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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러 오신 예수님 배우기
참고: 마태복음 10:41-45
고국에서는 4월 9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당선된 사람은 만면의 미소를 띄고 있고, 패배한 분은 큰 실망에 빠져서 통곡한 분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차기 미국의 대통령직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까? 답은 우리가 다 잘압니다. 권력을 쥐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입지가 상승됩니다. 명예가 따라 붙습니다. 자연히 많은 경제적 혜택도 누리게 됩니다.

제가 고국에 있을 때 경찰의 구호를 ‘민중의 지팡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경찰들 가운데 그 직책을 이용해서 힘을 쓰는 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경찰을 “민중의 몽둥이”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인지 상정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수제자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큰 부탁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부탁은,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0절 이하를 보면, 특히 이 부탁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도 가담한 인사 청탁이었습니다. 이 두 제자의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살로메가 예수님의 어머니의 동생일 것이 라고 주장합니다. 인척관계 인사 청탁의 낌새를 알아차린 다른 제자들이 “분개했다.”고 4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분개했을까요? 자기들도 같은 꿈이 있었는데 빼앗길 것 같아서가 아니겠습니까?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실 이렇게 제자들 사이가 어려워 진것이 성서에 기록된 것만도 최후의 만찬까지 3번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보신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을 불러 놓고.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2,43)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끝까지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희생적인 사랑과 섬김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사도들의 서신에도 사랑과 섬김을 누누히 강조한 것을 보면 어느 시대에나 따르기 힘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것 같습니다.

약 10여년 전부터 교회는 물론 사회에서도 ‘섬기는 리더십’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성서는 말씀합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은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로 평가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바로 평가하는 기준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해를 잘 하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서는 “귀가 둔해 설명할 수 없다."고 한 히브리서 저자의 충고를 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따르면서 주의 할 사항이 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주님과 다른 성도들을 나의 필요을 주는 존재로만 이해합니다. 영어로 예배를 서비스라고 한다. 선데이 서비스, 워십 서비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누가 서비스를 받는습니까? 우리들입니까? 아니면 주님이십니까? 혹시 우리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정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뜻을 따라 섬깁니까? 우리 스스로 평가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3장 14절 이하를 잘 아시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귀신을 내어 쫏는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섬기고 약하자를 돕고, 병든자를 고치며, 귀신에게 사로 잡힌자를 이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기 보다는 영의정, 좌의정될 생각이 깊이 박혀 있었으니 주님이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섬기는 종의 모습보다는 사람들이 보는 직책에 연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에 맞게 섬기는지 평가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섬기는 종의 삶은 실제적으로 고생이 따릅니다. 우리를 키우신 부모님들의 모습은 고생과 수고의 섬김 그자체가 아니었습니까? 마찬가지로 제자의 삶은 주님과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피뿌심의 세례를 경험하지 않고는 진정한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섬길 수 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섬길 때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과 물질로 섬깁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믿음의 분량대로’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섬길 때 자기에게 주신 은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바로 알고 믿고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잘 섬기고, 주님의 공동체가 건강해 지려면, 내가 잘 하는 것으로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그에 따르는 도구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자신의 섬김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주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한 부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거룩한 부담이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평가해 보셨습니까? 그러면 어떤 마음 자세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은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워라. 그리하면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온유합니다. 겸손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무능한 것,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권위와 힘을 의지적으로 사랑과 희생아래 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25,26). 빌립보서 2장 5절을 보면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입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와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 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섬기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아직도 누가 높으냐에 대한 앙금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섬겨 주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조금 후면 폭도들에게 잡혀 매맞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서 들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14,15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주님이 각양 각색의 삶을 사는 분들을 섬기시고, 제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실망 스러울 때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예수님의 삶과 성품과 인격을 닮기원하셔서 제자들에게 “이것을 본받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삶을 살 때, 우리가 스스로 “무엇이 된 줄로 알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았고, 은사도 받았습니다. 은혜로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섬김이 무엇인가를 배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성서는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요한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세미나때 말씀 드린 것과 같이 ‘I am nothing’으로 시작해서 ‘I am something’이 되고 ‘I am everything’ 이 됩니다.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야고보 장로님은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비교하면 교만해 지거나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목이 곧아집니다.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발 뺌을 하는 것도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십시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사탄에게서 빼앗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꽃 피우십시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은혜를 풍성히 받으시는 엘림 장로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섬기는 일꾼들이 꼭 기억할 다른 한 면이 있습니다 .

