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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참고: 고린도 전서 15: 1-9
한 시골출신 청년으로 실제로 그가 한 사역의 년수는 3년 정도 입니다.
그에 대한 많은 반대로 인하여 결국은 가장 비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면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한권의 책도 쓰지 않았지만 지난 2천년 동안 이 사람에 대한 책과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것은 이루 그 권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군인을 양성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는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의 목수 출신인 그는 사랑으로 온 세계를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가는 곳 마다 아이들과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고 평등한 교육기회와 복지를 누리며, 병든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큰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사막이나, 아마존의 정글이나, 회교국가나 불교 국가에서 생명을 바친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이 땅에서 말살하기 위하여 책을 쓰기 위하여 그분에 대한 기록을 조사 연구하다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벤허’라는 소설을 쓴 류 웰리스를 변화시킨 분은 누구입니까?

해군 탈영병으로 극악 무도한 노예 무역선 선장이 된 존 뉴톤을 변화시켜서 영국의 노예 제도를 종식시키는 일을 한 성직자가 되게 한 분이 누구일까요? 이미 여러분은 그 답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이나 오래 전이나 이 예수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분은 ‘구세주이신 메시야’이시다. 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반대로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못된 인간으로서 사람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망령되히 일컷는다고 하면서 죽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비하하는 욕이나, 서적들이 나옵니다. 몇년 전에는 ‘다빈치 코드’라는 예수님에 대한 책이 나왔는데, 예수님의 생애를 잘못 이해하도록 부추기는 책입니다. 뉴욕 타임스가 지난 100년 동안 인류에 영향을 준 책 10개 가운데 바로 이 책이 끼어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분분한 의견은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교회가 시작된 이래 수 백년 동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가?’에 대한 교회간, 신학자들간에 많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보다 낮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중의 으뜸되는 존재이다. 그는 실제로는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처럽 보이신 분이다. 아니다. 인간이셨는데 세례시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쓰임 받은 선지자 중에 가장 탁월한 분이다. 등등의 논리들로 많은 혼란이 주후 약 400년 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후 325년 ‘니케아’라는 도시에 각 교회 대표들을 모아서 ‘그리스는 누구신가?’에 대한 교회의 일치를 위한 회의를 모았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온 교회가 모여서 한 회의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에 처음입니다.

그 회의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규정한 글의 일부분을 보면 “그는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고, 성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모든 인간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습니다.” 그 이후는 사도 신경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후 381년 콘스탄티노풀에서 모여 지난 번의 ‘기독론’을 재 확인하고 더 나아가서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한 신성’을 강조했습니다.

주후 451년 칼세톤에 모인 교회 총회에서 다시 주후 325년에 했던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신경으로 재 확인했습니다.

제가 이상의 교회사에서 중요했던 회의들을 알려드린 이유는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이 되기 위하여, 성서가 말하는 예수님을 잘못 알도록 하려는 많은 기독교 이단과 그들의 사상에 대하여 분연히 일어나 영적 싸움을 싸운 믿음의 선진들이 있음을 전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독론’을 정립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분이 ‘아다나시우스’라는 집사님입니다. 나중에 감독까지 되었지만 반대파들에 조정을 받은 황제에게 쫏겨나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객사를 하셨습니다. 그는 끝까지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으로서,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이땅에 오신 독생자임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읽으신 하나님의 말씀 고린도 전서 15:2,3절을 요한복음 3장 16절과 함께 ‘복음의 핵심의 요약’이라고들 말합니다.

이미 외우신 사도신경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즉 우리 생명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등 모든 것의 주인이심니다.

우주의 창조자요 소유자요, 보존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는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경배합다, 높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앙모합니다. 또한 주, 주인은 위하여 우리는 겸손히 섬깁니다. 주인이 원하는 것,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며 보람을 느낍니다.

