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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으려면
참고: 마가복음 3:13-15
고국에서 남자 아이의 첫 돓집 잔치에 가면 할머니가 아이를 업고 "얘가 지 아비를 닮아서 이렇게 잘 생겼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 교제하게 하시고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5절에는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말은 우리들의 성품과 인격이 주님을 처럼 되어가도록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읽으신 마가복음 3장 13절부터 1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장면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은 말씀하시기를 14절에서 “함께 있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의 삶이란 간단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 결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과정을 ‘제자의 길’이라고 부릅
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주님 안에 삶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20절을 보면 주님을 영접하고 사는 삶이란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라고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을 잘 아시지요?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은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실 생활입니다.

결혼을 해서 오래동안 같이 사신 분들을 보면, 대부분 서로 닮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함께 오래있는다고 닮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관계속에서 닮습니다. 서로 희생 봉사하고, 짐을 함께 지고 살고, 수고와 눈물도 함께 함으로써, 생활 습관,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가치관도 닮아갑니다. 내적인 일치가 결국은 외적인 용모까지 닮게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줄 압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는 말씀과의 관계를 늘 부지런히 하면서 점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그의 계명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하시면서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나를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셨는
데, 그 의미는 생활이 기도가 되게 하라. 기도하면서 살아라. 기도하다가 중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씀과 기도 없이 주님과 함께 산다
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잠시 주일날 오셔서 기도하고 성경봉독하고 말씀 듣는 것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입니다. 주님은 다른 6일에도 주
님이십니다.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14절에서 보내어 전도하게 하시고자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하시고자 하신 목적에 동참케하고, 동행하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닮도록 하시는 데 어떤 사상이나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이론을 주입시키시고 이상을 갖는 일을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사역하고, 주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가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고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힘을 얻고, 주님을 뵙고 배우는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그 단계를 넘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동역하는 일에 참여함을 통하여, 즉 동고 동락하는 삶을 실제적으로 살게 하심으로 주님과 같은 삶의 의미와 동기를 공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50세 이상 되신 한국 남자들이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엔가 군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쌍8 군번이니, 젓가락 군면이니, 일빵빵이니 하는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설명없이 서로 통합니다. 전방 초소이야기니, 월남전 참전 이야기나 밤을 새고 이야기 해도 끝이 없습니다. 다 지난 일인데, 수십년전 일인데, 뭐 그렇게 다 기억하고 전우들의 이름도 아직 아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동고 동락했던 경험 때문입니다.

제가 1966년도에 월남에 사병으로 참전했습니다. 더운 여름에 밀림으로 작전을 들어갔습니다. 어딘지 알지 못하는 산악 밀림이었습니다. 헤리콥타에서 내리자 마자 해야 할 일은 빨리 자기 몸을 숨길 개인호를 파는 것입니다. 열심히 파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작전과장님이신 이 청길 소령님이 통을 들고 이곳 저곳을 보시면서 저희들을 보호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과장님! 빨리 이리로 들어오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나는 안죽어! 너희들이나 빨리 들어가서 몸을 숨겨랴!”고 하시면서 아직 개인호를 다 파지 못한 동료들을 위해서 방어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경혐을 통해서 그 과장님의 군인다운 모습, 형님같은 따뜻함과 생명을 던져서라도 부하르 보호하시고자 했던 그 희생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아 하시던 지도자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마을들로 보내셨습니다. 전대도 먹을 것도 지팡이도 가지지 말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실습을 하게 하셨습니다. 둘씩 짝지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사랑하고, 협력하고,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해주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실행하고, 함께 성취함을 통하여 예수님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성품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한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세워줍니다.” 인격은 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건전한 균형잡힌 성품을 지니려면, 주님이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책임과 의무를 따라야 합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성품은 다듬어서 주님을 닮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동행에 있어서 그를 사랑하고 섬기면서 입을 수 있는 낙담과 상처를 경험하게 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든 보석이 있습니다. 진주이지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조개가 입을 열고 있을 때. 모래알이 들어가면 그것이 부드러운 살에 닿아 아프니까 분비액을 내놓게 되는 데 그액체가 모래를 감싸기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감싸다 보니 그것이 ‘진주’라는 값진 보석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또는 우리가 예상치 않은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신앙 생활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갖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경험을 통해서 내가 주님 닮아가도록 빚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주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고 동행하게 하시되 다른 사람과 함께 함을 통해서 주님의 성품을 배워가도록 하셨음을 기억하십시다.

셋재로, 하나님의 말씀인 마가복음 3장 15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을 영적 싸움에 참여시키심으로써 그들이 주님을 닮도록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시련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그림자”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련의 기간동안 더욱 하나님을 깊이 경험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배웁니다. 내 뜻을 접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는 깊은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신 일꾼들마다 ‘시련의 용광로’를 통과하지 않은 분이 없읍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장군들이 한결같이 많은 시련가운데서 훈련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가꾸어 간 분들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도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도록 도우십니다.
분명히 시험은 사탄이 준 유혹입니다.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위기를 극복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성품을 세워가십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을 잘 아시지요?
십대 후반에 형들의 미움 때문에 애급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바로왕의 시위대장 그러니까 경호실장의 집에 모든 살림을 맡아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청년 요셉에게 정욕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연히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지만, 주인 아줌마의 거짓된 보고로 감옥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그 유혹을 물리친 댓가는 아주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훗날 “형님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려분!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이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에서 멀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악한 사탄이 “믿는 자라도 미혹하기 위하여 우는 사자처럼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가 우리를 주님에게서 떠나게 합니다.

기억 하실 것은 이 사탄이 우리 주님도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누구나 다 시험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성령을 힘입어 성경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음을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에게는 시험이 없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선줄로 아는 자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그들로 하여금 영적 싸움을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주님은 사탄과 싸워 이기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써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영적 싸움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귾임 없는 경각심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를 보면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시면서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시험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도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중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에 충만할 때 주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라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성령님은 순종할 대 그 힘을 드러내신다.”고 썼습니다.

성도 여러분!
디모데 후서 2장 15절에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힘쓰라’는 단어가 8번 나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품은 내가 힘써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에베소서 4장 22-24절을 보십시오.
첫째로, 옛 태도를 버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죄 악한 습관, 이 세상의 가치관을 늘 벗어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함에 힘써야 합니다. 이 말은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늘 심령이 하나님을 향한 바름, 정직함, 순수하고 순결한 것으로 생각을 옮겨야 합니다.
셋째로, 24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습관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옛 태도를 버리라! 생각을 바꾸라! 새 사람을 입으라!

셋째 삶의 목적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입니다. 이것은 훈련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 훈련을 받으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시면 놓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님의 성품을 닮습니까?

-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거함으로 닮습니다.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주님을 닮아갑니다.
- 주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에 동행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 마지막으로, 시련과 시험을 통해서도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로 부터 삶과 인격을 깉리 있게 배웁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의 용장으로 훈련 받게 하셔서 주님의 공동체에 귀한 일꾼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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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두 문, 두 결과 참고: 마태복음 7:13-20
68 지혜를 얻는 첫걸음.(자녀 교육) 참고: 잠언 1:7-9.
69 무지개를 보신 하나님 참고: 창세기 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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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섬기러 오신 예수님 배우기 참고: 마태복음 10:41-45
76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하신 예수님 참고: 마가복음 1:35-39
77 성령에 매인 사람 참고: 사도행전 20장 17-24절
7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참고: 고린도 전서 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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