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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Max
T.J.MAX
 
맥시코 만에 있는 미국령 푸에토 리코에 약 2 달 전에 태풍의 강도가 5를 넘는 ‘아머’로 인하여 문자 그대로 초토화 되었다. 아직까지도 전기가 복구되지 않은 지역이 많다고 한다.
복구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하는 T.V를 보면 무너지고 부서지고 날라가 이리저리 엉킨 갖가지 재료들과 함께 너머진 전주와 끊기고 얽힌 전선이 뒹굴고 있는 모습이었다.
 
태풍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도 있고 부상당한 사람,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지만 전기가 끊긴 형편이기 때문에 병원과 의료기구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 본토에서 병원선을 보냈지만, 의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몇 일 전 아침 뉴스를 보다가 도저히 귀를 의심할만한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섬에 T.J.MAX 라는 일용품을 파는 체인점이 10개가 있는데, 현재 복구 되어
개장해서 물건을 파는 점포는 단 한 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말이 나를 심히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태풍 이후로 아직 개장하지 못한 점포에 속한 모든 종업원에게 계속 급료를 지급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고 시행하느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종업원이었던 사람들이 천재지변이 났으니 어떤 다른 직장을 잡을 수 없는 딱한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부를 종업원들이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일하지 못하게 된 것을 보고, 아낌 없이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경우에 있었던 사실은, 경영자들은 회사가 망해도 거액의 급료와 보너스를 받아가지고 나가고 종업원들은 거의 빈 손으로 짐을 싸는 모습을 T.V 방송에서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사는 곳에는 T.J. MAX 상점이 없다. 이웃 도시에 있는데,한 번 방문하고자 한다. 위에 적은 내용과 같은 상점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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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과 내일 아침에 내가 사는 북 가주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을 보았다.
T.V 화면을 보니 화재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본 산타 로사와 나파에 집중 호우가 내릴 것이라는 것을 표시한 노란 색이 드리워져 있었다. 기상 캐스터의 말에 의하면, 불타버린 도시와 산에서 토사가 날 것이라고 하면서 주의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다 잿더미가 되었으니 물에 잿더미가 떠내려 갈 것이며, 각종 쓰레기 더미와 잔디까지 다 타버린 땅에서 흙까지 쓸려 내려가면, 하수구가 많이 막혀, 길이 막히고 길까지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마음 아프다. 이 번의 화재로 인하여, 약 일 만 오천 여명이 거처를 잃었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그래도 어느 부동산 업자는 그들을 위해서 머물 곳들을 찾아주는 일을 하니 그래도 고맙기 그지 없다. 그래도 아직 피해자들이 머물 곳이 터무니 없이 부족할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며칠 전에 산 프란시스코에 있는 A.T & PARK 에서 북 가주 화재 피해민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가 있었다. 그 장소를 가득 메운 청중들을 통해서 15 밀리온 달라를 모금했는데, 전액을 복구 지원 단체에 기증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귀하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닌가!
 
두어 달 전에(9월 26일), 고국에서 일어난 슬픈 소식이 있었다. 육군 6사단 소속 이모 상병이 부대 복귀 중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을 맞고 꽃다운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는 눈물겨운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 일로 인하여 여론이 들끓고, 총을 잘못 쏜 군인을 색출하고, 책임 지휘관들을 문책해야 한다는 비난이 뉴스 미디어를 뒤덮었다. 그래서 국방부는 진상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 와중에 그 수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생명을 잃은 아버지의 진정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누가 쏜 유탄인지 알고싶지 않다. 다만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군대에 보낸 아들을 잃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래임 뿐입니다”라고 숨진 병사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고 한다. 숨진 병사의 아버지는 천금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한 마음을 접고 “누군지 알게 되면 원망하게 될 것”이라며“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는, 드러나더라도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자기 아들 또래의 병사가 자책감과 부담감 그리고 형벌을 받을 것을 원치 않는 선한 마음을 가지신 분임에 틀림이 없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 사회는 몸살을 앓는다. 이런 세태와 대비가 되는 유족의 넓은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죽은 병사의 아버지는 “그 병사도 나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떤 부모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같은 부모로서 더 이상의 희생과 피해를 원치 않는다”고도 하셨다.
 
내 아들 살려내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국가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일을 벌려도 누구하나 비난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어진 아버지, 큰 도량을 가진 아버지, 아픈 가슴을 쓸어 안고 참으며, 평화를 위하여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 아버지와 유족들의 사진이라도 보고 싶다. 물론 그 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분이셨다. 신문에 자기의 사진이 실리기를 원하는 아버지였다면, 그런 숭고한 사랑과 화합의 장을 열 수 없었을 것이다. 실로 감동적인 기사를 읽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20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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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2021년 4월 4일(부활 주일)
8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81 20여 년은 건강하실 거예요!
80 약 12 시간 만에.
79 왜 일까?
78 마지막 우거처 (寓居處) 에서
77 eSA (5) 쥐같이 된 다람쥐
76 eSA (4) 왜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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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SA(2) 미래 세대를 위하여
73 ​eSA(extended STAY AMERICA) 210호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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