2) 우리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 성경에 여러 개가 나옵니다. 예수란 말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로 ‘메시야’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왕에게 선지자와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예수님은 왕중 왕이시요, 하나님의 뜻을 전하신 선지자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여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 적인 사역의 상징을 말합니다.
그 외에 ‘임마누엘’이란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이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강조 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3)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나셨음으로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셨지만, 성령님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아버지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기까지 요셉이 동침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잉태 사건은 사실 인간으로는 다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이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한 아이가 임신되고 모태에서 자라나고, 그 안에서 숨쉬고 사지백체가 다 생성되는 것도 우리들이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 창조에 대한 신비가 아닙니까? 인간의 죄성을 타고 나시지 않으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동정녀의 몸을 빌려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불변하는 진리로 믿습니다.
그 이유는성경 본문의 정확합니다. 고고학 증거가 많습니다. 성경의 기사가 정직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메시지의 통일성이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성경이 진리임이 입증됩니다.
그중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메시지의 통일성’이 신 구약 성경에 수십번이나 나옵니다.
그 중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 이전 약 700여년 전에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한 사실이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르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에 의해서 하나님은 이 예언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허상이 아니셨습니다.
우리처럼, 시험도 유혹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죄가 없으신 유일하신 분이셨다.”고 베드로 전서 2장 2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배곺음도 당하셨고, 피곤해 하기도 하셨으며, 목말라 하기도 하셨습니다. 친구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우시기도 하셨고, 에루살렘을 보시면서 그들의 멸망이 눈앞에있음에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 총독에게 잡히셔서 모욕과 고난과 매맞음과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헤롯대왕이, 본디오 빌라도가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이 땅을 밟고 사신 실제적인 분이셨습니다.

5) 예수님이 고난 당하고 죽으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대속의 죽음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그러나 이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시고 대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보혈의 피로 구원하시고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장 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겨 하심이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낳음을 받았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6) 그러나 주님은 죽으심으로 끝나시지 않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과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 의심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음을 깨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완전히 다른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영생의 단계로 우리가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부활하신 주님은 이 땅에서 40일 간에 10여차례 주님을 따르는 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시에 500여명에게 나타나셨고, 그중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들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수고도 다 헛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초반부나 공관 복음서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심을 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우리 있을 곳을 예시하시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7)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마음 깊이 새겨둘 경고의 말씀이 사도 신경에 있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어느 날엔가는 왕중 왕으로 심판 주로 오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이 곧 오지 않으심에 대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기 위하여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서 받을 준엄한 심판을 준비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바로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죄를 용서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어 그 피로 죄 씻음을 받아 회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천국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 받은 사람으로 우리들의 이 땅의 삶을 평가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불가운데서 겨우 구원 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공력대로 짚으로 지은자는 짚으로 돌로 지은자는 돌로, 정금 같은 믿음의 집을 진 자는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믿음의 생활로 미래에 있을 주님의 심판을 준비합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의 성경의 핵심을 우리가 매 주일 입으로 외웁니다, 그러나 삶으로 그 믿음이 실천됩니까?

회개하여 주님을 구주로 모셨습니까? 아니면 성전 뜰만 밟으십니까?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 들을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씀을 들을 삶을 사십니까? 하나니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선택을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엘림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현실화 되는 그날까지 충성스런 증인으로 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Number Title Reference
67 두 문, 두 결과 참고: 마태복음 7:13-20
68 지혜를 얻는 첫걸음.(자녀 교육) 참고: 잠언 1:7-9.
69 무지개를 보신 하나님 참고: 창세기 9:1-17
70 건강한 일꾼, 건강한 교회 공동체 참고: 출애급기 18:13-23
71 기쁨이 차고 넘치는 교제 참고: 요한 1서 1:1-4
72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참고: 예레미야 20:18
73 사랑 때문에 감사해서 참고: 로마서 12장 1절
74 예수님을 닮으려면 참고: 마가복음 3:13-15
75 섬기러 오신 예수님 배우기 참고: 마태복음 10:41-45
76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하신 예수님 참고: 마가복음 1:35-39
77 성령에 매인 사람 참고: 사도행전 20장 17-24절
7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참고: 고린도 전서 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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