에 그냥 누워 있다는 것이다.

     접수원이 응급실 상황을 파악하더니 조금 후면 방 하나가 나는데, 그것이 집사람의 상태를 검사하고 나서 입원시킬 수 있도록 결정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했다. 그러나 방 배정은 응급 진료팀이 결정하는 것인데, 자기가 여러번 집사람의 형편을 보고했지만, 연락이 와야만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가닥 희망의 줄을 잡은 나는 창백한 얼굴로 통증을 참기 위해 눈을 꼭 감고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 있는 집 사람에게 와서 옆에 앉았다. 그런데 몇 분 후에 집사람을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가보니 응급치료실에 들어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환자를 데리고 오라는 반가운 소식을 주었다.  그 때가 약 아침 10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응급대기실에서 거의 12시간이나 집사람이 참아낸 것이다.

    집사람이 아파하는 복부와 흉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이었다. 의사 두 분이 오더니 집 사람의 병력과 상태를 물었다. 42년전 담(쓸개)을 제거한 일이며, 그 후에는 약 10여년 간격으로 담도에 돌이 박혀서 응급실로 갔고, 제거했던 것을 말하니, 집사람의 복부 위를 눌러보면서 통증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집 사람의 대답을 들은 의사들은 사진을 확인하고 분명히 담도에 돌이 들어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더 정밀한 상태를 알기 위하여 집 사람을 데리고 각종 테스트를 하기 위하여 촬영실로 데리고 갔다.

     두어 시간 후에 담당 의사로 부터 담도에 돌이 많이 있다는 답을 들었고, 집사람이 누워 있는 침대를 따라 입원실로 갔다. 한 방에 4 명이 있을 수 있는 곳인데 첫 날에는 집사람을 포함하여 셋이었다. 입원 즉시 집사람에게는 여러개의 주사 바늘이 꼽히고 계속 혈액 조사를 위하여 하루에 두어 번씩이나 채혈해 갔다. 시술 날자는 토요일로 정해졌다. 시술이 끝날 때까지는 음식을 섭취 할 수 없어서 영양 주사로 버텨야 했다. 줄을 주렁주렁 단 채로 화장실을 오가는 번거로은 일을 도우면서 혼자 화장실을 간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금요일 저녁에 내일이면 시술을 하게 되는구나 하였는데, 의사가 오더니 시술을 하는 의사 팀이 잘 모여지지 않아서 뒤로 미룰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쉬는 토요일에 모이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다음 월요일이 공휴일인 Presidents’ Day 이기 때문데 인원을 모으기에 힘이 들었던 것같다. 게다가 COVID-19 사태의 초기 비상이 심리적으로도 작용했을 것 같다. 그래서 몇일 뒤인 수요일로 시술 날자를 확정 되었다. 집사람은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저녁까지는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했다. 그리고 화요일은 굶고, 수요일 10시에 시술하는 병동으로 집사람을 옮겨 갔고, 어머니를 걱정하여 시술 전에 만나러 온 딸과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약 2 시간을 기다리니 시술한 의사가 나와서 말하기를, 담도에 있는 돌들을 꺼냈지만, 시간 내에 다 꺼낼 수가 없어서 부득불 2 차 시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다.

     회복실로 가 있다가 병실로 실려온 집사람은 아직 마취가 다 깨지 않아서 매우 괴로와 하였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집사람을 보니, 완전히 치료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아픈 이유를 알았고, 그에 따른 치료를 시작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돌아와 보니 한 분의 환자가 더 들어왔다. 그분은 음성이 커서 신음을 할 때나, 간호사와 이야기하면 귀가 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분이다. 수면 시간에는 계속 신음을 하면서 소리를지르니 집사람이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드디어 기다니던 퇴원 수속은 목요일 3시경부터 시작되었다. 퇴원 후에 먹을 약들도 약국 직원이 배달해 주고 자세히 설명을 해었다. 담당 의사들도 방문하여서 잘 지내기를 당부하면서 제 2차 시술은 약 9주 후에 실시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일단 퇴원을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집사람의 아픈 곳을 촬영하여 살펴보다가, 허파에 혈전 덩어리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나중에 뇌에 큰 손상을 주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처방해 주면서 앞으로 6개월간 복용하면 치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일단 3개월분의 알약을 주었다.

   퇴원을 해서는 일 주일 동안, 매일 2개의 항생제와 엘리쿠스(ELIQUES) 두 알 그리고 그 외에 혈압약과 코레스트롤 약을 먹어야 했다. 집사람은 몸이 약한 편이라서, 특히 항생제를 먹으면 정신을 못차리고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으로 일 주일을 지내야 했다. 다음 시술때 까지 건강을 증진하여야 하니 식사에 신경을 쓰고, 운동을 격려하면서 제 2 차 시술일을 기다렸다.
   
                                                                                                                                                                             (2020.06.08)
 
Number Title Reference
83 ​2021년 4월 4일(부활 주일)
8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81 20여 년은 건강하실 거예요!
80 약 12 시간 만에.
79 왜 일까?
78 마지막 우거처 (寓居處) 에서
77 eSA (5) 쥐같이 된 다람쥐
76 eSA (4) 왜가리
75 eSA (3) 개미가 만든 길
74 eSA(2) 미래 세대를 위하여
73 ​eSA(extended STAY AMERICA) 210호에서(1)
72 T.J.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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