3. 하나님의 말씀은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일꾼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는 사람이 입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식사하실 겨를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섬겨줄 목자없는 양같아서 민망히 여기셔습니다. ‘민망하다’는 원래의 뜻은 ‘창자가 뒤틀리는것'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애간장이 타는 심정’을 말합니다. 말씀을 증거하실 때나, 사람들이나 제자를 섬기실 때 뒤로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문둥병자들이 올 때, 각색 병든자들이 올 때, 눈먼 사람들이 모일 때, 귀신에 사로잡혀 미쳐 날 뛰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면 즉시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짐승이 구덩이에 빠졌는 데 즉시 구해 주는 일, 가난한 자들에게 저당 잡힌 것을 저녁에는 돌려 주라는 말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뒤로 미루지 말고 돌보라는 등의 많은 섬김을 뒤로 미루지 말라고 하는 경고의 말씀을 듣습니다. 일한 급료를 뒤로 미루지 말고 그날 그날 지불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경은 선을 행할 수 있을 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인생이 짧습니다.
주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년수가 많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하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의 목적과 비전을 분명히 알아야 열정이 생기고 낙심하지 않고 부지런히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부지런히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지런과 열정 이전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으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때로는 제자들을 떠나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확인하시고, 그에 따른 열정과 사역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의논하셨습니다. 그리고 섬기셨습니다. 인간적인 열정은 즉시 식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관계성이 늘 강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시편을 잘 아시지요? “할렐루야! 기쁨으로 여호와께 나가 섬기라. 감사함으로 그 궁정으로 들어 가라”는 내용의 구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섬김에 대한 열정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의 섬김의 본을 따르기 위해 시간 계획을 합니까?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합니까,아니면 대충 대충 합니까?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기도하십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인간인지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는 모든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했을 때, “복음을 위하여 많은 것을 잃은 자는 이 세상에서도 백배의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생을 받을 것이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주님과 이웃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긴 것을 잘 아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리자.”고하시면서 우리손을 잡으실 감격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섬기러 오신 주님을 배우기 위하여’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가 있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서 겸손해야 함을 잊지 맙시다. 마지막을, 열정과 부지런함이 있어야 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금세 바닥이 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간단없이 가짐으로 공급되어야 성령의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자리에 계신 연세 드신 분이나 건강이 여의치 않은 성도님들고 주님을 섬기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격려해 주시는 것도 사역입니다. 디 엘 무디 선생님이 영국에 복음을 증거하는 불을 붙인 분은 연세 많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여 환자였습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삶의 태도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배우되, 힘써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충만히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엘림 장로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위대한 사람일수록 더욱 많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이 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는 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얼마나 많이 가졋는 가에 그 값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살았는가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67 두 문, 두 결과 참고: 마태복음 7:13-20
68 지혜를 얻는 첫걸음.(자녀 교육) 참고: 잠언 1:7-9.
69 무지개를 보신 하나님 참고: 창세기 9:1-17
70 건강한 일꾼, 건강한 교회 공동체 참고: 출애급기 18:13-23
71 기쁨이 차고 넘치는 교제 참고: 요한 1서 1:1-4
72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참고: 예레미야 20:18
73 사랑 때문에 감사해서 참고: 로마서 12장 1절
74 예수님을 닮으려면 참고: 마가복음 3:13-15
75 섬기러 오신 예수님 배우기 참고: 마태복음 10:41-45
76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하신 예수님 참고: 마가복음 1:35-39
77 성령에 매인 사람 참고: 사도행전 20장 17-24절
7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참고: 고린도 전서 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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